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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홍민 Dec 31. 2023

미니멀라이프 연대기 - 첫 일주일.

나, 이렇게 미련 많은 사람이었나?


 2019년 다시한번 ,이번에는 끝까지,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 저는 물건을 하루 10개씩 치우면서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치우고 버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면 또 다시 미니멀라이프에도 요요가 올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물건을 몇개를 버렸는지, 그리고 이걸 왜 샀었는지,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등을 간단하게 기록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이번이 첫 미니멀라이프가 아니었기 때문에 뭘 버려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저를 좀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저는.. 미련이 많은 미련한 사람이었어요. 




미련,, 곰탱스,,,




 막상 버리려고 보니까 은근 아깝고, 물건마다 스토리가 다 있는거예요? 이건 아직 한번도 안썼는데. 이거는 언제 누가 사준건데. 이거는 누구랑 같이 어디 갔을때 샀던건데. 하면서 하나하나가 다 아쉽습니다. 세상에 천잰가봐요. 맨날 핸드폰 어디에 뒀는지 까먹는데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은 어찌나 기억을 잘하는지요? 뇌용량을 이런데에 쓰니까 핸드폰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할 뇌용량이 없나봐요? 



별 시덥잖은 물건앞에서 수십분간 상념에 잠기고야 말아요



 이 오래된 양치컵은 우리 어린이가 첨으로 유치원에 들어가서 썼던 것이지.. 아 그때 우리 어린이가 정말 귀여웠는데, 지금은 말안듣는 초딩쓰네 세월이 무색해. 이 싸구려 티는 오천원짜리에 진짜 오천원짜리같이 생겼지만 이거 입으면 나 좀 화사해보이던데… 그치만 화사하고 싸구려옷 입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화사해보이던데.. 이 옷은 친정엄마가 사준 남편 옷인데, 남편이 불편하다고 6년전에 사서 한번도 안입은 옷인데... 그래도 엄마가 사위한테 사준옷인데 버리면 좀 불효하는거 같지 않나.. 


 버리기 전까지는 선물을 받았는지 어쩐지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버릴려고 보니 건망증이 치료되는 기분이예요. 뇌의 뉴런들이 전기신호를 일으키며 시냅스끼리 연결됩니다.  갑자기 똑똑해진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원래 불효녀였어요. 버릴려고 하고 보니까 갑자기 천재 효녀가 됩니다. 평소에 잘할것이지 말이예요? 



와아 천재가 된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여행용 파우치는 너무 유용할거같아. 근데 저는 집순이라서 여행을 잘 안가는 사람입니다. 여행가서도 비닐봉지같은거 쓰지 특별히 파우치를 쓸 그런 유형의 인간 자체가 아니에요.  이 손빨래한 속옷을 10개정도 널기 좋게 생긴 미니 빨래건조대.. 2년간 한번도 안썼는데.. 그런데 저는 속옷을 모아놨다가 한번에 10개씩 널어놓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에요. 바로바로 빨아서 화장실에 걸던가, 손빨래 하지 않아도 되는 튼튼한 속옷을 사던가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지금까지 안썼다는것은 저의 행동패턴과 양식에 이 물건이 안맞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MBTI가 이성과 상식의 상징 INTJ 유형입니다.  나는... 아이엔티제이...! 인티제...! 인티제에 빙의하여 뇌에 힘주고 생각해보니 영영 안쓸물건이예요. 



나는 심장대신 뇌가 두개인 듀얼코어 브레인이다 




 결국 엠비티아이까지 끄집어내서 치우기는 했는데 아깝기도 하고, 천벌받을거 같고(누구한테…? 근데 아무튼 몰라요 천벌받을거 같아요), 돈낭비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는 현타가 와요. 와 사느라 돈쓰고 시간써 정리한다고 시간썼는데 이제는 이걸 버린다고 쓰레기봉지를 사고 버린다고 시간을 쓰고있네 별짓거리를 다하네. 



50리터,75리터를 몇장이나 썼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너무 한심해! 애초에 사지 말걸. 안샀으면 어디선가 훨씬 잘 쓰였을텐데 내가 이걸 사서 내 시간과 돈을 쓰고 또 지구자원을 낭비했어 어쩌면 좋아. 



푸른별 지구야 미안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둑맞은듯한 어지러운 물건으로 뒤덮힌 집 안에서 물건 열개를 골라만 놓고 잡동사니의 좌표를 차마 쓰레기봉투로 옮기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이성 근처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면서 말도 한번 못걸어보는 찌질이같아요. 정말 겁나 서성이네요. 딱히 고르지 않아도, 아무거나 잡아서 열개를 버려도 다 쓰레기라 10초면 버릴수 있을거 같은데요.  아아, 저는 찌질이예요. 미니멀찌질이. 


 물건은 또 왜이렇게 카테고리별로 많은걸까요? 주방가위가 하나만 있으면 될것을 큰가위 작은가위에 고기자르는 전용 가위까지 있습니다. 


가위가 세개나 있어야 되는거예요?



이중에 뭘 남기고 뭘 치울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으니까요. 물건이 많으면 편해질줄 알았죠. 그런데 그렇게 늘어난 물건들이 저를 잠식해요. 결국 치우는게 답이긴 한데,  내일은 또 뭘 버리고 치워야하지 생각해보니 다소 막막합니다. 



연출사진 아니예요. 진짜 바닥에 박혔어요



 뭐 꿀팁 이런거 없나? 아 맞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한게 갑자기 생각났어요. 근데 그러면 저는 일단 제가 먼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해요.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을 잔뜩 가지고 살찐채로 불평불만만 나열하는 이런 인간으로 사는것 너무 1도 설레지가 않아요. 엉엉 내가 죄인이다. 




저인줄. 



 그렇게 자책하며 열개씩 어떻게 어떻게 버리긴 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한번에 다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되는대로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싹다 끄집어내서 한번에 정리를 한다? 불가능. 그냥 같은장소여도 치우고 치우고 또 치우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말도 안되는 완벽주의때문에 할거면 제대로 해야지 그럴바엔 안하다 그런 헛소리를 하다가 이지경까지 와버렸단말이예요. 되는대로 하는거예요. 처음에는 그냥 하는대로 되는대로 한다. 아무튼 절대로 안멈춘다! 킵고잉온! 





#번외편

오늘의 미니멀 팁! 

잡동사니 바구니를 털었더니 나온것들이예요.



 굳이 버릴 필요를 못느껴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꽤 있습니다. 이거 작고, 딱히 못생긴것도 아니고, 더럽지도 않고 쓸일이 생길수도 있을것 같은데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되는 것들이요. 그런데 이런것들이 쌓이면 정말 집안을 굉장히 너저분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굳이 갖고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이기도 해요. 이거 딱히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름다운것도 아니고, 잡동사니라서 어지럽게 만드는데 굳이 가지고 있어야하나? 이런물건이 백개가 되고 천개가 되면서 몸집을 금방 불린다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합니다. 지들끼리 결혼해서 살림차려 애낳고 사는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굳이 버릴필요 없는 물건은 굳이 가지고 있을필요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 잡동사니 바구니부터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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