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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30. 2020

기억의 기록

초복례 사건



내가 어릴 적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수능이라는 시험이 입시에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보다는 덜 사교육에 의지하던 때였기 때문에 아침 등교시간과 저녁 하교시간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른들이 내게 늘상 아파도 학교에서 아프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으라고 했었으니까.

그때는 체벌도 살아있었던 만큼 교권이 지금에 비해서 많이 높았다. 높았다기보다는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었다. 학생들도 그저 그게 당연하여 제 생각에 부당한 일이라 여겨져도 다들 별 말없이 따랐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덧 하키 채가 엉덩이로 날아들었으니.

 아침 등교시간은 수업 시작 전에 자율학습을 1시간 해야 했기에 8시 이전 이어야 했고, 교실에 8시까지 들어갔어야 했으므로 교문에선 7:50분부터 지각자를 잡아냈다. 그날그날 교문을 지키는 선생님들과 선도부원이 달랐는데 엄격한 선생님이 걸리는 날에는 복장 검사부터 시작해서 머리 색, 모양, 길이, 손톱까지 검사를 했다.

 만일 학교가 제시하는 객관적 학칙과 선생님이 제시했던 본인만의 주관적 학칙에 어긋나면 선생님 개개인마다 다른 벌을 내려주셨다. 누군가는 들고 있는 매로 체벌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100회 실시하는 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교문부터 플라타너스 벤치까지 오리걸음으로 걸어가기를 시켰다.

 
 복장 검사에는 교복을 잘 갖추어 입었는지, 양말, 가방색등이 학칙에 잘 맞는지, 그리고 명찰과 학교를 상징하는 배지(badge)를 잘 달았는지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제일 많이 빠뜨렸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명찰과 배지였다. 당시에 왜 이것을 교복에 처음부터 제작해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그러했기에 늘 그것들을 따로 챙겨야 했고, 그래서 빠뜨리는 일이 일쑤였다.


 그날도 내가 그랬다. 안 그래도 교문 지각에 걸릴 만큼 다급한 시간대였는데 명찰을 가지고 오지 않다니. 등교하는 버스에서 그 사실을 알아챈 나는 내리자마자 총알처럼 문구점을 향해 달렸다. 문구점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놓인 명찰 바구니가 있었는데 명찰을 제작하다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아주머니께서 나 같은 학생들을 위해 미리 아무 이름이나 넣어서 제작해 놓은 명찰들이었다.

 
명찰을 하루 빌리는데 500원.
나는 아주머니께 500원을 드리고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명찰을 집어서 부리나케 교문으로 내달렸다. 문구점에서 학교까지 아무리 빨리 달려도 5분은 걸리는 긴 거리였기에 교문쯤 다다랐을 때는 숨이 턱 끝에 달려있었다.


 드디어 교문을 통과해야 할 시간. 제발 교문 앞에 서있는 담당 선생님이 내 얼굴을 아는 선생님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정말 지각 1분 컷으로 교문에 들어섰다.

두근. 두근. 두근.

걱정 마, 명찰도 했고 분명 50분에 칼같이 들어왔으니까 잡힐 이유는 없어. 걱정 마. 근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왜 이렇게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지....??!!  나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선생님 눈치를 심하게 보며 안절부절 그 앞을 지나갔다. 그것이 기폭제가 된 걸까? 아니면 그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알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아니면...

“너!!”
“네...?! 저... 저요?”
 
도둑이 제발 저렸던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빛의 속도로 제일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고, 당연히 선생님은 들고 있던 사랑의 매로 정확히 나를 가리키며 본인 앞으로 오라고 불렀다.

“그래 너.”

뭐지? 완벽했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선생님 앞으로 다가간 나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동자는 선생님을 향해 슬쩍 들어 올리며 그렇게 그의 앞에 섰다. 왜 불려 갔는지 영문을 모른 채. 아마도 선생님이 날 아는 사람이었나 보다 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


“빌리려면 제대로 된 걸 빌리던가.”
“네...?”

무슨 소리지?

“이름이 그게 뭐냐!!”
“네.........?”

무슨... 소.. 리?
그제야 명찰에 있는 이름을 확인한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버렸다. 명찰에 쓰여있던 이름은 다름 아닌 

‘초복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3학년 언니 중 ‘최복례’라는 아주 예스럽고 특이한 이름을 가진 선배가 있었고.. 내가 집어 든 그 명찰은 그 언니 이름을 잘못 새겨 나온 파본이었던 것. 최가 ‘초’가 된 것도 모자라서 복례라는 특이한 이름까지 붙어버리니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할 잘못된 이름이었던 것이다.

에라이.

나는 그렇게 오리걸음을 걸어서 플라타너스 벤치로 향했다. 다른 날보다 몇 배는 더 허벅지가 무겁고 아픈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길을 지나도 하루 종일 그 명찰을 달고 수업을 받아야 했기때문에, 그리고 그때마다 과목 선생님들이 나를 보고 한 마디씩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야, 초복례, 니가 대답해봐.
-초복례...? 니 이름이 초복례야?
-초복례 너!

허벅지는 무거워지고 낑낑대며 오리걸음을 걸으면서도 속으론 절규가 쏟아졌다. 내 귓가에는 반 애들의 웃음소리가 환영처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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