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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Feb 01. 2023

'저한테 자료 잘 못 보내신거 맞잖아요. 사과하세요.'

라고 말한 신입사원


나의 인생 첫 직장이었다.


24살, 대학교 졸업 직 후 회사/사회생활 1도 경험 없는 날 것 그대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성격은 타고나게 씩씩하고 대담하며, 부조리한 것을 싫어하고 할 말은 꼭 하는 '입바른 성격'. 이걸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소위 '사이다' 로써 칭송 받았다. 하지만 회사생활에 그런 성격은 꼭 대가를 치르는 법. 그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WTF ?





1. 사건의 발단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조직개편이 있었고, 나는 새로운 팀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나의 팀장과 사수가 새로 배정되었다. 팀장은 서글서글한 성격에 특별히 모난 부분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사수(A)가 뭐랄까, 예민한 사람 같았다.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막내를 줄 곧 맡아오다가 내가 팀에 합류되자 드디어 막내(=허드렛일 하는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사수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싸-한 기운을 떨칠 순 없었으나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처음엔 나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팀장님이 나에게 팀원(약 5-6명)들의 자료를 취합해서 하나의 PPT 파일로 만들어 달라는 업무를 주셨다.

나는 내 사수 포함 선배 팀원들에게 오전 몇 시까지 각자의 자료를 나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 메일을 보냈다. 그 당시 회사 제품/서비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기에 선배들이 작성한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검토할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내용 수정 없이 그냥 정말 병합만 해서 하나의 PPT 파일로 만들었다.


오후에 PPT파일을 팀장님께 제출을 했고, 팀장님은 살펴보시더니 내 사수(A)에게 이렇게 말했다.


"A야, 네가 작성한 자료 중에 틀린 정보가 있는데? 다시 확인해보고 다시 제출해."


나는 사수(A)가 내게 고친 자료를 다시 줄 줄 알고 자리에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갑자기 날벼락 떨어지듯 사수는 내 자리로 와서 나에게 윽박을 질렀다.


"oo 씨, 이걸 왜 마음대로 수정해서 팀장님께 제출했어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는걸 둘째 치고, 주변에 다른 팀원들 다 앉아 있는 상황에 그렇게 사무실에서 쩌렁쩌렁 갑자기 면박을 줄 수 있는 건지가 더욱 놀라웠다.

그러고서 내 사수는 쌩-하고 외근을 나간다고 회사차가 있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2. 나의 행동

나는 사수가 나가자마자 이메일을 뒤졌다. 내가 제출한 PPT 파일과 사수가 나에게 보낸 자료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없었다. 팀장님이 지적한 틀린 정보가 사수가 나한테 보낸 자료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걸 사진으로 찍어 곧바로 사수를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따라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사수가 있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한테 자료 잘 못 보내신 거 맞잖아요. 사과하세요."

사수는 적잖이 놀란듯했다. 얘가 여기까지 따라 나와서 따질 거라고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

사수는 마지못해, 어금니 꽉 깨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3. 사이다 발언의 결과


그때부터, 사수(A)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업무적으로 나에게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나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는데 팀장과 사수가 조문을 왔다. 사수는 부조금 3만 원을 내고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한 마디 위로도 없이 음식과 술을 진탕 마시고 돌아갔다. 내가 업무적으로 부족했던 걸 지적하는 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그 일은 개인적으로 큰 상처가 됐다.

그리고 그런 감정과 업무적 첼린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훗날 나의 퇴사를 앞당기는 트리거가 되었다.



4.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회사란, 온갖 누명과 억울함이 난무한 곳이라는 걸 나는 3번째 직장에 와서야 깨달았다. 이성적으로 일 해야하는 곳에서 비이성적인 일이 밥먹듯이 일어난다. 지금에야 몇 년이 흘렀고, 회사 생활 짬밥 늘어가며 이제는 융통성도, 적잖이 넘어가는 여유도 생겼으나 저 때 나는 하나님도 못 말리는 그야말로 Fighter 였다.

그리고 사람은 잘 안 바뀐다. 나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필요하다면 사이다 발언을 하는 성격이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태어난 걸. 하지만 적어도 저 때 보다는 덜 싸운다. 왜냐면 시시비비를 떠나서 회사에서 사람들과 싸우면 그게 곧 파국으로 이르는 길이란 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내 전 사수(A)도 비슷한 성격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다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대화의 기회를 찾겠다.' 저렇게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가 따질건 아니었다. 사수가 외근 나갔다 돌아오고나서, 또는 다음 날 '커피 한잔' 찬스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모범답안 :

"제가 A님 외근 나가시고 다시 확인해보니, 보내주신 자료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워낙 업무가 많으셔서 오타가 있는걸 깜빡하신 모양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저 또한 아직 신입 사원이라 저희 제품에 대해 잘 몰라 그 부분이 오류인건지도 몰랐네요. 그것도 제 불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도 함께 개선 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배울테니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


이렇게 얘기 했어야 했다.



+a 마치며

총 6개의 실제 에피소드로 내가 회사에서 했던 '사이다 발언'과 그 결과를 앞으로 연재할 예정이다. 사실 이번 첫 에피소드는 앞으로 소개될 사이다 발언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말로 직장까지 잃어본 경험자로써 말이다. 이렇게 실수를 인정하고,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며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니 당신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당신보다 더 큰 실수를 해 본 나도 결국 지금 회사에서 누구보다 사랑받는 직원이 되어있다.








**소개된 모든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a.k.a 잔소리)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을 100%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외 기타 견해, 비슷한 경험담에 대한 공유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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