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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소포타미아 Feb 06. 2023

'주임님이 제 월급 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고 퇴사했다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신입사원(나)에게 자료 잘 못 보낸 일로 어금니 꽉 깨물고 사과해야 했던 나의 사수.


그 에피소드의 2편이다. 1편은 아래 포스팅 참조.


https://brunch.co.kr/@o0omy/5







1. 사건의 발단


앞서 포스팅했던 1편의 해프닝을 계기로, 나는 그 후로 나의 사수로부터 온갖 업무적, 감정적 챌린지를 겪게 되었다. 그땐 나도 너무 미숙한 상태로 인생 첫 직장 생활을 겪느라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사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 사수의 뒷모습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가라앉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퇴사의 계기는 사실 많았다. 막상 입사해 보니 우리 회사는 허울 좋은 대기업 일 뿐, 실속도 없었고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빨리 이직하고 탈출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나 또한 오랫동안 꿈이었던 해외취업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이참에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남들에게 말하지 못 한 퇴사의 진짜 계기는 사수와의 관계 불화가 70% 이상 차지했다.


그래서 팀장님과 인사팀에 3주 뒤 퇴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입사한 지 1년 2개월 남짓되던 때였다.


사수는 팀장님을 통해 나의 퇴사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퇴사할 때까지 더 이상 사수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미 퇴사한다고 통보한 사람한테 뭘 어떻게 하겠어? 그런 마음으로 남은 3주는 설렁설렁 보내다가 나올 생각이었다.


팀장님은 나의 퇴사 통보 이후로 모든 업무할당에서 내 이름을 제외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업무의 대부분은 나의 사수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나의 사수는 그게 짜증이 났던 거다. 사수는 자기 이름이 들어가 있는 업무를 굳이 나에게 넘겼다. 나는 그 당시 그게 이해가 안 됐다. 팀장님이 정확하게 나의 사수에게 하라고 시킨 일을 사수는 왜 나에게 넘기는 걸까? 그리고 사수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oo 씨, 이거 언제까지 업무 완료해 주세요."



2. 나의 행동


"주임님, 이거 팀장님이 주임님께 할당하신 업무인데 왜 제게 주시나요?"


"팀장님이 저한테 업무 3개나 주셨는데 oo 씨 혼자만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요."


"팀장님이 제 이름을 안 넣어주신 건 제 퇴사 고려해서 제외시켜주신 거예요. 그리고 주임님이 지금 업무를 나눠 주시려고 하는 건 주임님 혼자 하시기 힘드니까 제게 부탁하시는 건데 그렇게 굳이 의무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게 이해가 안 가요."


"oo 씨, 퇴사까지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해요? 그리고 회사에서는 모든 업무를 지시하면 수행하는 거지 누구도 부탁하지 않아요."


"주임님이 제 월급 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일은 관리자(팀장)가 판단해서 할당하는 건데 그걸 왜 주임님이 나서서 클레임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월급 받고 누구는 일 안 하는 게 화가 나서 뱉었어요."


"저는 퇴사일까지 출근을 하는 게 의무이지 다른 부분은 팀장님과 제가 상의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메신저 답장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3. 사이다 발언의 결과


그게 나와 사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퇴사했다.

내 인생 첫 퇴사는, 그야말로 '망작'이었다. '유종의 미' 1도 없는 그런 퇴사. 한국 사회 좁다고, 어디서든 만난다고, 그래서 퇴사할 때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나에게 겁주듯 얘기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3번이나 옮겨본 현재까지는 '그런 퇴사도 괜찮다.'이다. 그렇게 유종의 미에 집착하며 벌벌 떨 것까지는 없다. 왜냐면 내가 징계받을 일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사실 이런 일은 지나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닌 싸움이다. 이 정도 갖고 다음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그리고 저렇게 업무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려는 걸 나는 절대 참을 성격이 못 되었었다. 최소한 저 때는 말이다.


이직에 중요한 건, 당신이 직전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했고 얼마만큼의 성과가 있었느냐 이지,

사수랑 사이가 좋았는지 나빴는지가 메인이 아니다.

참고로, 평판조회(레퍼런스체크)는 나의 라인매니저(팀장)와 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 아래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아무튼, 나는 이 퇴사 이후 어학연수에 갔다가 1년 뒤 첫 해외취업이자 첫 이직을 했다.


4.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물론 나도 실수한 게 있었다. 특히 저 대화를 기반으로 내가 그 당시 잘못 생각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수가 말한 '회사에서 업무를 지시하면 따른다.'이다.

여기서 '회사' = '나의 윗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저 때 사수가 시키는 일을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사수도 나에게 말 이쁘게 하지 않고, 나를 너무 막 대한다고 생각해서 괘씸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나는 앞으로 팀장님이 시킨 업무만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안 됐다.

차라리 사수가 나에게 던진 업무 중 정말 하기 싫은 게 있다면 'A 업무는 할 수 있는데 B는 제게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업무량을 조율하는 게 낫다.


두 번째는, 내가 말한 '퇴사를 하는 날까지 출근을 하는 게 의무'이다.

퇴사하는 날까지 일을 하는 것도 의무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퇴사 통보를 했다고 해서 업무 프리패스권을 가진 게 아니다. 나에게 퇴사하는 날까지 일을 줄지 안 줄지는 주변 사람들의 재량이다. 보통은 정말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일은 주지 않는 편이지만, 만약 새로운 일을 준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매너다. 물론 이미 속으론 남의 회사기 때문에 '그 일을 잘해줄지 말 지는 내 판단'이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노이즈가 적다.



모범답안 :

"넵, 주임님. 일단 제가 다음주가 퇴사라 주신 업무를 기한 내에 모두 완료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일단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혹시 B(어렵거나 하기 싫은 업무) 같은 경우는 제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까요? 저도 기본 자료가 있기는 한데 평소에 익숙하지 않던 제품/서비스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오네요. 아니면, 제가 A랑 C(나에게 좀 더 쉬운 업무)를 하고 B랑 D(A, C 보다 어려운 업무)를 주임님께서 하시면 어떨까요? 그럼 좀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a 마치며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다음 회사에서는 무조건 회사에서 사람들이랑 싸우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 무조건 좋게 좋게 이야기하고 잘 지내기로 마음먹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20대 대부분을 상사복이 없는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다음 에피소드는 그렇게 첫 해외취업한 곳에서 사이다 발언을 했다가 해고까지 당해버린 썰이다.






**소개된 모든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a.k.a 잔소리)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을 100%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외 기타 견해, 비슷한 경험담에 대한 공유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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