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고 해고당했다
무참히 실패해 버린 인생 첫 직장, 첫 퇴사.
내가 어떻게 한국에서 첫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 참조.
나는 어학연수에 갔다가 1년 뒤 첫 이직이자 해외 취업이 되었다.
사실, 해외 취업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에 비해 실상은 외국계 기업의 한국 부서, 한국인 팀장이 있는 영업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한국인 팀원은 총 6명 정도였고, 팀장은 나보다 2살 많은 28살. 팀원들도 다 고만고만한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전 사건들과 다르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나도 이후에 여러 해 영업직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영업직은 결국 파이 싸움이다. 내가 먹을 파이가 없어지면 테이블을 떠나야 하는 게 영업 생태계의 원리이다. 그럼 그 파이를 나누는 권한은? 당연히 팀장에게 있다.
1. 사건의 발단
나는 입사 직후, 내가 먹을 수 있는 파이는커녕 부스러기조차 안 남은 그야말로 황무지를 담당지역으로 할당받았다. 이미 이전 선배들이 모두 팔아놓았거나, 절대 우리 물건을 사지 않을 고객들만 남은 그런 지역이었다. 처음엔 나도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신입이니까. 나중에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고 조금이라도 성과가 생기면 선배들처럼 좋은 지역과 고객을 담당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매일 죽도록 돌아다녔다.
하루에도 몇 개씩 약속도 안 잡힌 고객사에 무작정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고, 왕복 4-5시간 거리에 있는 회사들을 오가느라 차 안에서 화장실도 참아가며 이동했다. 고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어 보려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도 마셔가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만큼 간절했다. 그래도 한 선배는 그렇게 매월 한 대, 한 대 팔고 있는 내가 대단한 거라고 했다.
하지만 매월 실적에는 항상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까지 팀장은 위에서 내려온 대로 그대로 전달식 실적압박만 할 뿐, 나에게 어떠한 실질적인 도움이나 가이드가 없었다. 선배들은 각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고객을 하나쯤 가졌는데 나는 그런 것 하나 없었다.
그게 보기에 불평등하다고 듣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팀장은 내가 입사한 지 9개월 차 때쯤 고객사의 규모가 큰 어떤 프로젝트를 같이 맡아보자고 했다. 그것도 이미 우리 제품을 충분히 쓰고 있는 무수요 고객이었지만 부가적인 이유를 만들어 몇 대라도 더 팔아보자는 얘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계획은 먹히지도 않을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 영업직종에 있어 너무 순진한 생각을 가진 때이기도 했고, 그 당시 나의 실적으로는 뭐든 쥐푸라기라도 잡고 심정이었어서 알겠다고 하고 무작정 열심히 뛰어들었다.
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달라고 매달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 때는 정말 나중이었다. 한 달 동안 나는 혼자 고객사 전수조사를 하고, 구매팀 담당자가 그 위에 보고하기 쉽게끔 각종 자료와 제안서, 리포트를 만들어주었다. 담당자는 그걸 받아보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만 할 뿐, 실질적인 진행이 되지 않았다.
팀장은 나를 담당자에게 소개시켜주고 처음에는 이것저것 준비해 보라고 지시하는 듯 하다가 점점 발을 빼기 시작했다. 구매 담당자와 팀장은 서로 사교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 사이였는데, 그래서 더더욱 팀장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은 나에게 말은 안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가망이 없다는 걸 혼자 눈치를 미리 챘는지, 어느 순간부터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라도 담당자를 찾아가 설득을 하고 미팅을 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담당자는 팀장과 함께 동행하지 않는 날은 굳이 나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무실적으로 한 달을 소비했고, 회사에서 부장님은 팀장에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길래 여태 실적이 저조한 지 물은 듯했다. 팀장은 그렇게 부장에게 깨지고(?) 자리로 돌아와 씩씩대며 나를 불렀다.
"oo 씨, 내가 준 그 프로젝트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뭘 하고 있는 거예요?"
2. 나의 행동
나는 그 말이 너무 뜬금 없는 것 이상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인이 같이 해보자고 해놓고 신경도 안쓰고 놓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불러다가 다그쳤다.
순간 억울함과 답답함에 나 혼자 덩그러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내뱉어 버렸다.
"그러면 팀장님은 뭐 하셨는데요?"
3. 사이다 발언의 결과
팀장은 그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도 그 말을 뱉은 직 후,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 직장(한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과 절대 싸우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순간의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또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팀장에 사과를 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건데 죄송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저는 oo 씨한테 그런 말 들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 대화 이후 다음 날,
나는 당연히 팀장이 나에게 당분간 말도 안 걸고 온갖 잡스러운 일들을 시키며 괴롭힐 줄 알았다.
그런데 팀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나는 팀장이 그날의 내 사과를 받아주고 그냥 뒤끝 없이 넘어가려는 걸까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 더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만 빼고, 팀원 선배들끼리 뭔가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싸한 기운이 며칠째 나를 맴돌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선배 중 한 명이 나에게 퇴근 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oo 씨, 팀장이 곧 oo 씨 해고한대요. 마음 준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직/간접적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1개월 뒤 퇴사를 했다.
내가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11개월 차 때 였다.
4.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더 소름 돋았던 건, 팀장은 내가 정말 퇴사하는 날까지 나와 아무런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권고사직의 진짜 사유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실적 저조라는 이유로 나를 내보냈다.
나는 그야말로 5G급 손절을 당한 것이다. 그게 물론 대외적으로는 틀린 이유는 아니다. 나도 내가 실적 저조였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내가 퇴사하게 된 진짜 이유였을까?
실적 저조의 원인이 꼭 나에게만 있던 걸까?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정말 해고당할 만큼의 잘 못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나는 해고를 당했으니 잘 못을 한 사람은 맞다.
첫 번째는, '선을 넘는 반문을 했다는 것.'
아무리 화가 났어도, 답답한 마음이어도. 상사에게 '당신은 그럼 뭘 했나요?'라고 해서는 안된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에는 직급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그래서는 안되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다혈질인 상사들이 직원들에게 언어폭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거꾸로 직원이 상사에게 언어폭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반문 수준은 언어폭력까진 아니었으나 무례하고, 도발적인 질문임에는 틀림없었다.
당당함과 무례함의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저렇게 감정적으로 답답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솔직하게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 훨씬 낫다.
여기서 팁은, 나의 한계를 분명히 상대에게 인지시키고 내가 어떻게 그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계기를 언급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업무 보고를 꾸준히 하지 않은 것.'
사실 업무 보고라는게 두려운 일이긴 하다. 결국 모든 보고는 칭찬보다 꾸중을 더 많이 듣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입사원때는 특히 업무 보고를 자발적으로, 자주 하는게 나중에 일을 손쓰기도 어려운 지경까지 가게 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업무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은 이게 가장 컸다. 뭐가 안되면 잘 안된다 바로바로 얘기했어야 하는데, 저 때는 순진하게 구매 담당자 말만 믿고 몇 날, 며칠을 기약없는 컨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 시간을 낭비했다. 내가 용기를 내서 차라리 일찍 깨지고 해결책을 받는 것이, 혼자 끙끙 앓다가 모든게 내 탓이 되어버리는 것 보다 낫다는 것을 명심하자.
세 번째는, '그 사건 이후 내가 먼저 제대로 된 대화 및 사과를 재시도하지 않은 것.'
어찌보면 나의 권고사직 해프닝은 내가 자초했지만, 내가 방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그 당시 바로 사과를 했다는 이유로, 팀장이 받은 충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알아서' 풀었을 것이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는 안된다. 역으로 내가 그런 도발적인 질문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나 또한 며칠 밤낮 화가 치밀어서 잠도 안 올 텐데 '상대는 알아서 풀겠지. 괜찮겠지.' 하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모범답안:
아.. 팀장님. 저도 일단 이렇게 된 상황이 스스로가 너무 답답한데요, 저는 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프로젝트가 정말 실현 가능한 상태인 건지, 아니면 제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몸만 바쁘게 일했지 조금 안일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저 또한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처음 맡다 보니, 팀장님께서 먼저 소개해주신 만큼 팀장님께 의지를 많이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팀장님이 지시하신 업무대로 제안서를 만들고, 보고서 작성해서 구매 담당자에게 제출도 했는데 그 이후로 진전이 없습니다. 제가 담당자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도 자꾸 바쁘다는 이유로 일정 잡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꾸 시간은 흘러가고, 저는 이제 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a 마치며
첫 번째 직장에서의 실패에 이어, 두 번째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결과이지만 그 대가가 정말 쓰디썼다. 나는 저렇게 해외에서 이직할 직장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쫓겨났다. 스폰비자도 이제 사라졌으니 온 지 1년도 안돼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마음이 그보다 더 비참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직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와중, 퇴사날을 정말 며칠 앞두고 기적같이 어떤 곳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서 드디어 내 첫 인생사수를 만나게 된다.
아 참, 내가 퇴사하고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냐고?
물론 아무도 성사시키지 못 했고, 그 구매 담당자는 내가 퇴사하고 얼마 안되어서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팀장은 1년 뒤 부장과 사이가 틀어져 결국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모든게 참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일이다.
아무튼 사이다 에피소드 완결까지 3편 t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