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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n 04. 2023

일, 그림, 한계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김찬삼/ 김재민 글/ 길벗어린이>


우여곡절이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손으로 옮겨 그리는 과정에서 처음의 느낌이 많이 새어 나간다.

시작할 때의 기대감과 자신감은 그림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쪼그라든다. 이런 기대와 실망의 뒤치락거림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런 감정의 파도를 매번 경험한다. 그런 순간이면 늘 힘들다.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의 뒤엉킴.


처음의 기대감이 곤두박질치고 종이에 옮겨진 이미지들이 하찮아 보이는 순간. 실망한 나를 추스르기 위한 변명들. 시간이 부족하고, 이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 등의 이유를 떠올리지만 그냥 변명이다. 내가 나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건가? 아닐 것이다. 내 주제를 인정하면서도 이것보다는 좀 더 나은 걸 할 수 있다는 정도다. 








 김찬삼에 관련된 1950년대의 시대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자료를 받았고 나도 여기저기 뒤지며 찾았다. 가능한 당시의 거리나 사람들의 느낌이 나올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식민지의 잔재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인천의 거리,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풍경을 그리려고 했다. 물론 아주 잘 되진 않았지만 그리는 동안 나쁘지 않았다. 








 남미의 안데스 지역의 마을 풍경이다. 남미의 풍경은 그리는 맛이 있다. 낡은 건물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 반듯한 직선과 곧은 형태의 현대 도시는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규칙적인 선과 정교한 형태들이 그리는 맛을 떨어뜨린다고 느낀다.


반면에 낡은 것, 지나간 것, 엉성한 것들은 선을 긋는 손맛이 좋다. 내 감각이 그런 것들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 그림을 완성하던 날에 내가 한 뼘 성장했다고 느꼈다. 이전의 그림에서는 꾸역꾸역 그린다고 할까, 항상 처음 기대한 것과 결과물의 차이가 너무 커서 실망한 경험이 많다. 이 그림은 예외였다. 쌓인 실망의 경험으로 내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손과 컴을 섞어 쓰는 방법을 생각했다. 당시에는 처음 시도하는 방법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결과물은 성공했다. 어찌 보면 처음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얻었다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그림의 노란 배경색을 얹었을 때는 그림 전체에 생기가 돌면서 짜릿했다.


막연한 느낌으로만 있던 이미지가 눈앞의 모니터 위에 색과 형태로 정리되어 또렷하게 드러나던 그날 혼자서 들뜬 기분에 가슴이 빵빵했다.








삼 년 전인가 하드디스크의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이 그림들을 다시 보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 보이게 되는 허점과 어설픈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던 때에는 알지 못했던 서투름이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더 쌓이고 내가 늙어가자 보였다.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작업을 하다가 더 이상 손대기 싫고 지쳐서 대충 넘긴 부분들도 보이고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 하고 내버려 둔 부분도 보인다.


내겐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남들이 뭐라든 내 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한다. 심하진 않고 조금 있는 정도. 그것 때문에 내가 나를 쥐어짤 때가 간혹 있다.








 50년 대의 뉴욕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건물들을 그리고 사람을 얹었다. 해 놓고 보니 나쁘지 않아 마무리했었다. 지금 보면 건물의 선들이 너무 어정쩡하다. 뭔가 자신 없는 선이고 확신이 없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든다. 아쉽지만 못 본 척 눈감고 싶었다.








 역시 남미의 한 도시의 광장이다. 이후에 이 그림을 보고 다른 출판사의 일을 받은 적이 있었지. 남미는 유럽의 식민지가 되면서 유럽식 성당과 건축물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 자리한 성당이 보기 좋았다. 광장을 그리는 일은 재미있다. 어떻게 그려도 그림이 될 만한 소재가 많다.


한 장 그리고 나면 다음 장에서 며칠씩 헤매고 시간을 축내면서도 담당자들의 배려로 완성할 수 있었던 작업. 무려 9개월 정도의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이 작업을 하면서 내 그림의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점을 본 것이지. 작은 내 한계를 넘었었던 그림. 그래서 다음부터는 내 그림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지만 새로움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이때와 같은 방법을 썼지만 대부분 그저 그런 땜방용 그림이 됐다.


2009년에 '길벗어린이'에서 의뢰를 받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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