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같이 산책을 다녀온 뒤 그렸다.
아직 아이가 없을 때였으니 2004년이나 2005년 무렵이 아닐까.
처음 찾은 내 그림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던 시기다. 아직 연필이나 펜 정도의 도구만 사용하던 때였다. 물감이나 색 등 다른 재료는 어쩐지 어색해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산책길에 본 나무들을 떠올리면서 천천히 그렸다. 그때는 한 번에 죽 긋는 선보다는 망설이듯이 주춤거리는 선을 사용했었다. 자신만만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들보다는 수줍고 여린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성향이 그림에도 반영된 것 같다.
정답을 모르는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는 것처럼, 혹은 자신감 없는 내가 쭈뼛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선을 그었다. 그런 선이 모여서 그림에서도 망설이는 듯한 어정쩡한 느낌을 만들고 싶었던 때다.
'망우리의 공동묘지'를 좋아한다. 살던 집에서 가까이 있었기에 가끔 찾았다. 서울의 어지간한 공원보다 망우리 공동묘지가 공원에 더 가깝다. 조잡한 음악도 없고 공원처럼 꾸미느라 돈을 부은 촌스러운 장식도 없다.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아스팔트 길과 나무와 묘지가 전부다. 묘지 구경하며 걷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조용하고 주인을 모르는 묘지를 지날 때면 괜스레 경건한 마음도 들곤 했었다. 한 번은 길가에 버려진 작은 묘비를 봤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묘비에는 한글로 "사랑하는 아빠..."라고 쓰여 있었다.
살아서 이만한 권세를 누렸다고 자랑하는 주변의 큰 묘비들과 거기에 걸맞은 한문과 공들인 서체가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정확히 뭘 말하려고 그렸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렸다. 짧은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면 그렸다. 단편적인 이미지가 생각 나도 그렸다.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본 상점이나 사람들의 표정, 별것 아닌데도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모르는 사람들의 옷차림, 텔레비전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 그런 것들이 생각나면 그림으로 옮겼다.
뭐든 되겠지 하는 심정.
의미는 없지만 느낌은 있는 그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너무 모호해서 어떻게 전달할지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정확하게 뭔지 모르기에 '느낌'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아닐까. 느낌이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다고 하기도 곤란한 지점에서 서성인다.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