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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an 17. 2024

왼쪽 새끼손가락


 일 년 전 이맘때 횟집에 취직을 했었다. 화실 문을 닫고 생활비를 벌려고 돈만 맞으면 어디든지 갈 작정이었다. 성신여대 근처의 횟집에서 사람을 구하는 글을 보고 연락했다. 면접날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담배를 피웠다. 지난밤의 취기가 고인 대학가의 뒷골목엔 느른한 숙취 같은 게 있었다. 뒷골목에 내리는 늦가을 햇빛을 쬐면서 담배를 피우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다. 작은 사치라고 위로했다. 사장과 면접을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괜찮으면 오늘 한 번 해보실까요? 그러죠.  


 광어와 도다리의 비린내를 알게 됐고 물고기의 머리를 자르고 뼈와 살을 분리하는 칼질을 배웠다. 껍질을 벗기는 요령도 배웠다. 돈 앞에서는 나이도, 성별도, 교양도 없다는 것을 또다시 배웠다. 노가다 판에서 배웠던 돈의 힘이나 자영업 판에서 보는 돈이나 근본은 비슷했다. 돈은 어느 곳에서나 힘이 세다. 돈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돈이 난 게 아니란 생각을 굳혔다. 


 광어의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 버린 뒤 수돗물에 몸통을 씻었다. 잘린 삼각김밥 같은 대가리를 포를 뜨듯이 반으로 갈랐다. 좌우로 나뉜 생선의 대가리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입을 뻐끔거렸다. 미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신경과 근육이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미련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피. 소방어라고 불렀는데 대방어의 새끼쯤 되는 물고기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부터 많이 찾는 횟감이라고 들었다. 소방어는 광어보다 크고 두껍고 힘이 세다. 힘이 센 만큼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 펄떡이는 힘을 한 손으로 제압하기 어렵다. 눈을 가리고 조금 진정을 시킨 뒤 소방어의 머리를 둔탁한 칼 등으로 내리쳐 기절시키고, 부르르 몸을 떠는 사이에 심장 근처의 혈관이 있는 부위에 칼을 집어넣어 멱을 딴다. 농도 짙은 붉은 피가 벌컥벌컥 뿜어 나왔다. 피를 흘리는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머리를 잘라낸다. 도마에 흥건한 핏물. 수채구멍으로 몰리는 피. 타일이 깔린 바닥으로 물길을 따라 흐르는 붉은 피. 사람의 피를 본 것 같았다. 처음엔 끔찍하고 미안했지만 피를 보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상한 쾌감이 있었다. 물고기의 대가리를 자르거나 핏물을 볼 때마다 미운 사람들을 떠올리고 과거를 되감았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일하면서 만난 그때 그 새끼들을 이렇게 하고 싶었다고 생각하면서 내리쳤다.


 횟집에서 만져본 생선 중에 가장 단단한 머리뼈를 갖고 있는 건 도미였다. 도미의 대가리를 자르고 그 대가리를 다시 반으로 쪼개다가 칼이 미끄러졌다. 뼈를 이기지 못하고 삐끗 빗나간 칼날이 왼손 새끼를 쳤다. 순간 아찔했다. 손가락의 감각이 이상했다. 얼른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봤다.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이 없다. 덜렁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눈을 감았다. 지혈을 위해 붕대와 해동지를 손가락에 감고 급하게 나가 택시를 탔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는 모두 응급한 사람들뿐이라 나처럼 겨우 손가락을 다친 사람은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젊은 의사가 내 담당이었다. 의사는 당장은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석 달 뒤 인대가 붙지 않아 재수술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내 왼손 새끼손가락은 온전히 접히지 않는다. 손가락을 접으면 3/2 지점에서 멈춰 있다. 그날 이후로 물건을 자주 떨어뜨린다. 잡았다고 생각한 물건을 놓친다. 연필을 떨어트리고 칼을 놓치고 대패를 놓친다. 인대가 시작되는 지점을 칼로 베었다. 내가 내 손가락을 벤 꼴이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 얕고 쉽게 망가지는 줄 몰랐는데 그날 이후론 인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수술을 하고 재수술을 하는 동안 넉 달이 지나갔다. 인대가 잘린 손가락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접히다가 멈춘다. 나는 자주 물건을 떨어트린다. 쉽게 잡고 움직였던 기억들이 어긋난다. 기억에는 남아 있는 감각이 작동하지 않는다. 연필을 쥐다가도 젓가락이나 주걱을 쥐다가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뭔가를 넘겨 쥐면서 떨어트린다. 늘 내 몸에 붙어있던 감각이 틀어졌다. 그게 이상하고 아렸다. 그날, 내 손가락에서 떨어진 붉고 더운 피가 응급실 복도에 떨어지고 청바지 위에도 떨어진 것을 보면서 온갖 기억들이 왈칵 일어났었다. 남 일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사건이 내 일이 되고 나니 묵직했다. 왼쪽 새끼손가락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내 몸으로 겪은 일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회를 먹을 때면 횟집에서 일하며 자른 생선의 대가리와 붉은 피가 떠오르고, 감자탕 집을 보면 뻘건 고무 다라에 담겨 밤새 핏물을 토해내던 돼지의 뼈와 살점이 생각난다. 이 감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노동과 시간을 겪었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 감각이 몸에 들어앉았다. 


내 손가락에서 흘린 피와 소방어의 멱을 따고 쏟은 피와 돼지고기를 물에 담가서 짜낸 피가 같은 색이다. 우리는 모두 피를 통해 살고 죽는다. 신기하게도 붉은 피가 흐르는 물렁한 몸이 숨을 쉬고 살아간다. 


이젠 내 몸과 뇌가 왼쪽 새끼손가락에 적응하고 있다. 잘 움직이지 못하고 꽉 잡아줄 힘이 없는 왼손을 만지면서 이젠 적응하라고, 익숙해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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