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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계절 Dec 19. 2020

나의 구원자 미니멀라이프(상)

Ep.01

  완전히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던, 바야흐로 내가 수험생 신분이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용한 물건을 즉시 정리하고 제자리에 두고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있지 않았던 뒷손이 부족한 아이였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방은 길을 잃은 물건들로 물산물해(物山物海) 상태였고 너저분했다.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받은 판촉용 노트 조차도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하며 마구 쟁여놓던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별로 대수롭지 않을 모습이었지만 피곤과 땀에 전 상태로 과부하되어 곧 터질 것 같은 내 방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날따라 내 마음까지도 터져나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갑한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곤 물건더미 속에서 겨우 샤워가운을 찾아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아 수박을 먹고 있는데 문득 우리 집 거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우리 집이 이렇게나 깔끔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집의 가구 위에는 무언가 쌓여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협탁, 부모님의 신혼 시절부터 함께했던 장롱뿐이었고 방에 작게 딸린 옷방에도 입주할 때부터 설치되어 있던 서랍과 행거와 옷가지 몇 벌뿐이었다. 물론 거실에도 반려식물과 소파, 티브이와 티브이장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께서 습관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정리되지 않는 모든 것은 근심일 뿐이다."였다. 주방과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도 그 대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허용된 나의 영역은 내 방뿐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었기에 우리 집에서 가장 번잡하고 근심이 많은 공간은 당연하게도 내 방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인식한 우리 집은 몹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었다. (물론 내방 제외)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켰지만 불필요한 것들은 입성조차 할 수 없는. 나름의 기준이 명확히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엄마께서는 완벽하진 않아도 당신 나름의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계셨던 것 같다. 저 시절의 나는 미니멀라이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수준이었고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했기에 이 날 이후로도 이전과 똑같이 정리와는 담을 쌓은 극한의 맥시멀리스트로 살았지만, 막연하게 엄마처럼 깔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지니며 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고 멘털이 말이 아니던 시점, 나도 모른 체 서서히 무기력증에 빠져 답답하고 갑갑하게 살던 20대의 어느 날 나는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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