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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Oct 24. 2023

엠지티안, MZ티안나게 살게4

사과는 말로 하는 것

C라는 사원이 있었다. 나이는 신입치고 적지 않았지만 취준생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전무했다. 그 친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부모님께 의존적인 성향이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해당 부서의 면접권은 팀장에게 위임되어있는 회사 특성상 그 친구 면접은 내가 봤다. 사실 작은회사라 직원에게 해줄것도 없고 부끄럽기 짝이없는 회사 규모였지만, 일의 특성상 채용이 많지 않은 분야라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이 서로에게 맞춰졌고, 함께하게 됐다. 서론은 여기까지.


내가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시간이다. 무엇이든 마감을 넘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 후배에게 일을 시킬 때는 스스로 마감을 정하게끔 한다. 내가 정해주는 마감은 대게 촉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에 맞춰서 마감을 정해놓고 나에게 본인의 마감 기일을 알려주는 식이다. 본인이 정한 마감이니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입사 이래 마감을 지키는 경우가 10% 내외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다.


본인 : 이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겠어?

C : 이번주 금요일까지 하겠습니다.

-나는 금요일 저녁 6시까지 기다린다.-


본인 : C씨, 그거 다 했어?

C : 아니요. 아직 못했어요.

본인 : 그럼 언제 될거 같아?

C : 다음주 수요일이요.

본인 : (야 임마. 그게 며칠이나 걸릴 일이냐. 4일만에 하겠다는 일 마감을 3일이냐 늘리냐)


나는 두 가지 강력한 성질머리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강한 인내심이고 하나는 강한 분노다. 인내한 만큼 성질머리가 더러워진다. 이 경우 이 친구가 범한 실수는 단 하나다. 업무를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잘못이 아니다. 여섯시가 다되어 내가 묻기 전에 최소한 5시 55분에라도 "최선을 다했으나 오늘내에 힘들 것 같다. 마감일을 미뤄달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됐다.


나만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 친구도 마감에 대해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을거다. 다만, 이 친구의 실수는 '선배가 까먹었을거야, 기다려보자. 아직 아무말 없잖아?' 이런 태도를 가졌음에 있다. 어리석게도 그 친구는 나의 기억력을 매우 여러번 시험했고, 나는 "그냥 너 알아서 해라"라는 마지막 최후통첩을 끝으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사실 정확하게는 그친구에게 내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다기보다, 나는 그런 일 따위에 내 감정이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차피 신입이라 중요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그 친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회사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니 나에게 사과를 하려함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그친구에게 영영 마음을 뗐다.


C : 이런 저런 일에 대해 아빠한테 얘기했어요. 아빠가 제잘못이래요. 생각해보니 정말 제가 잘못한것 같아서 선물을 샀어요.

본인 : ? (난 진짜 처음에 할말이 없어서 대답을 안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던것 같다)

C : 선물을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본인 : C씨, 그 마음은 알겠는데 선물은 사양할게. 우선 선물은 기분 좋을 때 하는거지 자기 잘못을 무마하려고 뇌물처럼 주는게 아냐.(그리고 니가 마음내서 사과해야지 니 잘못을 꼭 부모님으로부터 확인받아야만 잘못인게 되는거냐라는 말까진 못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수를 하면 그자리에서 인정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다음엔 신경쓰겠습니다' 이 말을 끊임없이 연습해봐라. 잘못이 없다고?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백프로가 없다. 사건이 터졌을 때 거기에는 분명 내 잘못이 단 0.1%라도 들어가기 마련이다. 잘못이 없다고 확신하지 마라. 내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하루, 이틀, 곰곰이 내 잘못을 돌이켜보는 그 시간동안 당신의 꼰대들은 이미 당신을 낙인찍고 있다. "죄송합니다. 다음엔 신경쓰겠습니다." 이건 용기다. 인정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잘못을 인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한게 아니라, 그 순간 용기가 없어 타이밍을 놓쳤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해졌을 뿐이다. 예를 들면 작은 디올 패키지에 들어있는 아마도 립스틱? 이었을 그 무언가가.


물론 선물과 함께 전하려했던 편지는 받아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친구의 편지를 다시 읽어봤다. 그 친구는 내 인정이 고팠던 것 같다. 그 편지의 결론은 이랬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죄송하지만, 저를 예뻐해주세요." 그리고 2년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직원이었다. 죄송한 니마음을 채워줄 지극한 사랑이 내게 너무 부족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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