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엠지? 나쁜 엠지?
짧은 생 돌아보면 나쁜 사람을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악독한(그땐 악독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상사를 만난 적도 없고 엠지를 욕하면서도 나쁜 엠지를 만난 적은 없다. 내가 만난, 나를 화나게 한 대부분은 그냥 좀 눈치가 없고, 생각이 없고, 배려가 없는 이들이었을 뿐, 그들이 나쁜짓을 일삼는다거나 의도적으로 나를 해하려 한 사람은 없었다. 사회성이 조금 부족했을 뿐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는 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얼마전 아이의 친구엄마와 대화를 나누다가 체벌에 대한 토론을 했다. 과연 '체벌'은 언제부터 해야하는가였다. 우리 둘은 기본적으로 아이에게 체벌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고 다만 그 시기를 언제부터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오박사님을 신으로 모시며 살아온 우리에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한다.
"우리 00가 왜 속상할까? 마음이 어때?"
늘 마음을 화두로 얘기를 꺼내다보니 아이에게 마음은 일종의 무기가 됐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어떻겠어?"
너의 마음만 중요한게 아니다. 그 마음이 소중한 만큼 남의 마음과 입장도 중요하다. 라고 끊임없이 얘기해주지만 아이는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기는 기술을 더 연마해나간다. 장단점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자기 마음을 돌보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되겠지만, 반면 자기 마음을 너무 들여다보니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서 생각한다는거다. 어떤 상황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자기 마음, 아이들에게 있어 마음은 기분과 동등하다. 무엇 때문에 자기가 화가나고 슬프고, 즐겁고 이런 감정적인 기분에만 집착한다는거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예쁘고 소중하지만, 성인이 된 나조차도 내 마음을 잘 모른다. 기분이 곧 마음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거다. 범어사의 큰스님 지유 스님은 마음을 바다에 자주 비유한다. 마음은 바닷물이다. 내 기분이나 감정은 파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었지만 파도가 바다는 아니다. 파도의 본체는 바닷물인거다. 파도는 표면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보려면 감정이나 기분, 잡다한 생각을 멈추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인이 아니니 그러기란 참 힘들다.
그래서 보편적으로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어쩌면 허상을 붙들고 마음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는 건지도. 아이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백번 마음을 설명하느니 매를 드는게 낫다 싶었던거다. 나는 미래 시대를 살아갈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면, 다시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회의 일원이 된다.
다시 엠지 얘기로 돌아와서, 엠지세대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를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어서 독립을 하지 못했던거고, 의사결정을 혼자 할 수 없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보다는 익명에 의존하여 살아가는데 익숙한 세대는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쯤이었나. 양치를 하다가 양치컵을 깨뜨렸다. 나는 번뜩 컵을 깨뜨려 부모님에게 혼날거라 생각했다. 이후 일은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컵으로 인한 물리적인 손해는 입었지만 혼날 일 까진 아니었을거다. 그런데도 나는 혼날게 무서워서 저 깨진 컵을 어떻게 치워야 할까를 걱정했다. 만일 내 아이였다면? 나는 달려와 괜찮느냐고부터 물었을거다. 아이는 분명 울고 있었을거다. 엄마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놀라서 우는 거다.
나는 부모님이 무서웠던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 내 아이에게는 무섭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엠지보다 더한놈이 될지도 모르는 놈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흉흉하다고는 하지만, 과잉보호를 하는 이유를 흉흉한 세상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분명 나는 나의 부모보다 나약한 세대고, 내 아이는 나약한 엄마밑에서 자란 더 나약한 세대고, 그리고 그 아이가 커서 세상에 놓였을 때 과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가끔 나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고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라는 단어의 그늘에 숨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무기로는 삼지 않았으면 한다. 내 마음이 슬프다는 거짓말을 멈추고 내 감정이 슬프다고 얘기하면 좋겠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내 마음을 챙기지 말고 곧바로 분노하고 화냈으면 좋겠다. 마음에 담아두며 혼자 괴로워하는 엠지가 아니라, 부당함에 떳떳하게 의견을 낼 줄 아는 못된 엠지가 됐으면 좋겠다. 커뮤니티에 숨어 물어보지 말고 사람에게 물어볼 줄 아는 용감한 엠지였으면 좋겠다. 사실 엠지는 너무 착하게, 순하게 커서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