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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Nov 06. 2023

엠지티안, MZ티안나게 살게10

그냥 말을 안하는게 어때?

썰로 다 풀어놓기에는 모호한 이야기들이 있다. 뭐랄까, 묘하게 기분이 더러운데 상황을 표현하자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것 같은? 그런 경우가 많았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 그럴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


얼마 전 아이가 내 초상화를 그려준다며 자리에 앉으랬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엄포를 놨는데, 나는 이것저것 쳐다본다고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래서였나. 완성된 그림을 보니 한쪽 눈은 위를 보고 한쪽 눈은 아래를 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웃기잖아 좀 이상해"

"..........(삐짐)"


어느 대목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이해를 못하고 토라진 애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가 내 그림 못생그렸다고 했잖아"

"아니 이상하다고 했지 못그린건 아냐"

"그거나 그거나 같은 말이야"

"눈이 좀 이상했을 뿐이지 니가 열심히 그린건 엄마도 인정해~"


달래주려고 말을 붙이다가 애는 점점 더 화가 났다.


"엄마, 내가 열심히 그렸으니까 그냥 잘했다고만 해주면 안돼? 이상하다는 말은 엄마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이 들어서 속상한 말은 그냥 안하는게 좋아."


여기서 한방 맞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니 말도 맞아. 근데 항상 잘했다고 칭찬만 들을순 없어. 엄마는 니 말대로 해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거야. 엄마보다 더 심하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니가 화내고 투정부리면 너만 속상해져.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지."


나는 아마 이 말을 할때 얘가 아이라는걸 잊고 있었다보다. 나도 모르게 본심이 쏟아져나왔다. 어찌됐든 둘은 극적인 화해를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후배들과의 문제도 늘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마치 많은 후배들을 다뤄봐서 MZ에 대해 아는 척을 했지만, 사실 많은 후배들을 쫓아낸것도 나였다. 그들이 퇴사할때마다 분노하고 실망했지만 대표의 눈에 나는 그저 후배들을 매몰차게 후리는 독한 팀장이었다. 다행히도 대표의 욕심을 채워주며 회사 성장에 기여했기 때문에 그 점을 내게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표의 마음을 알게된 건 어느 회식자리에서였는데, 그는 실수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도 최팀이 쫓아냈잖아. 우리 최팀이 좀 별나지."


물론 다는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 정도로 봐줄수 있다. 남아있는 후배, 그리고 함께했던 많은 후배들과 나는 꽤 좋은 관계를 갖고 있고, 나 역시 그들을 정말 따뜻하게 생각하고 있다.(이것까지 내 착각이라면, 좀 아주 많이 슬퍼질지도..) 아무튼, 대화의 꼬리를 물고 생각해보니 아이의 말은 분명 틀린게 없었다.


상대가 들어서 속상할 일이면 얘기하지마라는 아이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특히 내 평가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이에게는 더 그렇다. 나는 백번 양보에서 한 번 건넨 충고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전부였을수도 있다. 참는다고 참지만, 사실 참아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참지 못해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고는 "끝까지 못참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것 중 최고 난이도는 '말'이다.


말을 참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다. 입술 하나 덮으면 그만인데, 굳이 무거운 입술을 열고 말을 내뱉어야만 했을까. "근데 말이야..."로 시작되는 대부분의 충고는 쓸데없는 말이었을수도 있다.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의 말로 유추해봤을 때 분명 그를 속상하게 했을 수 있다. 


나는 분명히 '이상하다'고 했지 '못그렸다'고는 안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상하다와 못그렸다는 동일한 단어로 인식된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언어의 범주 차이다. 최대한 정제된 언어와 미묘하게 다른 뜻을 을 요긴하게 잘 써서 대화를 하는 것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대화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자어의 사용, 줄임말, 은어(욕이 아님. 업무상 필요한 상용어), 인터넷용어, 시적 언어 등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잘 쓰는 언어가 있다. 거꾸로 얘기하자면 잘 쓰지 않는 언어도 있다.


아무리 미화한다고 한들, 선배의 평가가 절대적인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약한 부정의 표현이라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점잖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해도 날카로운 말의 뼈는 피해갈 수 없었을거다. '상처받았다''왜 그렇게 얘기하냐''내 마음은 생각 안해주냐'는 서운함이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휴직 후 아이와 지내며, 그들과의 과거 인연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아이를 가르치듯, 더 친절했어야 했나. 언어를 처음 배워가는 아이처럼, 어쩌면 그들에게도 회사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시간과 인내를 가졌어야 했던걸까. 참으려면 끝까지 참았어야 했고, 다물려면 끝까지 다물었어야 했나. 나는 좋은 선배였나, 나쁜 선배였나.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하겠나. 우리의 생각이 뭣이 중헌가. 그냥 이렇게 얘기하는게 빠를 지도 모른다.


"그 친구가 MZ라서 그래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더 내 자신을 고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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