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 Review
현재 가장 주목받는 영화인 중 한 명인 그레타 거윅의 첫 연출작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2014)를 보고 왜 '걸(girl) 후드'는 없는 것이냐며 쓰게 된 이야기라고 한다. <레이디 버드>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지만 성장기를 지난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에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함을 의심하지 않지만 자신을 좋아해 주길 끊임없이 요구한다.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나를 위하는 것과 나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삶의 과제는 어쩌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바닥은 누구보다 내게 제일 잘 보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좋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레이디 버드>가 뛰어난 이야기꾼인 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좋아하기 어려운 구석들을 가감 없이 보이는 인물을 1인 중심 캐릭터로 둔다. 이입이 어려운 설정이다. 그러나 관객은 크리스틴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겪으며 우리의 주인공을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의 중심 갈등 관계는 크리스틴과 엄마 매리언이다. 이 모녀는 뼛속까지 공통점이 많다. 끊임없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불만족하는 크리스틴은 매리언과 상당히 유사하다. 가정을 꾸린 책임감에 현실을 직시하는 매리언이지만 그녀도 꿈과 동경이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크리스틴과 매리언은 둘 다 <분노의 포도>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부유한 이웃동네 집구경을 하며 공상에 젖길 좋아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둘이 마주 보고 같은 자세로 자는 모습이다. 이는 둘이 깊은 공통점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독단적이고 강한 성격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인정을 가진 두 인물에 대한 묘사는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통한 말해주기 방식, 그리고 행동을 통한 보여주기 방식을 통해 그려진다.
딸에게 늘 현실을 직시하라고 잔소리하는 매리언이지만, 동시에 필요할 때면 할인매장에서라도 딸의 드레스를 사주는 엄마이다. 함께 쇼핑을 하다가 탈의실 안에 들어간 크리스틴과 매리언이 나누는 대화는 둘의 갈등의 핵심을 드러낸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최선이면 어떡하냐는 크리스틴의 말에 매리언은 대답하지 못한다. 결국 매리언도 딸에게 자신이 욕망하는 이상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모녀 간에 표상되는 갈등의 근본은 현실과 이상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각각의 내면에서도 치열하게 일어나며 작품은 이 대비를 연출로 표현해낸다. 매리언이 감상에 젖은 귀가길을 지나 현실로 가득 찬 집에 도착해 차문을 닫는 순간 음악은 일순간 끊긴다. 극적 환상, 감정선을 모두 깨버리는 과감한 연출까지 시도하며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크리스틴이 설렘과 희망에 부풀어 오른 장면 직후 이어서 매리언이 금전적 주제를 들어 현실을 끌고 들어온다. 현실의 침입으로 인해 산산조각 난 이상은 감정적 과장 없이도 그 자체로 강렬한 대비를 선사하며,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작품 전반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각자 자신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 과정은 크리스틴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녀가 동경하는 것들의 허상을 깨닫고 본연의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동경은 어디까지나 동경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 동경은 '부정'을 전제하는데, 나의 현실을 부정하고 다른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동경의 방향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지향성에 대한 비판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닿을 수 없는 이상으로의 지향은 현실과 현재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90점을 맞은 시험 점수를 부정하고 100점만을 바란다면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크리스틴'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이름 '레이디 버드'를 고집하는 반복적 행위도 크리스틴의 심리를 표상한다.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레이디 버드'는 사실 그녀가 특별하지 않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이 강조점은 자기 스스로에게서 발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성립되는 것이기에 불완전한다.
부잣집, 잡지 모델 같은 몸매와 얼굴, 학교에서 주류에 속하는 잘 나가는 친구, 멋진 남자 친구, 가장 소질 없는 과목인 수학, 섹스, 담배, 담배, 술 그리고 대도시. 크리스틴은 거짓말까지 동원하여 자신이 동경하는 이 모든 것들을 쟁취해나간다. 가장 좋아하던 수녀님과 베스트 프렌드를 버리면서까지.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허망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같이 참 별 게 없다. 특별하길 욕망하는 크리스틴의 환상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건 섹스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황홀경 자체일 것이라 생각했던 섹스는 시시하기만 하다. 그와중에 크리스틴은 카일에게 프롬 동행을 확인한다. 얼마나 자기 자신이 끔찍했을까. 카일의 집을 나오며 엄마 차에 탄 그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성인이 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그토록 바라던 대도시로 떠난 크리스틴. 동경하던 모든 것들의 허상을 마주하며 그녀가 정착한 곳은 다름 아닌 본래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환경이다. '섀크리멘토'로 대표되는 그녀의 가정, 출신, 성장환경 등 그녀가 부정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이질적인 존재들의 출현을 겪은 뒤 크리스틴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준다.
낯선 도시, 파티에서 만취한 크리스틴은 다음날 아침 엉망진창으로 병원에서 눈을 뜬다. 정처 없이 걷다가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성당. 미션 스쿨이 싫다고 고등학교 내내 지루해하던 그녀는 찬송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한다. 눈부신 엔딩이다. 크리스틴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엄마를 이해한 순간이며, 그로 인해 자신을 용서하는 순간이다.
가족, 엄마와 딸, 사춘기, 갈등, 화해의 소재는 진부하다. 하지만 이 성장영화는 톡톡 튀는 신선한 주인공의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며 담담한 태도로 그녀의 시간을 따라간다. 아주 솔직한 누군가의 고백은 관객이 스스로를 긍정할 힘을 준다. 크리스틴의 성장은 융의 자기합일이며 들뢰즈의 자기 긍정이기도 하다.
글의 제목은 심보선 시인의 '청춘'에서 인용했다. 수많은 혼란과 자기 부정이 오고 가는 청춘의 시절을 담은 구절들은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 반짝반짝 빛나는 어딘가를 남몰래 흠모하던 시절의 못난 우리를 부끄럽더라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며 시를 끝으로 글을 맺는다.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 '청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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