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D+16|캄보디아 씨엠립
여행 전부터 꼭 보고 싶은 명소로 손꼽아온 앙코르와트. 드디어 그것을 보러 캄보디아 씨엠립에 왔다. 앙코르와트는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3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녀도 다 돌아보기 어렵다. 그 수많은 앙코르와트의 유적 중에서도 프놈바켕은 일몰 명소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나 역시 첫 일몰 장소로 프놈바켕을 택했다. 약간의 산길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일몰 시간보다 1시간 일찍 그곳을 찾았다. 어라?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참 아래까지 줄이 늘어져있다. 게다가 알고 보니 한 번에 입장 가능한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나는 해가 다 진 후에야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포기하고 내려가려는 찰나, 내 뒤로 꽤나 많은 인원이 우르르 줄을 선다. 이런 젠장, 괜히 이러면 줄 이탈하는 게 손해 같잖아… 차라리 맨 뒤였으면 쿨하게 뒤 돌았을 텐데,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던 나는, 역시나 깜깜해지고 나서야 그곳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미련이 남은 탓에, 다음날도 나는 프놈바켕의 일몰을 택했다. –일몰 명소로 불리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는데, 보통은 하루에 한 곳씩 택해서 가곤 한다- 오늘은 2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나는 30분도 채 되지 않아 위에 올라갈 수 있었고,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에 앉아 열심히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곧 멋진 일몰을 보게 될 텐데, 모기쯤이야!
일몰 30분 전. 이거 뭔가 불안하다… 날씨가 너무 안 좋잖아? 금세 먹구름이 끼어버린 하늘은 불길한 예감을 가져다주었고, 늘 그렇듯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해가 언제 졌는지도 모르게 깜깜해진 하늘. 그것이 내 두 시간 인내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셋째 날.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기기 마련. 나는 3일 관람권을 끊어두었기에, 앙코르와트 마지막 날이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프놈바켕 일몰은 보고 만다!” 호스텔 리셉션 직원에게도 큰 소리 떵떵 치고 나왔다. 모든 것을 올인한다는 마음으로, 3시간 전 누구보다 빠르게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역시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카메라 세팅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그래, 오늘도 날씨가 퍽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해 지는 건 분명 볼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인터넷은 당연히 안 터진다.) 3시간은 사실 굉장히 길다. 하지만 지루함보다는 3일 내리 기다려온 그것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걱정, 기대감, 흥분감, 설렘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까지 일몰을 간절히 기다리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뭐야, 벌써 밤이야?
에이, 또 아침이야?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는커녕, 하늘 한 번 안 보고 지낸 게 몇 년이었다.
그러던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해가 뜨길 기다리고,
대낮부터 죽치고 앉아 해가 지길 기다린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기다림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몰 시간이 다가왔다.
“에이 오늘 일몰 보기는 글렀는데?”
옆에 앉아있던 이의 말에 놀라 앞을 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이 어느새 자욱해져 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었는데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자, 뒤에서 머니가 어깨를 토닥인다.
- 머니는 씨엠립 숙소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다. 정확히는 내가 머물던 호스텔 사장님의 조카…-
“사실 앙코르와트에서 일출, 일몰을 제대로 보는 건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야”
“그렇지만… 나처럼 3일 내리 도전하고, 3일 모두 못 보는 경우도 흔치는 않겠지?”
머니가 말없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까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아차- 싶다.
“음… 그래도 씨엠립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네…”
그제야 머니는 활짝 웃어 보인다.
오늘 일몰을 볼 수 없음이 분명해지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하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에 발을 떼지 못하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반 이상의 사람들이 내려가고 난 후였다. 머니가 나를 부른다. “저거 봐!”
여명이다. 해가 지고 난 후 주변의 안개와 구름이 조금은 걷혔는지 주변이 바알갛게 타오른다. 그 붉은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넋을 놓는다.
해의 잔재.
붉은빛의 몰락을 위로하듯, 은은하게 차오르는 또 다른 붉은빛.
그 빛이 내 등을 토닥이는 것만 같았다.
"세 번이나 해가 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네가 실패한 것은 아니야."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 네 위로가 맞아.
지는 해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야.
이때부터였다.
내가 일몰보다 여명을 더 사랑하게 된 것은.
그리고,
여명을 보면 왠지 위로받는 기분이 들게 된 것은.
존재는 감동을,
잔재는 위로를 준다니.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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