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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n Oct 07. 2018

쓰는 삶

생각하는 글

일 년 조금 넘은 기간 동안, 같은 일,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글을 쓰곤 했다.

우린 공동의 '일'과 관련된 주제로 쓰기로 했다. 디자인과 디자인스러운 무언가의 경계에서 컨설턴트 혹은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리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어렵지만 필요하고, 배운 적 없지만 잘해야 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식의 이야기도 글로 옮겨낸 적 없는 평범하다 못해 평범의 기준에도 못 미칠법한 경험을 가졌지만,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가슴속의 막연한 꿈을 버리지 않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뭔가를 써내려 갔다.


굳이 겪어봐야 알까 싶지만 역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당장 글로 옮길 수 있을 만큼의 생각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다니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쓰면서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글을 '쓰다'와 애를 '쓰다', 신경을 '쓰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다가, '그림'을 '그림'처럼 한글은 참 재밌다는 다른 생각이 들어 '쓰다'의 대한 흥미는 금세 식어버렸다.


글을 쓰지 않고-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는 종종 동일한 세계에 도달했다. 그것은 마치 한참 돌다가 멈춘 세탁기 속의 빨랫감처럼, 사무실 책상 밑에 엉켜있는 전선들처럼 어떤 카오스의 모습과 같았다.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포기해버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수많은 고민과 영감, 의식의 흐름들이 서로 엉켜있는 상태. 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지만, 그렇게 쌓인 시간만큼 나아가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을 무렵,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쓰다 보면 보일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동안, 기대와 희망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이 그다지 어렵거나 괴롭지 않았음에도, 늘 내일의 일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이를 먹은 만큼 나도 더 강해지고 발전했을 테지만, 아직은 바로 설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수형을 잡는다며 곁가지를 잘라줬던 화초처럼, 그동안 흩뿌려 놓은 많은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야 하는 시기가 내게도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버려졌던 생각의 조각을 모으고, 조금 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들고, 일상이라는 매 페이지에 나만의 향을 담아내는 것.

그 시작은 분명, 조금씩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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