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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n Nov 12. 2018

가을처럼 여행하기

일상 반대편의 가을 일기


나는 가을을 닮은 여행이 좋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천천히,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처럼 조용히 머무는 여행말이다.

목적지도, 시간도, 할 일도 따로 정해두지 않은 채

익숙한 듯 낯선 골목에 들어서고, 아무 걱정 없이 길을 잃어도 되는 하루.

특별함을 찾아 나서는 일상이 아닌,

아무렇지 않은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내가 바라는 가을을 닮은 여행이다.




가을 밤 공기가 차분히 잠에 들 때 잠자고 있던 여행 세포는 깨어난다.

여름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참을 수 없어서, 겨울엔 솜이불을 뒤집어 쓴 듯 무딘 움직임이 싫어서,

봄에는 그저 모든 것이 겨울잠에서 덜 깬듯 뒤숭숭해서 잠자코 있던 여행 세포가.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싶을 만큼 적당한 온도와 햇빛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습도와 바람이, 20대 같은 여름과 서슬푸른 겨울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가을의 이름을 만날 어느 날.

그 계절은 나를 낯선 곳으로 이끌곤 한다.








겨우 잠시 머물거나 스쳐지나갈 법한 작은 도시에서 나는

이른 아침의 표정을 살피고, 점심 무렵의 골목길 냄새를 맡고,

저녁이면 집집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주워 담곤 했다.


어떤 날은 이름 모를 정류장에서 몇 대의 열차를 보내 보고,

마을 언덕에 올라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거나,

골목길 끝자락의 한적한 공원에서 만난 나이 많은 노신사의 발걸음을 무작정 따라가 보기도 한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다 보면,

조금 더 익숙해져버린 나만의 장소가 생긴다.

그 곳의 풍경, 냄새, 귀에 스치는 소음들과

사람들의 표정, 움직임들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

나에게 그 곳은 익숙한 곳이 된다.


누군가 내게 어디를 여행했냐고 묻는다면,

내게 잠시나마 익숙했던 그 곳을 여행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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