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계림-난닝 그리고 하노이
1. 우한에서 계림
내일이면 다시 우한을 떠나 계림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빨리 움직이며 우한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현재 묵고 있는 호텔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이 카페거리가 있는 탄화린. 밤새 타고 온 기차로 몸이 찌뿌둥하여 별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는데 정말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1시간을 걸어 탄화린에 도착했다.
골목에 카페들이 줄지어 있고 중국 서민이 살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곳이라지만 카페 거리는 생각보다 짧아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현주민들의 시장과 아파트 모습이 정겨웠던 곳으로 기억된다. 슬슬 목이 말라 카페거리에 왔으니 카페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선뜻 들어가 지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다 뭔가 오래된 고풍스러운 카페가 눈에 들어와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 1시간을 걸은 터라 목도 마른 때였다. 옛날 경양식 집 느낌이라 선택을 잘했다 싶었고 밀크티를 주문하여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베트남에서 파는 밍밍한 밀크티 정도는 되겠지 싶었는데 연유 맛이 너무 강해서 마시기가 힘들어도 컵이 비스듬하게 세워진 모습은 신기했다.
카페를 나와서 출입구를 다시 보니 예의를 갖춘 옷을 입어야 들어올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그때 나는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는데 나 말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차림이었다. 늘어진 티셔츠에 허름한 반바지 같은 시장 갈 때 입는 옷 같은걸 입지 말라 그런 뜻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 선택한 장한로 보행자 거리까지는 걷기엔 무리라 생각되어 지하철로 이동했다. 습한 날씨 때문에 더 이상은 걷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중국답게 보행로를 사이에 두고 유명 브랜드 제품을 파는 상가들이 즐비했다. 혹시나 해서 나이키 매장에 들어가 봤는데 그 당시만 해도 달리기에 큰 흥미가 없어 대충 의무감에 둘러보고 나왔다. 아마 지금 같으면 여러 개의 운동화도 신어보고 운동복도 골라보고 했을 텐데. 배가 고파 가락국수를 먹고 밤에 이쁘다는 광구 광장으로 뜨겁고 습한 날씨 속에 다시 걷기로 했다.
광구 광장은 스페인 거리로도 유명하고 저녁에 하나 둘 불이 켜지는 대형 상가들이 예쁘다고 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하나 샀는데 소매 부분이 고무줄이라 불편해 결국 입은 적은 없다. 사실은 구경만 하려고 들어간 작은 상점에서 그냥 나오기 미안해서 산 거였는데 나중에 많이 후회를 했었다. 그냥 나올걸 이러면서. 저녁때가 다되니 상점들의 불빛이 하나하나 켜지고 예쁜 모양으로 변할 때 즈음 내일 아침 계림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호텔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공항만큼이나 거창하게 큰 우한 역으로 가서 역 입구에서 여권과 함께 차표 검사, 개찰구 앞에서 표검사 한번 더를 거쳐 기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단거리 이동이라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기차표를 특실로 구입했다. 청도-제남 구간의 특실보다 훨씬 넓고 편했도 간식 박스까지 줘서 좋았다.
안 좋았던 점은 한 가지. 원래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중국 아저씨가 앉더니 커피를 사준 다기에 거절하고 내 돈으로 주문해 마셨고 계속 말을 걸어서 ( 말도 안 통하는데......) 성가셨다. 다행히 기차표 검사 때 내 옆자리가 아닌 뒷자리라서 다시 자기 자리로 이동되어서 속으로 쌤통이다!라고 외쳤는데 그 아저씨가 내 뒷자리에 앉으면서 들고 있던 차를 쏟아 바닥에 내려둔 내 배낭을 적셔버려 다시 확 짜증이 났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아까부터 계속 귀찮게 하고 차까지 쏟아 더 성가시게 한 게 너무 미워서 그냥 못 들은 척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바깥 풍경을 보고 책을 읽고 하다 보니 어느덧 기처는 계림에 도착했다.
계림 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숙소를 잡은 용호 공원 쪽 거리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서 내려 걷다가 용호 공원 강가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가 너무 예뻐 들어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차이 티라테 아이스와 야채빵을 시켜 한시름을 놓았다. 숙소까지 가는 길을 계속 검색해 봐도 역시 구글 지도가 정확히 작동하지 못하는 중국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호텔 리뷰를 보면 위치를 찾기 쉽지 않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여행을 오래 한 자만심으로 찾겠지 싶어서 제대로 더 조사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결국 경찰 같아 보이던 중국인에게 핸드폰을 내밀어 위치를 물으니 호텔 전화번호를 보고 바로 전화를 해서 위치를 파악하더니 나보고 데려다준다며 태워주었다. 호텔 근처까지 가서도 호텔이 안보이니 다시 호텔로 전화하고 길에서 사람들에 물어 물어서 호텔 앞까지 정확하게 데려다 주어 너무너무 감사했던 기억이다. 중국에 대한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나쁜 소식들이 계속 전해지고 있지만 막상 현지에 가면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기도 하여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나마 계림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예약을 했던 그 호텔은...... 그냥 하루만 자고 옮기면 어떨까 하는, 아 또 짐을 들고 호텔을 옮겨야 하니 짐도 제대로 못 풀게 뻔하군 하는 생각을 바로 해주게 만들어 준 호텔이었다. 방 안에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있어 열어보니.. 뭐 옥상이 있어서 좋긴 했지만 걸어놓은 빨래에 오래된 매트리스에, 그래도 방안은 그나마 깔끔했지만 문과 바닥 사이의 틈이 너무 커서 혹시 쥐라도 들락거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아무래도 다시 숙소를 찾아야겠지 싶었다.
이번 여행은 하루빨리 하노이로 이동하는 것이 목표라 2011년도 봄에 갔었던 이강유람을 위해 방문한 양소는 가지 않고 그냥 계림 시내 관광만을 하였다. 그 당시 양소 호텔에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호텔 내 도난과 분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귀중품은 반드시 들고 다녀라" 고 했던 경고문에 이곳은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나 보다 하고 항상 긴장하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해 계림 시내는 평화롭고 도시답게 화려했고 그래서인지 뭔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용호 공원 강가를 구경하다 시장에서 미니수박을 통째로 주스로 만들어 주는 것을 구경하다 하나 사 먹고 (차갑고 맛있다!) 즐겁게 그 날밤을 보냈던 것 같다.
아침이 밝아 오니 이 허름한 호스텔도 그럭저럭 지낼만했으나 어제 강가를 걷다 발견한 4 스타 호텔에 묵어보고 싶어 이미 예약을 해놓은 터라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서 호텔로 이동했다. 4-5만원 가량의 중국의 4성 호텔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해서 옮겼는데 위치는 바로 강가 앞인 데다 생각 외로 좋아서 엄청 만족스러웠다. 너무 럭셔리란 게 아닌가 조금 양심의 가책도 느껴졌으나 나는 청결하고 폭신해 보이는 침대로 몸을 퐁당 누워 버리고 그 죄책감에서 해방됐다. 바로.
낮에는 4성 호텔을 지불한 비용을 뽑고자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엔어컨을 쎄게 틀고 추워져서 욕조에 몸을 담가 목욕도 하고 중국 텔레비전도 보고 누워있고 하다가 나가서 계림 백화점을 구경하며 다음 날 탈 기차에서 먹을 양식도 사고 시장도 구경하고 특이한 모양의 치마까지 1개 샀다. 쇼핑까지 하니 조금 신이 나는 밤이었다.
밤에 용호 공원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이강 폭포 호텔. 처음엔 내가 신기루를 보고 있겠지 했다가 아닌가, 왠지 건물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혹시 사고라도 난 건지 뭔지 사람들도 웅성웅성 모여 있고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걸까 하고 다가갔다가 멋진 빌딩 폭포를 운 좋게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내일은 하노이 국경에 한 발자국 다 갈 수 있는 중국의 마지막 도시가 될 난닝으로 출발하는 날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난닝에서는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베트남 관광비자 신청 그리고 베트남 국경을 넘어 하노이까지 데려다 줄 버스 또한 알아봐야 해서 난닝에서의 2-3일 동안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닝까지는 고속기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짧은 구간이지만 인터넷으로 특실이 아닌 일반 좌석을 예약했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했을 때 안 좋은 점은 좌석 지정이 힘들다는 것이다. 좌석은 예약번호를 들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살 때 창문 옆자리로 달라고 강조를 해야 주는데 운이 나쁘게도 표 구입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2:3의 구조인 중국 기차에서 3의 중간 좌석에 예매가 되어서 우선 2시간 반만 참아보자는 심정으로 벌써부터 한 숨이 쉬어졌다.
2. 계림에서 난닝
그리고 다음 날 낮에 나는 계림 역에서 난닝으로 가는 열차에서 중간에 끼어 2시간 반을 답답했지만 그래도 목적지로 향해간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난닝으로 향했다.
이렇게 드디어 난닝이다.
인천-칭다오(청도)-지난(제남)-우한-구이린(계림) 그리고 난닝까지.
이제 남은 건 난닝에서 하노이까지! 마라톤으로 따지면 풀코스 중 30km 구간 정도일까? 하는 개인적 추측.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