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난닝-광저우-샤먼-타이완-창사-상하이-지난-인천
* 하노이에서 난닝-광저우-샤먼-타이완까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육로로 지금까지 4번을 넘어 돌아왔다. 첫 번째는 태국에서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 사파에서 중국-홍콩-마카오를 거쳐서, 그리고 세 번째는 하노이에서 난닝을 거쳐 한국으로. 네 번째 때는 하노이에서 중국 비자를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노이-홍콩 구간은 비행기로 가 홍콩에서 중국 비자를 받아 홍콩에서부터 인천까지 육로로 돌아 간 적이 있다. 지금 쓰는 이 육로 여행은 하노이-한국 간의 두 번째의 여정으로 하노이에서 중국 그리고 대만을 건너갔다 다시 중국에서 인천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이땐 2016년 10월. 베트남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갑자기 프로젝트 운영국의 분열로 인해 프로젝트를 더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이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때였다. 앞날이 막막하기도 했고 위염까지 생겨서 아주 힘든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정든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취업을 노려봐야 하던 때였는데 이왕 가는 거 육로로 여행도 하며 조금 여유를 부려보자 했다. 앞으로의 취업 걱정 때문에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녔고 여행 중간중간 취업자리도 알아보고 이런 상태에서 여행이 다 무슨 소용이야 라는 심정 50프로 그리고 나머지 즐겁고 재밌는 50프로의 심정으로 육로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던 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여행이나 신나게 할 걸 하는 생각이 더 큰 것도 같다. 그래, 놀 때는 그냥 신나게 노는 게 낫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즐거운 시기였고 왜 더 재밌게 노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하노이에서 중국 더블비자를 받자마자 바로 Gia Lam 역으로 가 하노이-난닝 기차표를 예매했다. 중국 비자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표를 내주기 때문에 꼭 중국 비자가 붙어있는 여권을 들고 표를 사야 한다. 다행히 당일 밤 표가 있어서 바로 구매해 버렸다. 2016년 10월이었고 표는 729000 동. 한화로 대략 36000원가량이다. 출발은 밤 9:20분, 소요시간은 12시간 정도이고 침대에 누워서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생각 외로 저렴했다. 밤 9시경 짐을 들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나갔다. 중국 철도 승무원들은 베트남 철도 승무원들과 달리 약간 경찰이나 공안 같은 느낌으로 아주 엄격하게 큰소리로 승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어서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내 침대는 캐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아래층에 위치해 있었다. 짐을 풀고 다리를 뻗고 누워 있으려니 중국인 커플이 내 옆 침대 위 아랫칸으로 각각 들어왔다. 기차는 일반 베트남 기차와는 달리 깔끔했고 복도에는 고급스러운 양탄자가 깔리고 침대 위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도 깨끗하고 해서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옷걸이도 있어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재미로 그냥 걸어 놓아 보았다. 곧 기차가 출발하더니 중국인 승무원이 티켓을 확인한 후 번호표를 나누어 줬다. 이제 진짜 중국으로 가나 싶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중국인 커플은 바로 잠에 들었다. 커플이라 내심 시끄럽게 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조용했다. 내 위칸 침대는 빈 채로 갔다. 어느덧 잠에 들었는데 새벽 2시경에 기차는 베트남 국경인 Dong Dang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짐을 들고 서둘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1년 넘게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캐리어를 끌고 가는 터여서 짐이 무거워 낑낑거리며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다. 한참 자고 있던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이 그냥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출입국사무소로 들어가 줄을 서서 짐 검사를 받았다. 아무래도 국경이라 그런지 경비가 삼엄하고 짐 검사도 꼼꼼하게 하는 것 같았다 (경험 상 버스로 국경을 넘을 때가 훨씬 쉽고 짐 검사도 대충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짐 검사를 마치고 여권에 출국 도장까지 찍은 후 다시 기차로 돌아갔다. 기차도 기차 나름대로 심사를 받고 있어서 각 개인이 짐 검사 및 출국 도장까지 찍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기차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기차 내부 검사가 끝나야만 기차로 돌아갈 수 있어서 생각 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다. 다시 기차 안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중국인 커플은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잠을 청했다. 나는 이 기차가 처음이고 국경 스케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앞으로 곧 중국 국경에 도착하여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아 잠을 자지 못했다. 기차는 2시 50분경 다시 출발했고 나는 곧 중국 국경에서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며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한 기차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중국인 커플은 코를 골며 쿨쿨 자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경에 기차는 드디어 중국 국경인 핑샹에서 다시 멈췄다. 베트남 시간으로는 3시 30분이니 베트남 국경과 중국 국경이 기차로 40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거의 뜬눈으로 앉아 있다 눕다 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또다시 비몽사몽에 입국심사를 위해 중국 국경에서 짐을 들고 서둘러 내리느라 너무 피곤했다. 중국에서는 더 치밀한 짐 검사와 함께 입국도장을 찍고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새벽 6시 15분경에 기차는 다시 핑샹에서 움직여 난닝으로 향했다. 너무 피곤한 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국가 간의 출입국 사무소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새벽에 2번이나 깨어 긴 줄을 서 가며 짐 검사와 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행히 아침이 되어 9시경 기차는 난닝 역에 도착했다. ATM에서 중국돈을 뽑아 다음 목적지인 광저우행 기차표를 예매한 후 며칠 전 인터넷에서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던 만두가게에 진짜 중국에 온 것이 실감이 나면서 조금 떨렸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예약했던 호텔이 아주 만족스러울 줄 알았다.
호텔은 2만 원 정도 했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으나 시내에서 너무 멀고 화장실 문도 대충 만든 유리 미닫이 문이 달린 호텔방이었다. 일본인 여행자의 리뷰를 보고 선택한 호텔이었는데 그만큼 난닝에서는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호텔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난닝에 2번 더 와 보고는 알게 되었다. 호텔 앞 빵집에서 빵을 하나 사들고 체크인을 하고 (다행히 얼리 체크인이 가능했다) 씻고 좀 쉬다가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난닝에서는 하루만 지내고 다음날 바로 광저우로 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중국의 군밤을 사 먹은 일이었다. 군밤을 먹으면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구경하고 있으니 곧 날이 어두워지고 건물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근처 먹자골목에 들어서니 역시 베트남과 스캐일이 달라 과일이며 해산물이며 모든 게 다 큼직큼직하고 놀라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해서 먹을 것을 대충 사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싸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버스 편이 번거로워 택시를 타고 기차역 근처로 가서 간식도 사서 스타벅스에 앉아 차이 티라테를 마시며 여유를 좀 부리다가 맥모닝을 싸들고 광저우행 기차를 탔다.
고속열차라 광저우까지는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창가 쪽에 앉아 바깥 풍경도 보고 책도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기차는 광저우에 도착했다. 광저우 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다음 목적지인 샤먼행 기차표를 구입했다. 광저우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움직일 계획이라 여행자를 위한 지하철 패스를 구입하고 예약해 둔 호텔로 갔다. 난닝 호텔이 맘에 들지 않아 광저우에서는 조금 좋은 호텔에 머물고 싶어 5만 원가량의 아파트 호텔을 예약했다.
하룻밤만 자고 바로 샤먼으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은 데다 샤먼에서는 하루도 자지 않고 바로 대만으로 배를 타고 갈 계획이라 광저우에서는 조금 여유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예정보다 비싼 숙소를 예약했다. 위치도 시내에 있고 호텔도 넓고 좋았는데 주방은 있었으나 주방기구가 하나도 없어서 요리는 할 수 없어 실망이 되었다.
호텔에 들어오기 전에 들른 백화점에서 김밥 등을 사서 호텔방에서 간단히 먹고 광저우 시내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와서 그런지 도시가 주는 설렘이 있었고 나무도 많아 공기도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백화점 구경도 하고 그렇게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큰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겨보는 게 이 날의 목표였다. 우선 베이징루를 들러 여기저기 구경하며 쏘다니며 도시를 만끽했다.
저녁때는 야경이 유명하다는 화청 광장으로 가서 광저우 타워를 구경 갔다. 600미터의 높이에 7,000개의 LED 조명이 색색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강가에 위치해 유람선 구경도 하며 돌아다녔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셀카를 찍고 있어서 나도 한 번 찍어 볼까 하고 쑥스럽지만 광저우 타워를 뒤로하고 셀카를 찍어봤으나 타워 모습이 잘 잡히지 않아서 실패했다. 역시 셀카랑은 맞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광저우 북역으로 가서 샤먼행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 맨 앞자리에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아 다리까지 뻗고 아주 편안하게 영화를 보면서 4시간 정도 달려 드디어 샤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샤먼으로 간 이유는 관광이 아니었다. 샤먼이 아주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고 그저 대만으로 가는 배가 있는 곳이라고만 알고 샤먼에서는 1분도 지체하지 않은 채 바로 샤먼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때 나의 육로 여행의 목표는 모두 중국에서 대만으로 그리고 대만에서 다시 중국으로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상에 정보가 너무 없어 (특히 한국 블로그에서는 정보가 아예 없었다) 잔뜩 긴장해 있던 상태이기도 했다. 배는 저녁 6시 출발인데 내가 샤먼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 늦었다고 생각하여 헐레벌떡 매표구로 가서 배표를 사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굴러가며 매표원을 재촉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내가 간 시간은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서두르는 나를 매표원이 진정시키며 표를 주더니 출발 30분 전에 이곳으로 다시 오면 된다고 위로해 주었다. 혹시나 먹을 것을 파는지 주변을 둘러 봤지만 먹을 것을 파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 흔한 과자 하나 팔지 않아 자판기에서 음료 하나만 뽑아 먹고 저녁은 배에서 해결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나서 드디어 대만으로 향하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샤먼에서 대만으로 향하는 배는 중국배였다. 인천-중국을 오가는 배와 별다른 점이 없이 비슷했다. 각 방에 침대 4개가 있었고 나는 내가 예약한 밑 칸 침대에 짐을 놓고 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샤워실도 있고 식당도 있고 배에 들어가기 전에 면세점도 있었다.
출발 후 저녁식사를 알리는 방송이 있었는데 급식같이 밥을 팔고 급식이 싫다면 개별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나는 볶음밥을 25원이나 주고 시켜먹었다가 그날 밤 배탈이 나서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며 아주 악몽 같은 밤을 보냈다. 중국인들은 흥겹게 마작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밤 12시부터 시작된 뱃멀미였다. 아마 그때부터 배가 흔들렸었나 보다. 뱃멀미와 동시에 설사까지 하여 너무 힘든 밤을 보내다 어느 순간 다행히 잠에 들어 눈을 떠보니 날이 밝기 시작했다. 8시 반에 대만 Keelung시에 도착할 예정이라 일단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했는데 나를 포함한 서양인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인들이라 그런지 샤워실이 아주 텅 비어 있어서 혼자 편하게 샤워를 마치고 하선할 준비를 했다.
드디어 아침 8시 반 정도에 배는 대만의 Keelung시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항구 버스로 20분을 달려 Keelung west ferry terminal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마쳤는데 항구에서 입국장까지 혹시 도망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갖게 할 정도로 먼 거리였다. 대만은 대만인지라 간단한 입국심사 후에 여객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기차역으로 가서 타이베이행 기차를 탔다. 기차라기보다는 지하철 같은 모습이었고 사람도 별로 없어 40분경 편하게 타이베이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새하얗던 내 운동화는 이미 흑탕물로 더러워져 있었고 어젯밤 고생한 탓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던 상태였지만 타이베이는 또 어떤 모습일까 하며 살짝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