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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Oct 18. 2023

24시간 모자동실 왜 안해?

내가 선택했던 산부인과 병원은 24시간 모자동실을 원칙으로 하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점이 이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이유가 됐고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


제왕절개 산모의 경우에는 수술 첫 날만큼은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봐 주긴 하는데 나는 수술 당일에도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고 싶어서 쭉 데리고 있었다. ​


그 덕분에 가장 고생한 사람은 다름아닌 내 배우자였다. 수술 뒤 통증으로 몸을 혼자 못 일으키는 나를 위해 인간 리클라이너 역할을 해주랴, 우는 아이 보랴 정말 바빴다.

​​


24시간 모자동실은, 배우자가 없었다면 결코 그렇게 충만하고 행복한 경험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하면 하기야 했겠지만.)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바람에,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아이가 너무 못 먹어서 많이 울었다. 당시 나는 아이가 많이 울어도 덤덤하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배우자는 아이가 못 먹고 우니까 힘들어했던 것 같다. 게다가 수술 후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니까 수유 자세를 잡기도 그만큼 힘들었다. 그걸 다 조정하고 보조한 것, 그리고 둘째날이 되어 어떻든 일어나 앉아 아이를 안고 먹이려 할때도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고생한 쪽은 배우자였다. ​


그리고 출산 후 사흘차였나, 계속 시도해보았던 손으로 하는 유축(Hand expression)으로 모유가 너무 돌지 않는 것이 확인되자 슬슬 염려스러웠다. 특히 아이 울음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걱정이 됐고 그때서야 분유 스푼 수유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역시 신랑이 일을 전적으로 도맡았다.


​​

모유수유를 계획하고 고집한 과정에서 내 과오라면 과오가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내가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하려면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못하고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내가 아는 방법을 밀어붙이는 것이 역시 결정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다소 무식한 방법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결정을 믿고 따라주었다. 모유를 잘 먹고 있다고 믿을 때나, 스푼 수유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나, 곧바로 병원급 유축기를 대여해 보자는 말을 했을 때나(연휴 중에 퀵으로 받았다). 늘 내 의지를 보조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보다 더 아이를 잘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잘 먹도록 도왔다. ​​


결정적으로는 소아과에 가서 아이 체중이 너무 빠져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배우자는 한 번도 내게 실수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정작 나는 정말 속상했는데. 오히려 침착하게 앞으로의 수유 계획을 다져준 것도 그였다.


​​


그 모든 좌충우돌의 시간, 초보 엄마아빠로서 했던 숱한 실수들과 너무 많이 헤맸던 시간, 이것도 저것도 해보려고 생각하고 말하고 고민했던 5박 6일의 모자동실.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 이 시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모유수유 결심 이전에 모자동실을 하는 병원을 선택했고, 모유수유를 결심하면서 모자동실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모유수유를 중단하게 된 지금에 와서도 모자동실했던 것은 정말 좋은 선택,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다시 아이를 가지고(정말이지 둘째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또 모자동실을 한다고 해도 결코 우리가 경험한 그 날들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같지 않을 것이다. 서투름으로 범벅된 우리 부부와 그중에서 생에 적응하느라 정말 많이 애썼을 내 아이와 처음 살았던 병원 303호, 작은 원룸방 같던 공간. 그 시공간 속에서 신랑과 함께 경험했던 초조함, 불안감, 그러나 행복함, 기쁨, 감사함 모두 내 삶에 오롯이 새겨져 사라지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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