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조약돌처럼 넣고 다니며 들여다보고 싶은 말이 있다. 빌딩숲을 나오기 전, 마지막 회사에서 한 일은 비즈니스 콘텐츠 에디터였다. 여러 산업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모으고 묶는 일이었다. 트렌드라는 것은 정말 자고 나면 바뀌어 있었고, 휴식시간마다 트렌드를 다루는 글을 홀짝이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멀미 나는 지구에서 내리고 싶다는 소설 속 문장을 종종 곱씹었다.
그를 만난 것은 가을 무렵이었다. 옷소매가 길어지고 한 해의 대부분이 지났음을 모두가 실감하게 되는 그 무렵, 그는 가장 바빴다. 그는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변화를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그를 찾아 물었다. “내년엔 어떻게 될까요?” 하고. 그는 별을 관측하는 사람처럼 매일 데이터를 관측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숫자를 관측하며 예상한 변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말은 ‘2021 트렌드’, ‘2022 트렌드’와 같은 이름으로 다가오지 않은 시간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퍼져나갔다. 살아보지 않은 무형의 시간은 그렇게 말과 글로 더듬거릴 수 있는 유형의 시간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시대예보관’을 자처하며 한두 해를 뛰어 넘는 큰 덩어리의 변화를 포착하고 있는 사람. 몇 해 전, 트렌드를 쫓는 나도 그에게 갔었다. 그와 마주 앉아 “코로나 이후의 일은 어떻게 변할까요?”, “내년의 트렌드를 몇 단어로 요약해주신다면요?” 같은 질문을 했었다. 열심히 묻고 충실히 받아 쓰고 글로 옮겨 적었다. 뭐라고 적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지만, 받아낸 말 중 이 한 마디는 오래도록 뇌리에 담겨 있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납니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 내년이 아니면 다음 해에, 다음 해가 아니면 10년 후에라도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그는 말했다. 아주 미세한 땅의 움직임에서 시작되는 지각변동처럼 언젠가 일어날 아주 작은 변화를 포착하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그와 인터뷰했을 무렵, 나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내 몸 밖의 변화를 따라가느라 내 몸 안의 변화에는 무감각했다. 지쳐가던 몸은 아파졌고,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나서야 잘못 탄 기차에서 내리듯 급하게 회사를 나왔다.
식물처럼 누워 몸을 추스르고, 알바로 들어오는 일을 한 개 두 개 해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달아도 보고, 지쳤던 몸에 생명을 품고 있다가 절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말에 흔히 따라오는 인자함이나 인내심 같은 게 전혀 없는데도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시간을 내어 음악페스티벌에 갔다.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는 음악페스티벌엔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최애가 나왔다. 라인업에서 최애를 발견하는 순간, 매번 결제 버튼을 눌렀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 이번엔 몇 개월이 아니라 2년 만의 외출이었다. 전과 다름 없이 해질녘에 최애가 무대 위로 올라왔고, 옷장에서 꺼낸 핑크 슬로건을 손에 들고 그를 응원했다. 그런데 노래를 들을수록 슬퍼졌다. 힘들거나 짜증 난다는 감정이 아닌 슬픔의 감정은 실로 오랜만의 것이어서 깊어지는 감정에 빠져들도록 며칠째 스스로를 놓아두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씻기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결혼 같은 걸 해서. 출산이란 건 또 왜 해서…’ 하고. 어느 날 밤엔 아이를 재우고 <라라랜드>를 틀었다. 자신이 겪지 못한 핑크빛 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결말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결말을 보려고 튼 그 영화에서 남자는 둘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여자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우리,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보자.”
일어나는 일은 결국 일어난다. 오래 전에 넣어두었던 세상의 말이 다시 내 밖으로 나왔다.
며칠 후에는 창덕궁에 갔다. 몇 백 년을 한 자리에 있던 은행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겨우 몇 년 차이였을 거라고.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고, 언제든 헤어질 수 있었는데 헤어지지 않고, 연애만 해도 되는데 결혼이란 걸 하고, 둘과 고양이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전혀 엄마 같지 않은 모습으로 출산이란 걸 하고 회사에 가는 대신 아파트단지에서 유아차를 밀며 평일 오후를 보내는 일.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겨우 몇 년 후에 나는 똑같이 되었을 것이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나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더 있어 몇 년 더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더라도 지금쯤은 나왔을 것이다. 기적처럼 임신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친구들의 출산 소식을 내심 부러워하며 아무도 몰래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겨우 몇 년 전이나 몇 년 후에 일어났을 일들이었다.
살아보지 않은 가상의 삶을 몇 번이고 열어보고 싶은 욕구가 그제야 잦아들었다. 튼튼한 두 다리로 알려지지 않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처음 가보는 곳에서 마음가는대로 술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는 저녁을 보내는 삶. 어딘가에서 보고 들으며 남몰래 동경해 왔던 그 삶은 사실 내 몫이 아니었다. 내가 본 몇 조각의 자유를 즐기기 위해 그들이 감당했을 불안과 외로움을 나는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건 오히려 자유가 없는 시간이었다. 그걸 견뎌내야 할 이유는 너무 분명했다. 너무 분명하게 종일 내 옆에 있었다. 한 남자와 고양이, 그리고 작은 아이. 그게 몇 년 전이든 몇 년 후든 내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내 글이 재미없어졌다. 그만두고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던 몇 시간은 빠르게 다른 일로 채워졌다. 보고 싶던 예능을 보거나 부족한 잠을 자고, 잠들기 싫은 날은 스마트폰을 뒤척이고, 동생이 놀러 온 날은 보드게임을 하고, 혼자 깨어 있는 날에는 미래 걱정을 했다. 일상은 흠난 데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불안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영영 글쓰기를 잊고 살까 봐. 어느 날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떠난 버스를 잡아 타는 심정으로 밤늦게 문의를 했다. 글쓰기 모임에 다시 나가고 싶다고.
모임 첫 주에는 글을 쓰지 못했다. 도무지 글 쓸 시간이 나지 않았다. 시간의 여유가 나는 날은 체력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 글을 썼던 건지 더듬어봐도 기억 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주.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었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을 깨우려 샤워를 하며 뭘 써야 할지 생각했다. 이 제목과 저 제목, 이 내용과 저 내용이 뒤죽박죽인 채로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말했던 그와의 이야기를 서두에 쓰면서 안심이 되었다. 무슨 말이든 쓰고 있으니 제자리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 느낌 그대로 언젠가 다시 글을 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언젠가 일어날 일.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까 나는 지난 시간도, 다가올 시간도 아닌 지금에 앉아 눈앞의 것들을 하자고 생각한다. 영화 속 남자의 말을 빌려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보자고. 지금에 머물러도 천천히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지구는 돌고 시간은 끊김없이 흐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