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가 바라보는 건 내 얼굴, 그 중에서도 입이다. 엄마의 입이 열고 닫히는 모양, 잠깐 열린 입이 내는 소리에 아이의 온 신경이 집중된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의 입에서 소리가 터진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소리. 온전히 스스로 판단하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 한 끝에 혀 끝에서 터져나와 이리저리 모양을 만든 입 밖으로 꺼내는 소리.
엄마는 말하기 전에 늘 궁금하다. 아이를 거치면 이 소리는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하면서 매번 말을 건넨다. 감자는 밤밤, 고기는 꿍개, 사과는 악. 익숙한 세상의 말이 생각지도 못한 옷을 입고 나온다. 전혀 달라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모습으로. 그걸 발음할 때 아이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미지로 가득찬 세상에서 새로움을 길어낸 사람의 발음. 또렷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절대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니지. 감.자.라고 말해야지”라거나 “엄마가 다시 한번 말해볼게. 제대로 들어봐”라는. 세상에 처음 온 그의 언어. 수차례의 연구 끝에 나온 그의 언어는 언제나 옳다. 그저 잘했다고 찬사를 보낼 수밖에. 살면서 온전히 내 힘으로, 내 것을 끌어내본 경험이 얼마나 되었을까를 되새김질 하면서.
가끔, 그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와 서로 얽힌다. 아이에게 미역은 이모.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이름이다. 집에 놀러 온 이모가 주는 미역국을 먹는 날. 이모가 주는 이모. 이모도 이모. 미역도 이모. 아이는 이 헷갈림이 싫지 않은 눈치다. 좋은 건 다 이모! 오히려 환희에 가득 찬다.
좋은 것들의 이름은 또 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신체부위는 배. 어느 날, 어린이집에 다녀오더니 자기 배꼽을 가리키며 네 글자를 말했다.
“배.빵.빵.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라니, 놀랐다. 이후로는 엄마의 배, 아빠의 배, 고양이 누나의 배를 가리키며 매번 빵빵하다고 한다. 배에 심취한 아이는 네 발로 걷는 모습의 인형들을 죄다 뒤집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매번 당당하게 “배!” 하고 외쳤다. 컵의 아래쪽을 보고도 배, 쿠션 아래를 쓰다듬으면서도 배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간식시간에 포크로 찍어준 하얀 것. 그것도 배라고 했다. 잠깐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자기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책에서 본 바다 위에 유유히 떠 있던 것. 세모 모양 돛을 단 그것의 이름도 배. ‘배’라는 말만 듣고도 알았다. 모든 탈것들 중 이 아이는 배를 제일 좋아할 거란 걸.
자동차도, 기차도, 자전거도, 비행기도 타봤지만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배. 아이는 책을 펼치면 능숙하게 손을 움직여 배가 그려진 페이지로 간다. 그러고는 아직 열리지 않은 세계의 신비를 마주하듯 그것을 한참 바라본다. “배…” 하고 나지막이 읊조리면서.
“엄마아빠, 할매할배, 꼬뿌.”
자기 전에는 침대에 누워 복습을 한다. 엄마와 아빠, 할매와 할배, 꼬(모)와 (꼬모)뿌는 짝꿍이기에 꼭 같이 불러야 한다는 자기만의 철칙을 세우고는 매번 함께 부른다. 둘 중 한 명만 있으면 꼭 짝꿍을 찾는다. 할매랑 영상통화할 때는 할배를, 꼬만 집에 왔을 때는 뿌를.
아이 (꼬모)뿌의 아버님은 수제화를 만드신다. 명절에 선물로 주신 아이 구두. 밑창이 없어 실내에서만 신고 있다. 신발장에 차례로 놓인 신발을 바라보다 아이의 손이 구두를 향했다.
“이건 꼬뿌네 할배가 만들어주신 거야.”
누가 준 물건인지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아이를 위해 알려주고 있는데, 곧바로 건넨 말.
“꼬할배 신발.”
아빠의 동생의 남편의 아빠.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사이를 ‘꼬할배’라는 한 단어로 가깝게 만드는 마법. 이후로 꼬할배 신발은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잊지 않고 신겨 달라고 한다.
자주 쓰는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일 때가 있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자주 신듯, 나에게 맞는 단어를 이곳저곳 쓰기 마련이니까. 세상에 쏟아지는 소리를 엮어 만든 새 신발 같은 아기의 말이 반갑다.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감자는 감자지, 뭐” 하고 말하는 날이 너무 빨리 오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감자라고 해도 나한테 이건 밤밤이라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내게 말을 건네주기를, 세상이 처음인 그가 만든 태고의 언어를 내가 잊지 않기를 바라며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