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망설임이 길어졌어요. 요즘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네요. 거의 1년 넘게 이런 상태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앞뒤 재지도 않고 뛰어드는 게 버릇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뭐라도 하려고 하면 그냥 막막해요.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머리가 하얘져요.”
대화할 상대도, 시간도 많지 않은 요즘. 오랜만에 마주 앉은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요즘 잔뜩 움츠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눈이 내리던 계절에는 온통 눈밭이 된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 보면서 생각했었다. 나도 저렇게 새햐안 종이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어느 곳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쪽으로 가면 뭐가 있으려나, 얼마나 가야 하려나.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마음.
봄도 왔고, 여름도 왔고. 사람들도 만나고, 나들이도 가고. 이젠 좀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마음의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든 나를 구해내야겠다고 열심이던 때도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발딛어 보겠다고 열심히 이곳저곳을 누비고, 이 일 저 일을 살펴보던 때가. 그러다 이내 멈춰버렸다. ‘내가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의 돌멩이를 맞고.
하원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고, 아이를 먹이고 씻긴 평범한 하루였다. 목욕을 끝낸 아이에게 잠옷을 입히고 나서 거실 바닥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듯 잠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긴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유아차를 밀지 않고 두 발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일어나. 밥해야지.”
별안간 들이닥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잠 깬 곳은 한국의 우리집. 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밥 달라 조르는 아이를 안고 부엌으로 나선 아침. 오늘은 아이와 남편이 시댁으로 가는 날, 일년 중 몇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아침 온라인 글쓰기모임에 가야 했기에 부랴부랴 아이 짐을 챙기고 눈인사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재밌게 놀다 와. 엄마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하고는 쌩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임이 끝나고 나선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먹던 밥그릇과 장난감이 조금 전까지 아이가 이곳에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에게 너무 쌀쌀 맞게 군 건 아닐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 아이는 아빠와 자기 시작했다. 자다 일어나서도 아빠만 찾는 통에 남편은 자기 몫의 매트리스를 사서 아이방에 깔았다. 아이가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차례차례 생각 난다. 아이를 먹이다 눈물을 쏟고 만 어느 저녁, 책을 읽다 말고 한숨을 내쉰 어느 오후, 빨리 먹어야지! 하고 인상을 써버린 어느 아침. 내 생각보다 항상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아이는 알아버린 것 아닐까. 엄마의 마음을. 엄마는 늘 어디론가 어딘가 떠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자기가 먼저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주어진 텅빈 시간에 조바심이 났다. 어디라도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다가 이내 모든 게 귀찮아졌다. 침대에 누워 고양이를 쓰다듬다 그만 잠이 들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우리집엔 아무도 없다. 잠이 깬 집 안에서 보이는 것들을 치우고, 아이의 이불을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가 생각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매일을 밝고 부지런하게 살 수는 없지. 가끔씩 덮쳐 오는 우울에 온몸을 내맡길 수 있는 여유. 그런 여유가 있다는 거야말로 진짜 행복한 게 아닐까. 나를 휘감은 우울의 감정을 그냥 둔다. 가라앉은 마음을 뒤로 하고 웃어야 하는 사람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지금 안에 그냥 가만히 서 있다.
휘적휘적 노트북을 찾아서는 글을 쓴다. 무슨 말을 할까 고르지 않아도 되고, 누구와 이야기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모니터 위 하얀 종이는 내 이야기를 뭐든 그대로 받아준다. 고스란히 털어놓고, 내가 털어놓고 있는 마음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원하는 무언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던 사람이 그걸 얻고 나서야 ‘이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는 이야기. 알고 보니 자신이 원했던 건 늘 곁에 있었다는 이야기. 알고 보면 정말 좋은 건 이미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로도, 저기로도 가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는 걸지도. 무엇이 그렇게 좋냐고 하면 지금의 나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3년 후의 나는 대답해줄 수 있을까. 10년, 20년 후의 나는 되어야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때 참 좋았다고. 이러저러해서 행복했다고. 나는 행복 속에 있다. 구름 속에 갇힌 사람처럼 새하얀 행복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