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은 어려워

사춘기가 두려워

by 고양이상자

난 우리 아이가 세상 순둥이인 줄 알았다. 크게 울지도 않았고, 토닥토닥하면 잠들고, 주는 대로 잘 받아먹던 방긋방긋 순둥이 아가. 그런데 마음에 안 들면 소리치고, 안 자겠다며 버티고, (4세 무렵 장염으로 입원했던 이후로) 새로운 것을 먹으려 하지 않는 6세가 되어 버렸다.


나: 장난감 정리 좀 하자.

딸: 어린이집에서 많이 했으니까, 집에서는 안 할래.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훈육할 일이 생기는데, 아이의 반응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난감할 때가 있다. 정말이지 일관성 있게 훈육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벌써 이러니, 딸의 사춘기가 너무 두렵다.



#01. 훈육 중에 사과하는 딸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딸이 나에게 크게 혼나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씩씩거리며 반항하기도 하고, 억울한 듯 펑펑 울기도 하는데, 이날은 자기도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말하는 걸 들으면서 중간중간 사과하더라.


나: ~~~~~~~~~~~~~

딸: 미안해요.

나: ~~~~~~~~~~~~~

딸: 죄송해요.

나: ~~~~~~~~~~~~~

딸: 이제 안 그럴게요.


많이 뉘우치는 것으로 보여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딸이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쏴~리


무방비 상태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자기가 아는 사과와 관련된 문장 총출동. ㅋㅋㅋㅋㅋㅋ



#02.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


졸릴 때면 떼쟁이가 되는 딸. 안 자겠다며 난리난리 쌩난리. 뭐가 서러운지 펑펑 울기 시작.


나: 잘 시간이 지났어. 어서 자야지.

딸: 난 더 놀고 싶은데, 엄마 미워!!!!!

나: 푹 자야 내일도 신나게 놀 수 있어.

딸: 지금 놀고 싶은 거야. 엄마 미워!!!!!


(무한 반복)


나: 엄마가 왜 미워. 그러면 엄마 속상해.

딸: 엄마 미..

나: (이젠 뭐라고 해야겠다.)

딸: ..안해!!!!!


"엄마 미워!!!!!"와 같은 목소리 크기로, "엄마 미안해!!!!!"라고 할 줄이야. ㅋㅋㅋ



#03. 귀에 속닥속닥


딸: 엄마 속닥속닥하게 귀 좀 주세요.

나: (친구들이랑 있을 때 귓속말하면 안 좋다고 말해줘야겠다.)

딸: 속닥속닥

나: ???


왜 '속닥속닥'했는지 물어보니, 어린이집 언니들이 딸 앞에서 '속닥속닥'한단다. 비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귀에 대고 '속닥속닥'하는 놀이라고 생각했던 거. ㅎㅎㅎ 소외감 느끼거나 서운할 수도 있는데 타격 일도 없구나. 너의 멘탈을 닮고 싶다.



#04. 놀리는 친구들


딸: ◇가 나한테 '바보 똥개'라고 했어.

나: 속상했겠네.

딸: 응. 나는 바보도 아니고 개도 아니야. 엄마 똥강아지야.

나: (1차 위기 ㅋㅋ) ㅇㅇ이는 다른 친구한테 그런 말 하지 마.

딸: 안 해.

나: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할 때 (네 성격에) 듣기만 했어?

딸: '방구 똥꼬'라고 해줬어.


역시, 내 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지 않아.


딸: △△가 자꾸 나보고 뚱뚱하대.

나: 아니야. 통통이야.

딸: 나는 뚱뚱이 아니고, 통통이라고 계속 말해도, 많이 먹으니까 똥돼지래.

나: 잘 먹어서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데.

딸: 우리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해준다고, 요리 잘한다고 했더니, 부러웠나 봐.

나: 엄마 요리 못하는데, ○○가 뭘 해줘도 잘 먹어주는 거지.

딸: 엄마! 솔직하게 말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 뭘?

딸: 요리 잘한다고.


더 크면 알게 될 거다. 엄마가 하는 건 요리가 아니라는 걸. 막 만들어도 잘 먹어줘서, 엄마 요리가 최고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딸이 하도 여기저기에 엄마가 요리 잘한다고 말해놔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나 친구 엄마들은 내가 엄청나게 요리 잘하는 줄 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05. 예쁜 말만 썼으면…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에서 (손위 형제자매가 있는) 언니 오빠들에게 배웠는지 입맛에 안 맞는 걸 먹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 ‘웩, 뷁, …’ 이런 표현을 하더라. 어느 날, 하원하면서 내가 딸 앞에서 걷고 있었다.


딸: 뷁!!

나: 엄마가 그런 말 쓰지 말랬지.

딸: (무언갈 가리키며) ‘브뤡’이라고 한 건데?


딸이 가리킨 곳엔 검은 개미들이 있었고, 나는 딸에게 사과했다. 하.. 하..






아이를 키울수록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긴다.

잘하고 있는 건지, 뭘 더 해야 하는 건지, 뭘 덜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지.


내게 웃음을 주는 존재에 감사하면서.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남편이 잘 넘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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