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두려워
난 우리 아이가 세상 순둥이인 줄 알았다. 크게 울지도 않았고, 토닥토닥하면 잠들고, 주는 대로 잘 받아먹던 방긋방긋 순둥이 아가. 그런데 마음에 안 들면 소리치고, 안 자겠다며 버티고, (4세 무렵 장염으로 입원했던 이후로) 새로운 것을 먹으려 하지 않는 6세가 되어 버렸다.
나: 장난감 정리 좀 하자.
딸: 어린이집에서 많이 했으니까, 집에서는 안 할래.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훈육할 일이 생기는데, 아이의 반응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난감할 때가 있다. 정말이지 일관성 있게 훈육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벌써 이러니, 딸의 사춘기가 너무 두렵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딸이 나에게 크게 혼나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씩씩거리며 반항하기도 하고, 억울한 듯 펑펑 울기도 하는데, 이날은 자기도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말하는 걸 들으면서 중간중간 사과하더라.
나: ~~~~~~~~~~~~~
딸: 미안해요.
나: ~~~~~~~~~~~~~
딸: 죄송해요.
나: ~~~~~~~~~~~~~
딸: 이제 안 그럴게요.
많이 뉘우치는 것으로 보여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딸이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쏴~리
무방비 상태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자기가 아는 사과와 관련된 문장 총출동. ㅋㅋㅋㅋㅋㅋ
졸릴 때면 떼쟁이가 되는 딸. 안 자겠다며 난리난리 쌩난리. 뭐가 서러운지 펑펑 울기 시작.
나: 잘 시간이 지났어. 어서 자야지.
딸: 난 더 놀고 싶은데, 엄마 미워!!!!!
나: 푹 자야 내일도 신나게 놀 수 있어.
딸: 지금 놀고 싶은 거야. 엄마 미워!!!!!
(무한 반복)
나: 엄마가 왜 미워. 그러면 엄마 속상해.
딸: 엄마 미..
나: (이젠 뭐라고 해야겠다.)
딸: ..안해!!!!!
"엄마 미워!!!!!"와 같은 목소리 크기로, "엄마 미안해!!!!!"라고 할 줄이야. ㅋㅋㅋ
딸: 엄마 속닥속닥하게 귀 좀 주세요.
나: (친구들이랑 있을 때 귓속말하면 안 좋다고 말해줘야겠다.)
딸: 속닥속닥
나: ???
왜 '속닥속닥'했는지 물어보니, 어린이집 언니들이 딸 앞에서 '속닥속닥'한단다. 비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귀에 대고 '속닥속닥'하는 놀이라고 생각했던 거. ㅎㅎㅎ 소외감 느끼거나 서운할 수도 있는데 타격 일도 없구나. 너의 멘탈을 닮고 싶다.
딸: ◇◇가 나한테 '바보 똥개'라고 했어.
나: 속상했겠네.
딸: 응. 나는 바보도 아니고 개도 아니야. 엄마 똥강아지야.
나: (1차 위기 ㅋㅋ) ㅇㅇ이는 다른 친구한테 그런 말 하지 마.
딸: 안 해.
나: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할 때 (네 성격에) 듣기만 했어?
딸: '방구 똥꼬'라고 해줬어.
역시, 내 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지 않아.
딸: △△가 자꾸 나보고 뚱뚱하대.
나: 아니야. 통통이야.
딸: 나는 뚱뚱이 아니고, 통통이라고 계속 말해도, 많이 먹으니까 똥돼지래.
나: 잘 먹어서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데.
딸: 우리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해준다고, 요리 잘한다고 했더니, 부러웠나 봐.
나: 엄마 요리 못하는데, ○○가 뭘 해줘도 잘 먹어주는 거지.
딸: 엄마! 솔직하게 말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 뭘?
딸: 요리 잘한다고.
더 크면 알게 될 거다. 엄마가 하는 건 요리가 아니라는 걸. 막 만들어도 잘 먹어줘서, 엄마 요리가 최고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딸이 하도 여기저기에 엄마가 요리 잘한다고 말해놔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나 친구 엄마들은 내가 엄청나게 요리 잘하는 줄 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에서 (손위 형제자매가 있는) 언니 오빠들에게 배웠는지 입맛에 안 맞는 걸 먹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 ‘웩, 뷁, …’ 이런 표현을 하더라. 어느 날, 하원하면서 내가 딸 앞에서 걷고 있었다.
딸: 뷁!!
나: 엄마가 그런 말 쓰지 말랬지.
딸: (무언갈 가리키며) ‘브뤡’이라고 한 건데?
딸이 가리킨 곳엔 검은 개미들이 있었고, 나는 딸에게 사과했다. 하.. 하..
아이를 키울수록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긴다.
잘하고 있는 건지, 뭘 더 해야 하는 건지, 뭘 덜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지.
내게 웃음을 주는 존재에 감사하면서.
딸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남편이 잘 넘기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