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욕심을 버리기로 한, 다섯 가지 이유

부러움이 미안함으로 바뀌던 순간

by 고양이상자

둘째를 가져볼까 했다(둘째에 대한 고민). 아이를 낳고 기르며 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모두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가 협조를 잘해주니 능력도 없으면서 용기가 생긴 거다. ‘겁쟁이’인 내가 그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고, ‘게으름쟁이’인 내가 새벽잠 설치며 수유를 하고, ‘요알못’인 내가 이유식을 만들고, 가끔씩 아이 잘 키웠다는 칭찬도 듣고... 생각했던 것보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아이 좋아하는 본성이 또 꿈틀댄 것.


코로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어린이집에도 놀이터에도 친구들이 없으니 집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고, 형제자매와 함께 논다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겠다고 해서 아들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아들을 멋지게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름 지어놓은 것은 안 비밀.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욕심일 뿐. 이제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버리려고 한다. 주변에 많이 물려줬지만,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었던 아가 용품과 아가 옷을 더 늦게 전에 정리해야겠다. 또다시 미련이 생기기 전에.



01. 40대다


둘이나 낳고 기를 생각이었으면 일찍 결혼해서 일찍 낳았어야 했다. 결혼 생각도 없다가 습관성 고백을 받아들여서 결혼했으면서, 자녀 계획도 안 하고 살았으면서, 알아서 찾아와 준 아이를 만난 것에 만족해야지, 둘째는 무슨. 나이에 비해 신체 나이가 괜찮은 편이지만,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2주가 산후조리의 전부면서, 몸 생각을 해야지, 둘째는 무슨.


늦은 ‘결혼-임신-출산-육아’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치열하게 살았던 2,30대에 이 일들을 겪었다면, 아마 아이가 이렇게 예쁘진 않았을 거다. 손주 보는 느낌이랄까. 진정 귀여우니까 견뎠다.



02. 공무원이나 전문직이 아니다


슬프게도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20대에 공무원 준비 딱 1년만 하고 싶었다.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너무 없었다. 1년 한다고 시험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아무 소득 없이 1년을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청년기본소득보장제도’에 찬성한다. 청년은 꿈을 꾸어야 한다. 혹자는 그 돈으로 술 먹고 놀러 다닌다고 비판하는데, 그러면 어떠한가. 청춘을 즐길 권리를 보장해주는 건,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충분히 해줄 만한 일이다. 물론, 그 제도의 혜택을 받은 청년들이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아무튼, 공무원이나 전문직이 아닌 이상,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면 할수록 속상한 이야기라서, 20대의 나를 토닥토닥. 게다가 이제 겨우 강사로서 자리 잡고 있는데, 임신-출산-육아 이후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자신이 없다. 이럴 땐 남자가 너무 부럽다.


03. 도움받을 곳이 없다


아이를 낳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한으로 남은 듯), 2주간의 산후조리원을 끝으로 혼자 육아를 해왔다. 산후조리할 기간에도 끝없는 아이의 빨래와 설거지에 지쳤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이 덕에 잠은 항상 부족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하면서도 힘들었다. 결혼으로 느낀 친정의 부재는, 육아로 느낀 친정의 부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명도 힘들었는데, 두 명을 혼자 돌본다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아이가 6세이니 2년 후엔 초등학교에 진학할 텐데, 엄마들이 퇴직을 많이 하는 두 번째 시기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고 할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많을 때다.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신생아를 돌보며 아이에게 소홀할 수는 없다. 알아서 잘할 아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거울 거다. 무엇보다 나이 차가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겠지.



04. 남편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우리가 아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기본에, 성격이 서글서글한 줄 알았고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지 알았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아닌 점이 많이 보여서 씁쓸하다.


무엇보다 부모의 기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안 할 때면, 너무 답답하다. 알려줄 만큼 알려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보다 협조를 안 할 때도 많다. 예전에 시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면서 남편 칭찬을 하신 적이 있다. 아버님에 비하면 남편이 너무 잘하고 있는 거라고. 비교 대상이 잘못됐잖아. 아버님과 비교하면 안 되지, 요즘 아빠들과 비교해야지.


남편은 아니라고 하며 억울해하겠지만, 육아 휴직했을 때도 남편이 알아서 한 일이 없다. 육아는 거의 내 몫이었다. 복직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둘째가 생겨도 남편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다. 나는 알아서 하는데 남편은 왜 못해. 이건 능력 문제가 아니라, 관심 문제다. 아니,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해도 괜찮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남편에게 기대 안 하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나 혼자 알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도 그러면 남편에 대한 실망이 처음보다 더 클 것 같다.


무엇보다 남편은 아이 한 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인이나 친척들은 둘째 생각 없냐는 질문을, 나한테 한다. 젠장.



05. 외동인 아이가 외롭지 않단다


아이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4세 때는 동생 낳아달라 하고, 빵빵한 아빠 배 두드리며 아가 언제 나오냐고 했던 아이였다. 5세 때 “우리 집에 귀여운 아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물어봤더니,


아니.


생각보다 단호한 아이 말에 당황했다.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게 된 후, 내가 아플까 봐 걱정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괜히 엄마 때문에 자기 마음을 접은 건가 싶어서 마음이 쨘해서 다시 물었다.


너무 많이 울어. 시끄러워.


어린이집 아가반의 아가들이 우는 게 시끄럽나 보다. 주사를 맞아도 "엥~" 울다 말았던 아가라서, 울고 나면 "다 운 거야?"라는 소리를 듣던 아가라서 그런지, 크게 우는 아가가 시끄럽게 느껴지는 건가?


“아가는 말을 못 하니까 우는 걸로 표현하는 거야. 시끄러운 게 아니야."라고 말해도,


ㅇㅇ이는 아가 때 그렇게 안 울었어.


라며 선을 긋는다. “ㅇㅇ가 잘 안 울었으니까, ㅇㅇ이 동생도 잘 울지 않겠는데?"라고 했더니,


아니야. 나만 그런 거야.


라고 철벽 친다. 계속 둘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던 내가, 아이에게 가끔 물어보면,


엄마, 아가 필요해?
ㅇㅇ이도 엄마한테 아간데?
ㅇㅇ이가 귀요미야.


라며, 엄마에겐 자기 하나만 있으면 된단다. 아가와 여러 번 이야기 나눈 후, 마음을 정했다. 그래. 너만 있으면 돼. 없는 게 나은 형제자매 관계도 많은 걸.


그런데 아이도 나만큼 왔다 갔다 한다. 최근에는 동생 생기면 줄 거라고 장난감을 빼놓기도 하고, 자기 전에 그림책을 읽을 때 동생 관련 이야기를 꼭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동생 생긴 친구가 부럽다며 우리 집에 동생 언제 오냐고 하기도 한다. 잘 모르겠다.


이러다 또 생각이 변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결정!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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