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진정 위대하다!!!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혼자만의 계획으로는 올해 가을부터 한글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는 6세 무렵, 웬만한 한글은 다 읽고 쓰기 시작했다. 물론, 맞춤법은 틀리고 삐뚤빼뚤 쓰지만 받침도 제대로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육아는 케바케다. 아이마다 다르므로, 아래 내용은 참고만 하길 바란다. 다만, 양육자들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양육자의 인내심이니까.
아가 시절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어 줬다. 하루는 건너뛸 때도 있었지만, 연이어 건너뛰지는 않았다. 읽을 권 수는 아이가 정하게 했고 그중의 한 권은 내가 골랐다. 세 권은 넘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책 읽은 후 기분 좋게 꿈나라로 가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목이 소중하기도 하고)
태블릿을 이용한 학습 기기가 많다. 그 광고를 보면 3, 4세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하던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텍스트에 익숙해지면 글을 읽느라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시간이 부족해진다고 생각해서, 아이가 책의 내용을 들으면서 그림 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다. 책을 고를 때, 그림도 중요한 요소였다. 전집에 있는 삽화처럼 글을 설명하는 그림도 좋지만, 그림 자체에 의미가 있는 책이 좋았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주변에서 다 하니까. 그래서 체험해보기도 했는데, 체험 후 확신했다. 취학 전에는 양육자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체험 초반에는 신기해서 보다가, 나중에는 나한테 읽어달라고 하더라.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용할 학습 기기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다. 기기 미포함 학습 앱만 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기기 포함이라 고민만 하고 있다.
4세 즈음 어느 날,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다. 분명 한글을 모르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읽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그림을 보면서 엄마가 읽어 줬던 내용을 기억하면서 자기가 읽는 척했던 거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 권 다 읽은 크게 박수 쳐줬다. 신난 아이는 자기가 읽는 척할 수 있는 책을 계속 골라왔다.
아이가 선택한 책은 아가 시절부터 많이 읽어줬던 책이었다. 아이들의 기억력과 관찰력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해서 사놓은 고양이 그림책과 어린이집에서 받은 책, 물려받은 책들이 전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운영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책 한두 권을 받을 수 있다. 책을 가져온 날에는 아이에게 책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고, 나는 들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읽어준 것처럼 나에게 읽어준다. 그 후에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잠든다. 환경에 관한 책을 읽은 날에는 "지구가 아야 해."라는 잠꼬대를 했을 정도로 집중했다.
표지만 봐도 전체 내용을 알 정도인 책들은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주말을 이용하여 동네 도서관에 간다. 먼저, 아이도 나도 원하는 책을 고른다. 비율은 7:3 정도. 한 권을 읽고 제자리에 꽂아 놓는 것도 해봤는데, 잘못 꽂아놓으면 오히려 민폐다. 그래서 마음 편히 책을 고르고 먼저 읽고 싶다는 것부터 읽어주기 시작한다. 다 읽고 나면 읽은 책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고르라고 한 후, 다시 책들을 골라오라고 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놀다가 마지막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정하면,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 넣는다.
아이가 책 읽기를 싫어한다고 해도 도서관에 한번 데려가보면 좋겠다. 폭신폭신하게 꾸며진 편안한 도서관에서 뒹굴거리기만 해도 좋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어느새 책을 읽고 있을 거다. 단, 아이가 고른 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꾸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양육자가 원하는 책 한 권을 슬쩍 추천하는 거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책 읽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이일까, 나일까?
도서관에서 고른 책은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내가 사려던 책들과 함께 주문한다. 그런데 가끔은 서점에 간다. 동네에서 책방 운영하는 게 꿈일 정도로 작은 서점을 좋아하는데 우리 동네에는 아이와 함께 갈만한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대형 서점으로 간다. 대형 서점을 기피하는 이유는, 장난감이 너무 많아 아이의 시선을 뺏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형 서점에 가면 일단 풀어놓는다. 억지로 책 쪽으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말을 듣지 않...) 장난감 구경을 얼추 했으면 책 쪽으로 가서 함께 책을 고른다. 도서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아이가 고르고 고른 책 한 권을 선물한다. 나는 쇼핑할 때 하루에 한 가지만 사준다. 과자도, 장난감도, 책도...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서 아이는 그게 익숙해졌다. 초반에는 하나 더 사겠다고 고집부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심혈을 기울여 한 가지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단, 가끔씩 조부모와 쇼핑할 때는 그냥 둔다. 조부모의 무한한 사랑도 받아야 내 규칙을 잘 지키니까. 모두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조부모는 손녀에게 해주고 싶은 거 해줄 수 있어서, 손녀는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싶다고 할 수 있어서, 부모는 돈 안 써서. ㅋㅋㅋㅋㅋ
내가 안 사주는 몇 가지가 있다. 랜덤으로 나오는 것, 뽀로로 친구 루피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인 캐릭터,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위험한 것 등. 엄마가 절대 사주지 않는 것의 기준을 아이도 알기 때문에 나한테는 사달라고 하지 않을 정도다.
다만, 또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아이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 아이 선물을 고민하시는 어른들께 살짝 말씀드린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점수 따시니(?) 좋고, 아이의 기쁜 모습을 보니 나도 좋다. 언젠가는 내가 산 것을 비밀로 하고 머리맡에 선물을 둔 적이 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안 사주는 거 알고
엄마네 아빠가 선물해 줬나 봐.
엄마가 샀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하늘을 보며 '엄마네 아빠'한테 감사 인사를 한다. 아빠는 좋겠다. 아무것도 안 해도 손녀에게 감사 인사받으니.
어린이집 하원할 때 산책을 할 때면, 길가의 간판이나 현수막, 슈퍼의 상품에 쓰여있는 단어를 함께 읽곤 했다. 색도 예쁘고 디자인된 글꼴이니, 아이들은 흥미롭게 본다. 집에 TV는 없지만, 넷플릭스 등으로 키즈 프로그램을 볼 때면 제목은 꼭 읽어줬다.
자기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된 후에는, 자기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찾으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조금씩 눈에 보이니, 계속 찾으려 하더라. 엄마 이름을 알게 된 후에는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아이를 옆에 두고 일할 때가 있다. 키보드를 쳐서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했는지 쳐보고 싶어 하기에 위치를 알려주면서 자기 이름을 쳐보게 했다. 예쁜 글꼴과 알록달록 색으로 표현해 보는 활동을 통해, 자음 모음의 조합을 익힐 수 있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이모티콘을 눌러보게 하다가,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내용을 써보게 했더니, 느리지만 정확하게 보내기도 했다. 엄마 구두의 또각또각 소리만큼, 키보드의 타닥타닥 소리가 좋다고 하더라.
아이와 한글을 익히면서, 한글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글의 결론!! 세종대왕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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