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최고!!
지난 추석, 아이는 보름달을 보며, “키 크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빌었다. 초등학생이 되고 싶단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점심 시간 무렵이 하교 시간이어서 방과 후 교실과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테니 걱정이 앞서는데, 아이는 그저 어서 자라고 싶나 보다. 초등학생이 되면, 하고 싶다는 게 얼마나 많은지.
어느 정도 말을 시작하던 3세 무렵, 아이가 엄마 아빠 이름을 물어보길래 알려줬었다. 그런데 4세 무렵부터는 한글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돌아다닐 때 여기저기에 있는 한글에서 가족 이름에 속한 글자를 발견하면, 그때마다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졸랐을 정도였다. 자기가 아는 글자가 있으면 그 글자가 포함된 단어들을 찾아보면서 엉뚱하게 연결짓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웬만하면 미디어 활용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하면 아이도 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강의 자료를 보완해야 할 때가 가끔 생기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이 옆에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는, 엄마 따라 한다고 키보드를 누르며 공부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 쓰는 키보드로 자음과 모음을 누르며 자기 이름이 완성되는 과정을 알려줬더니, 퍼즐 같다며 재미있어했다. 키보드로 입력한 글자를 화면으로 보여주니까 더 좋아하더라. 조합에 흥미를 가지는 아이라면, 한글 학습에 키보드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듯하다.
원래 한글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아이에게 알려주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한글은 정말이지 위대하다는 걸.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어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좋다. 세종대왕을 비롯한 학자들 모두 너무 고맙습니다!! 후손을 위해 정말 큰 일을 하셨어요. 지난 한글날에 뭐했더라?
아무튼, 아이는 그렇게 하나씩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유아로 구분되기 시작한 5세가 되고 나니, 학습량이 많아지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아이니, 관심이 커진 건 좋다. 그러나 안 그래도 되는데 한글 공부를 미리 한 친구들에 비해 자기가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학습은 초등학교에 가서 천천히 시작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아이에게 알려 주는 것도 양육자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렵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의 신념’과 ‘아이의 바람’을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일단, 유아 교육 업체 한 곳을 선택해서 체험해보기로 했다. 아이는 디지털 네이티브니 기기를 활용하여 학습하는 것 중의 하나를 선택했다. 너무 많아서 선택하기 어려웠다. 유명인이 광고하는 것도 있으나 콘텐츠만으로 선택하고자 노력했다. 선택한 것을 아이에게 보여준 후,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나서 신청했다. 그렇게 받은 기기로 일일 스케줄에 따라 그날의 학습을 하기 시작했다. 평일 저녁에 한 시간 정도 하니, 큰 부담은 없었다. 한글뿐 아니라 좋아하는 퍼즐도 하고 과학 실험을 신기해하면서 집중하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책을 읽어주는 기능도 있어서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권 읽더니 책은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 좋대서 사용하지 않았다. 역할 구분한 성우의 낭독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아직은 엄마가 좋은가 보다.
체험 3일 차,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느껴졌다. 배워가는 과정이니 틀려도 되는데, 틀리면 본인이 못한다고 여기면서 속상해하곤 했다. 그래서 중간에 하기 싫다는 것이 있으면 넘어가고 하고 싶다는 것 위주로 학습했다. 하기 싫은 이유는 다양했다. “어려워요.”, “무서워요.”, “징그러워요.” 등등. 그래도 자기만의 기기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이 보였고, 관심 있는 분야는 오히려 더 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습을 완료한 과목은 일일 스케줄에 색이 칠해지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아이는, 색이 칠해지지 않은 과목을 찾아서 학습했다. 하기 싫다고 넘겼던 것이라서 하기 싫어하면서도, 색이 칠해져야 끝낸 것이라 생각했는지 꾸역꾸역 학습했다. 이런 건 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를 닮아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5세 아이가 안 했던 것을 찾아서 하니 학습 태도가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하기 싫은 것까지 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러다 지레 지쳐서 학습에 흥미를 잃으면 안 되니까. 학습을 일찍 시작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학습의 흥미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TV가 없는 우리 집엔 해당되지 않지만, 해당 콘텐츠는 TV에 연결해서 크게 볼 수도 있어서 유용한 부분도 있어 보였다. 다만, EBS와 연계한 동영상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출연자가 나와서 꺼려졌다. 아이가 많은 사람이긴 해도 평소 언행이나 행동을 보면 아동 프로그램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BS라고 모두 괜찮은 프로그램만 있는 것이 아니니, 선별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잘 알아보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아이와 함께 봐야겠다.
체험 마지막 날, 아이에게 이것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하고 싶기는 한데, 여섯 살이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란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자신이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것을 해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할 텐데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다. 본인이 못한다고 속상해하지도 않으면서, 잘한다고 오만하지도 않으면서 자라면 좋겠는데, 참 어렵다. 틀려도 되니 자신감을 가졌으면, 툴툴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평소에 달리다가 넘어져도 울지 않고 잘 일어나는 성향인데, 이런 특징이 학습에는 적용되지 않나 보다.
지금은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지만, 예전 어린이집에는 아이가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그 친구의 형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잊을만하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봤다며 피아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나 보다.
어느 날, 또 그 이야기를 하길래 하원 하는 길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봤다. 마침 원장님이 문 앞에 나와 계셔서 문의했는데 피아노는 한글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어서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훌쩍이던 아이는, 건물이 떠나가라 크게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펑펑. 밖에서 그렇게 크게 운 적이 없어서 나도 당황, 원장님도 당황. 우리 모두 당황.
아이를 한참 달랜 후 집에 오면서 반성했다. 아이의 바람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한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전화 문의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미리 알아보지 않고 아이와 함께 찾아간 것이 문제였다. 아이에게 나중에 배우자고 천천히 말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유치원 때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줄 알았다.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길에 얼마나 기대했을까? 너무 미안했다.
아쉬운 대로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건반을 백만 년 만에 꺼냈다. 소리 나게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노래하면서 신나게 친다. 너무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알아보니, 그림으로 배우기 시작한다는 학원도 있긴 했었다. 그러나 피아노는 나중에 배우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운동 신경이 없다. 나도 없고 남편도 없어서인지 아이에겐 당연히 없나 보다. 그런데 아이는 뒤뚱거리며 넘어지면서도 뛰어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래서 하원 후에 산책하거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한 두 시간 정도 놀다가 집에 들어가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이의 에너지가 해소되지 않아 보였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어린이집의 체육 활동이 없어진 이유도 컸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태권도를 아는지 물어봤다. 동네에 태권도장이 서너 곳 있다 보니, 도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초등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익숙하긴 했지만 태권도 자체를 아는 건 아니니까. 그랬더니 “태권”을 외친다.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한 부분을 아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의 성장이 와닿는다.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태권도하고 싶단다. 사람이구나. 그때가 4세였다.
올봄, 업무를 좀 일찍 마쳐 시간이 났던 어느 날, 동네 태권도장을 돌았다. 대부분 5세 반은 없고 최소 6세 반부터 있었다. 그럼 6세부터 해야겠구나 생각하면서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피아노 사건으로 울고 불고 그럴까 봐. 그런데 얼마 전에 갑자기, 아이는 내게 태권도는 언제부터 배우냐고 물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했다. 아무튼, 이제 몇 달이 지나면 6세가 되니 혹시나 해서 태권도장에 문의했다. 10월부터 가능하다는 답변!! 그 기쁜 소식을 아이에게 알리고 5일 동안 체험했다. 보통 3일 체험인데 아이의 나이를 감안해서 배려해주셨다.
하루는 괜찮고, 하루는 안 괜찮고. 들쑥날쑥한 아이의 기분. 그래도 제법 잘 따라 했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6, 7세를 비롯한 초등학생과 함께 있으니 세상 쪼꼬미. 너무 귀엽고 기특했다. 언니 오빠들처럼 태권도복을 입고 배우고 싶대서 등록했다. 일단 첫 달은 주 3회로 하기로 했다. 아이가 더 어릴 때 평일 저녁 놀이터 가면, 초등학생 태권소녀 두 명이 아이와 놀아주곤 했는데 새삼 그 인연이 떠올랐다.
태권도장 선택 요소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탈의실 유무와 여자 사범 존재 유무였다. 어린이집 하원 후 태권도복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선택한 태권도장은 여자 사범도 있고 인솔 교사도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태권도의 기본도 배우지만 유아 체육도 겸하고 있어서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아빠와 신체로 놀다가 격해지면 아빠에게 발차기를 하는데, 발차기는 태권도장에서만 하는 것이란 걸 배웠으면 좋겠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태권!!”을 외치며 절도(?) 있게 팔다리를 뻗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접혀 입은 태권도복도 언젠가 짧아지겠지. 왜 벌써 서운해지는 걸까.
발레도 좋은 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싶진 않다. 나도 어렸을 때 배운 적이 있는데 청소년 시절 체조 점수에 도움이 됐다는 것 이외에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스타킹에 토슈즈가 너무 답답했고 발레복을 입는 것 자체가 별로였다. 몇 년 배웠던 발레를 그만둔 후, 팔자걸음을 고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나 아이가 관심을 가진다면 알아볼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나와 아이의 취향은 다를 수 있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어떤 언니가 발레를 배운다고 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분홍으로 꾸민 친구도 있고, 공주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었으니, 혹시나 해서 아이에게 발레를 배우고 싶은지 물어봤다. 아이는 언니 옷을 봤는데 너무 불편해 보여서 싫다고 했다. 놀기 불편하다고 편한 옷만 입는 아이니, 그럴만했다. 화장실 가다가 실수할까 봐 걱정도 된단다. 기저귀를 늦게 뗀 편이라서 그런지 용변 실수에 예민한 편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실수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어린이집에서는 물을 먹지 않으려 했을 정도다. 아무튼,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잊고 있던 발레.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자, 주변에서 난리다. 여자아이는 발레를 배워야지 무슨 태권도냐며, 태권도에는 남자아이만 가득한데 겁도 없이 어떻게 보내냐며, 태권도는 다리 찢는 거 하는데 힘들게 그런 걸 왜 시키냐며... 언니 오빠들한테 이쁨 받으면서 즐겁게 배우고 있는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아이가 선택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왜 그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걸까. 답답하기 그지없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도 많다.
아이는 커 갈수록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질 것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보면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에 비해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엄마표 학습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무조건 학원을 적대시하거나(아이를 학원에 맡기면서 방치한다는 식), 많은 학원에 등록해서 과하게 학습시키고 싶지는 않다.
항상 생각하지만,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보다는,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원하는 시기에 지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소신을 지켜가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아이와 상의해서 선택해가고 싶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지원할 수 있게 돈을 벌어야겠다. 이번 주에는 꼭 로또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