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습니까 7화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의 '할슈타트라'는 강이 있다. 동유럽 여행을 선택한 것도 할슈타트의 동화 같은 풍경에 빠져서였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한두 시간이면 둘러보는 탓에 숙박은 하지 않고 당일 치기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나는 평소에 강을 좋아하기도 하고, 뒤에 보이는 다흐슈타인산의 전경과 넓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오래 머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할슈타트에서 2박을 할 생각이라고 말을 했더니, 이미 이 곳을 다녀온 두 친구 모두 "굳이?"이라는 말을 했다. 자신은 당일치기로 가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2박을 해서 무얼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여행은 꼭 가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마을이 주는 분위기와 아름다운 소리들을 최대한 천천히 느껴보고 싶었다. 원래는 할슈타트에서 2박을 할 예정이었는데, 여행 계획을 짜면서 '오버트라운'이라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익히 명소로 알려진 할슈타트보다는 숙박도 저렴하고, 거리도 한 정거장 차이로 가까웠다.
사실 잘츠부르크에서 오버트라운으로 이동하기 전날 밤, 갑자기 원인모를 두드러기에 걸렸었다. 자전거 투어를 할 때 공원에서 수돗물을 마셨었는데,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유럽의 수돗물은 식수처럼 사용한다고 들어서였는데 (목이 심하게 말랐다) 그 날 이후로 온몸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밤새 가려움에 잠을 설쳤다. 다행히 잘츠부르크에서는 한인민박에 머물러서 사장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약을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 여쭈어보았지만, 내가 걸린 증상을 처음 보신 듯했다. 그리고 그날은 오스트리아의 공휴일인지라 약국도 문이 닫았었다. 걱정이 되셨던 사장님께서 딱 한 곳에서 영업을 하는 중인 것 같다며 위치를 알려주셨다. 오버트라운과 할슈타트 주변에는 약국이 아예 없었기에, 가기 전에 약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여 찾아갔지만, 분명 안에 사람이 있었는데, 문은 닫혀있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기차 시간을 놓칠까 봐 바로 포기하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국 문 옆에 조그마한 벨을 누르면 되는 거였다.
이 날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나오지 못한 탓에 기차역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샀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그래도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동시에 점점 온몸이 붓는 느낌이 들었다. 앉아있는 데도 살이 부딪힐 때마다 가려움이 증폭되는 기분이 들었다. 오버트라운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직 반이나 남은 여행을 어찌 보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렇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전광판에 낯선 역의 이름들이 뜨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지도 어플로 위치를 조회해보니, 이미 내려야 하는 정거장을 지나친 뒤였다.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하면서 급하게 아무 역에 내리고 말았다.
이 길이 맞습니까?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잡고 물어봤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환승이 안되니, 다시 티켓을 사서 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두드러기도 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약도 사지 못하고, 샌드위치도 맛없고, 길까지 잃었고, 티켓값도 2배나 들게 생겼다. 기차표를 다시 구입했지만, 40분이나 대기를 해야만 했다. 땡볕 아래에서 미지근한 물을 연거푸 마시며 눈을 감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이 여행의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라는 것이 있을까? 오버트라운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왜 길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는 거지?
원래 계획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다행히 오버트라운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도미토리룸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생활하였지만, 이곳 만큼은 경치가 너무나 기대가 되어 큰 마음을 먹고 좋은 호텔을 예약해두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금세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오버트라운의 풍경은 사진으로 봤을 때 보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이 왜 이렇게 짧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치를 구경하기 바빴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오늘 겪은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창문을 여니 다흐슈타인 산과 넓은 강, 작은 배가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캐리어를 내려놓자마자 베란다에 나가서 눈물이 날 뻔했다. 이곳에서 2박이나 머물다니! 내가 그렇게 선택했다니! 난 길을 찾지 못하는 세상 멍청이는 아니었어!
혼자 신나서 방방 뛰고 동영상을 찍고 난리가 났다. 없던 기운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배고픔도, 가려움도, 더위도 모든 것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머물 공간이 있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한 권의 시집이 있었고,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정말 이날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에서 경치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부족했다. 산과 강을 바라보는데도 믿기지가 않았고, 내가 그 공간 안에 서 있는 것 자체로도 감격스러웠다.
여행은 변수의 연속이기에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풍경만으로도
그것들을 모두 침묵하게 만든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4일차_오버트라운 두번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