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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ug 25. 2022

아무일도 안 일어났는데 마치 일어난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이 늘어났다.


정확히 22년 5월 20일에 퇴사를 하자마자 새 사업을 준비했고, 이제 다음 달이면 나도 사장님이 된다. 이것저것 많이 배우기도 하고 펭귄이랑 놀러도 다니고,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보냈는데 요즘엔 또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해졌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쉬는 날 없이 일할 텐데, 하면서도 지금 이 시간이 참 무료하고 나태해지고 있다.


내가 한가해지는 순간, 나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긴다. 그건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치 무슨 일이 난 것처럼 상상하고 불안해하면서 쳐 울기.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면, 바빠야지 잡생각을  하는 통제불능 울보 찌질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갑자기 잡생각이 밀려오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치 일어난 것처럼 하나씩 상상해보았다.


1. 내가 비어있는 사이 집에 불나기

2. 불나서 내 모든 물건들이 활활 불타오르기

3.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나랑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총을 소지한 사람이 있었던 것. 그래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 뉴스에 나와서 인터뷰하기

4. 사업이 쫄딱 망해서 빈털터리가 되어 서울역에서 신문지 깔고 낮잠 자기

5. 엄마가 사이비에 빠져서 나랑 평생 연락이 되지 않기 


이 상상의 근본은 없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도 없고,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그냥 내 상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안과 두려움과 그리고 공포가 몰려오면서 어제도 쳐 울었다.


잡생각이 잡생각을 낳고 또 잡생각을 뱉어낸다. 온갖 극단적이고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어두운 상상들. 로또 당첨되는 상상은 죽어도 하지 않고, 죽음과 괴로움의 콜라보로 어우러져야만 한여울의 머릿속에 입장할 수 있다.


이제 슬슬 이사도 가야하는데, 큰 욕조가 있는 곳에 꼭 가고싶다.

뜨끈한 물에 머리까지 담궈놓고 감자탕처럼 펄펄 끓어오면 깻잎 몇장 슥슥 잘라놓고

모든 잡념이 싹 사라지는,

내가 감자탕이 되는 그런 결말도 조금 상상해본다.



글/그림 여미

yeoul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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