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May 22. 2022

아무래도 퇴사

네 번째 퇴사


벌써 네 번째 퇴사다. 20대 내내 회사를 다니다가 항상 어떤 계기로 인해 관뒀다. 영화를 공부하겠다며 편입을 하거나 여행을 떠났다. 그냥 백수가 하고 싶었다. 이번 회사는 그래도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들 중에는 꽤나 오래 다녔다. 이유는,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서 남들처럼 회사원을 다니는 편이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일이라 여겼고, 매일 끔찍했던 집을 뛰쳐나와 자취생활을 하고 싶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불안했다. 또, 귀여운 남자를 만나 연애도 하고 싶었다(결국 짱 귀요미를 만났다). 3년 정도 다녔다. 어찌어찌 돈도 모았고 자취 생활도 만랩이 되어가고 있고, 회사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도 만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회사를 다녔다. 일 자체로만 보면 재미없었지만 같이 일했던 후배들과 친해지면서 하루하루 재밌게 다녔고, 일도 나에게 어렵지 않았다. 팀장이 까탈스러운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낼 만은 했다. 


그러다 작년 겨울, 팀장이 회사에서 술을 퍼마신 것이 CCTV에 발각이 되면서 잘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창피함을 못 견디고 그 일이 인사팀에까지 전달이 되자 당일 퇴사를 했다. 팀장이 사라지고, 나에게 모든 팀장 업무가 날아왔다. 물론 나는 일을 잘했다. 모두가 나를 팀장처럼 대했고, 회사에서도 내 포지션에 대해 인정해주는 것 같았으나, 실질적으로 나에 대한 대우는 이전과 동일했다. 몇 개월을 그렇게 팀장도 아닌, 이상한 포지션에서 모든 책임을 떠맡으면서 있다가, 갑자기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팀장이 사라지고, 아무도 나를 팀장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팀장 같은 느낌으로 반년을 일하고 있으니 회사 안에서의 내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열정도 없었고, 일을 잘해도 회사 시스템상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이 회사는 나에게 노잼이었다. 출근길이 우울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대로 살아가는 게 과연 사는 건가? 싶었다. 나, 되게 열정 많고, 마음먹으면 완벽하게 잘 해내는 사람인데, 이곳에서 내 능력의 절반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불행했다. 앞으로도 불행할 것 같았다. 브런치에 점점 글도 쓰기 싫어졌고, 하고 싶은 말도 줄었다.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안에서 좋은 감성들이 전부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를 만나 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자마자 노발대발하며 또 등짝 스매싱을 맞았긴 했지만, 엄마 미안해요. 

제 밥그릇은 제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요. 그러니, 제 안의 죽은 감성이 차오를 때까지 제발 저를 내버려 두세요. 


나름 아무 생각 없이 퇴사한 것은 또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운이 좋게도 투자도 받게 되었다. 차근차근 공부하고 준비해서, 끝까지 해보고 싶다. 


험난하지만, 괜찮다. 나는 잘해왔기 때문에, 스스로 믿고 도전해볼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요. 

이제는 자주 자주 올게요!


yeoulhan@nate.com

글 여미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래도 싫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