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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y 11. 2024

나의 친구에게

나의 친구에게


유독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응원해 주고, 진심으로 나를 좋아해 주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내 작품이 상영이 되었을 때도 늘 달려와주었고, 졸업식 때도 참석해 주었다. 맛있는 요리도 자주 해주었고, 내게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친구를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트러블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가족 같은 인연이라고 자만했다.


나의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는 지옥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작은 회사를 다니며 홀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가족 문제로 마음은 점점 더 삐뚤어져가고 있었다. 주변은 다들 연애도 잘하고 있고, 직장도 잘 잡아가는 것 같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꼈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 없이 작아지고 있었던 때였다.


마음의 병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화가 났다.


마음의 병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면, 그냥 마음의 병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못나 보이는 것 같은,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면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화살은 매번 나와 가장 친했던, 그 친구에게 향했다. 나와 약속을 해놓고 취소를 하거나, 내 의견에 진지하게 듣지 않는 태도를 보면, 쉽게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말들을 뱉었다.


내쪽에서 화를 내도, 그 친구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나와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했다. 그것이 반복되자,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우리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지고 말았다. 가족은 싸워도, 언젠가는 다시 마음이 풀어지면 만나게 되는 거니까. 이번에도 우리는 다시 좋게 화해할 줄만 알았다.


그렇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와 연락을 안 한지, 벌써 3년이나 흘렀다. 이 모든 관계는 내가 망친게 맞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용기를 북돋아주고, 좋은 점들을 찾아내주고, 나와 가치관이 다른 행동을 해도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은 벗이 맞았다. 이것을 과거에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때 당시 마음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해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진정으로 따라주지 않았다. 우리는 화해를 하려고 만났지만, 그 이후에 나는 그 친구와 관련된 모든 SNS를 끊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고, 상처받은 마음은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숙한 내면까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친구에게

 

올해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되어, 신혼집을 마련해서 이사를 왔다. 이 동네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동네, 내 친구가 살던 동네였다.

3년이 흐르니, 그 친구의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지고, 내 모자람만 구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자꾸만 그 친구의 생각이 났다. 꿈에서도 자주 나오고, 무언가 그리움 같은 것들이 함께 몰려왔다. 내가 망친 관계고, 멀어진 관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혼


펭귄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 계기로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친구가 살던 동네로 이사 온 것, 내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들. 그런 것들이 몰려오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단순히 너무 미안했고,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과거에도 사과를 했지만, 껍데기 같은 사과였고, 돌아서면 삐죽삐죽한 마음들로 인해 모든 것을 차단하고 단절시킨 찐따같은 인간(?)이었다. 또르르.....이번에는 진심으로 만나서 다시 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친구도 내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고, 한 번이라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나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문자를 보냈다.


나의 친구에게

오늘 아침엔 펭귄이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엄청 많이 넣어서 맛있었고, 국물 맛도 진하고 시원했다. 밥을 맛있게 먹고 핸드폰을 봤는데,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친구에게 답은 오지 않았다. 마음은 허전했지만, 펭귄 덕분에 배는 든든했다.


"그래, 시간이 너무 흘렀지. 그리고, 내가 너무 늦었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마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되면, 멀리 서라도 나를 알아봐 주고,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작은 노트에 적었다.

나는 주변 신경이 둔해서, 너를 보아도 영원히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소망을 적고, 며칠 전에 생일 선물로 받은 머그컵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달달했지만, 그리운 향이 가득했다.



글 여미

yeoulhan@gmail.com


오랜만이에요!

이제 아무도 안 보는 것 같긴 한데.....(또르르르)

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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