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추억 버튼"이라는 게 있다.
우연히 무언가를 보거나 들었을 때, 또는 향기를 맡았을 때
곧바로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서 추억 여행을 하게 되는 직통 버튼이다.
골목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과 풍경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유독 동네 골목길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골목에 쭈그려 앉아 골목길에 틈틈이 박혀있는 나무들과 자주색 벽돌 건물들, 노르스름한 하늘을 연필로 슥슥 그렸다. 왜 다른 그림도 아니고, 골목길만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늦은 오후의 골목길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오면, 내 몸과 마음은 곧바로 16살 때로 돌아간다.
홀로 스케치북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인디밴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애틋하고, 아련하고, 기분이 은은하게 좋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묘한 기분이다.
매일 눈으로만 보는 풍경인데도, 그림으로 표현하면 푸근해진다. 전깃줄 하나하나, 창문틀 하나하나,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캐릭터로 변한다. 사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림은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으니 정겹다. 구불구불한 연필 선으로 내 감정을 담을 수 있으니 나만의 골목길로 완성할 수 있다.
좁은 길을 따라서 굽이굽이 돌아다니다 보면, 이상하게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단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골목길에 들어갔을 뿐인데, 꿈을 품고 있는 아이처럼 마음이 풍성해져서 돌아온다.
골목길에 서 있었던
서른이 훌쩍 넘었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그 어떤 꿈도, 말랑 말랑한 감성도, 이전보다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골목길에는 영원히 늙지 않는 누군가가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반짝반짝한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오늘도, 내일도 너무나 기대가 된다고.
yeoulhan@gmail.com
글/사진 여미
여러분도 추억 버튼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