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시가 죽자 장자가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니 축하해야 한다며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도 노래하고 춤을 췄던 장자가 왜 혜시의 죽음 앞에서 그렇게 울었을까. 아내보다 더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아니다. 둘 사이는 원수 같았다고 한다. 만나면 싸우는. 그렇다면 왜 장자가 울었을까. 혜시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말 한마디를 해도 한 번 더 생각하며 말했었는데 이젠 자기를 비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고 장자는 얘기했다.
오왕 부차는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고 자기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지체하지 않고 “이놈 부차야, 아버지의 치욕을 잊었느냐?”라고 소리치는 직책을 맡은 신하를 두었다고 한다. 나중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서 제일 먼저 그 신하들을 죽였다고 한다. 자기가 시킨 일이면서도 자기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싫었던 것이다. 장자 같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다. 오왕 부차처럼.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생각을 깊게 해봐야 할 일이다. 나를 좋게만 이야기하는 사람과 나를 비판하는 사람 중 누가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치료하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나 바르게 행동하게 한다.’라는 말도 있다. 옛날 왕들도 자기에게 거슬리는 말을 해주는 신하가 없으면 결국은 악정을 베풀게 됐던 것 아닌가. 아버지의 엄한 회초리, 어머니의 따끔한 꾸짖음, 친구의 단호한 지적들이 얼마나 많은 위인들을 길러냈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나이 들어갈수록 사람을 가까이할 일이다. 특히 내게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 나를 비판하는 사람,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들을. 그들이야말로 내 인생 성공의 조력자들이다. 우선 먹기 사탕이 달지만 결국은 이를 썩게 한다. 우선 듣기 좋은 말만을 듣다가 자칫 고인 물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야 한다. 고언과 비판과 때로는 욕설을 들으면서 자신을 정련할 때 내가 성장하고 내가 소속한 집단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자리로 나아가실 사람들, 나이 들어 어른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