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사인의 시에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라는 부분이 있다. 도대체 어떤 시이길래 옮겨 적은 것만으로 시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바로 이성선의 ‘다리’라는 시였다.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백담사에서 시비를 만났다. 아니 시비가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다가온 시비이기에 읽으려 애썼다.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속에는
산그림자가 여전히 혼자 뜰 것이다.
이성선의 시였다.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시구로 내 머리에 깊은 생각을 남겨주었던 바로 그 시인. 있는 듯 없는 듯 왔다가는 세상에서, 내가 있거나 없거나 산그림자는 물속에 자리할 것이고, 사람들은 다리를 외롭게 할 것이다. 아니다.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 주는 다리를 그림자 남기지 않고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산은 변함없고 물도 변함없어 외려 다리가 사람을 외롭게 한다.
그래도 나 죽어 남기고 싶은 것은 다리를 건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 사이의 정, 시비를 만나게 해 준 사람에 대한 감사,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