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던대로 하세요, 뭘 피곤하게"
그렇게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간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콘텐츠와 커뮤니티 기획을 담당했다.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은 나 같은 신입 기획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은 조건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신입이라면 절대 맡지 못하는 규모의 기획을 '담당'하여 A to Z까지 실행해 볼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주도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성과에서 나오는 보람도 대단했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부담과 압박은 나를 하얗게 새어 버릴 때까지 일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스타트업에서 흔히 터져 나오는 불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데'와 '이렇게 하라고 했으면서' 등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면서 나는 '안정지향적'인 직장인이 되어갔다. 그건 끝없이 펼쳐지는 달성과 미달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말이 1년 반 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처음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 새롭게 시도해보자고 했던 말에 한 대답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 루틴 업무에 '새로운 일'을 부과할게 분명하니깐, 시작은 창대하나 결과는 미미할 거니깐.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길들여진 결과였다. 내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 길로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내가 느낀 스타트업의 고질적 문제인 시스템의 부재, 주먹구구식 운영 등에 질색한 결과기도 했지만 저항 없이 길들여진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니, 단 하루도 그곳에 있는게 싫어졌다.
퇴사 후 22년의 마지막 달, 한 달간의 동남아 일주를 떠났다. 회사에 다니며 '나'를 잃었다는 판단을 한 내게 필요한 극약처방이었다. 물론 내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렇게 떠난 여행은 나를 찾아야한다, 라는 또 다른 부담감을 선사했고 결국 나는 빈손으로 2023년 1월을 맞이했다.
이젠 뭘 하지? 2,3년 전의 공백기와 서른 살을 일 년 앞둔 오늘의 공백기는 차원이 다르다. 서술형 문항에서 객관식 문제로 넘어온 이 상황, 내가 지금까지 작성한 답변은 '틀린' 답변인가? 다른 트랙으로 달리던 내가 이제서야, '이 길이 아닌가벼?' 하고 선뜻 방향을 틀기도 애매하다. 항상 꿈이 넘치던 나였는데, 이제는 뭘 해야 할 지조차 모르는 아이가 되어버린 느낌, 불안한 마음이 날 지배한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 취업준비라...뭘 준비해야 하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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