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감성 Jul 17. 2023

배의 존재 이유

항구에 있는 배는 필요 없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해진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지금 불안해도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퇴사를 결정하고 동남아 일주를 떠났다.

"원래 퇴사는 이직할 곳을 정해두고 '선언'하는 거예요"

조심스레 퇴사에 대한 고민을 놓아두었을 때 그는 나에 대해 심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한 발을 내딛을 땐, 내딛을 곳과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그 원 안에서 발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보다 얼른 발을 떼고 싶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 혹은 기대보다 지금의 내가 더 눈에 들어오던 때였다.


결국 그의 고민은 현실화됐다. 내가 발걸음을 내딛은 곳은 말 그대로 '무'였다. 동남아 일주에서 돌아온 뒤 내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을 비우려 떠난 여행은 오히려 삶에 대한 고민만 가득 안겨주었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라는 뜬구름 위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내딛은 곳이 '무'였다면 추락하는 건 당연했다.


불안하다.

어디로 떨어질 지, 늪으로 떨어질 지, 숲으로 떨어질 지. 아니면 이대로 계속 떨어지는 건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불안하지 않은 척 웃어넘겼지만, 홀로 남을 때면 여지없이 추락하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래,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아. 똑같은 결정을 내려도 그때는 불안보다 기대가 컸다. 앞으로 해 나갈 일들이 기다려졌다. 걱정은 사치다. 스스로 할 일들을 규정했고 계획했다. 성취했지만, 반대로 실패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때의 실패는 다음을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날 자극했다. 나는 끊임없이 선을 긋고 지우며 내 세상을 넓혀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이? 마음? 상황? 사람? 그 어느 것의 잘못이랄 것 없이 모두를 탓하고만 싶지만 결국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 


너야, 너. 너가 달라졌어. 너가 달라지려면, 너가 달라져야 해.


그래, 나도 알아. 미안해. 근데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어딘지만 알려줘. 아직 출발도 전이야? 아니면 거의 다 도착한거야? 아니면 한 가운데야? 도착지가 있긴 한 거니?


공허는 공허로 돌아온다. 대답없는 메아리에, 화가 날 지경이다.

다시 찾아온 적막에 온갖 자격지심과 미련한 오기, 밑바닥에 기어다니는 찌질함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다짐한다. 씨x, 다 정해져 있고 하라는대로 해야하면 그게 인생이야? 


그래, 이 불안을 즐겨주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제일 안전하다. 하지만 그게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의 명언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돛을 올려야겠다. 어디로 향할 지 모르고,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항구에만 있을 수는 없다. "물고기를 잡아라", "무역을 해라" 라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우선 갑판을 정비하고 돛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어쩐지 뻐근해서 몸이 배배 꼬일 지경이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정해진 미래가 보인다면 또 그것만큼 지루한 인생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불안과 설렘은 필연적으로 함께니깐. 설렘을 잃을 바엔 백의 불안과 함께 하겠다.


쓰고 보니 나, 지금 당장 떠나야겠구나.




@글쓰는차감성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살아요, 그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