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다봐야 보이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제 TV에서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지만 하늘은 개었다.
"엄마랑 잠깐 걷다 올까?"
비가 쏟아져 집에만 있던 엄마는 몸이 찌뿌듯했나 보다. 살짝 귀찮았던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별다른 핑곗거릴 찾지 못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뭐든 첫 발을 내딛는 게 참 힘든 일이다. 산책도 마찬가지.
현관문을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찐득한 체취가 말끔히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오길 잘했네. 엄마 먼저 가, 뒤따라 걸을게.
엄마가 자주 걷는 동네 산책코스를 걸었다. 산책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요즘 나는 그런 시시콜콜함이 좋다. 그 가벼움은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간다. 무거움을 무거움으로 받는 나날들, 기억에 남지 않지만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따스한 대화가 좋다.
그렇게 걷던 중, 목을 푸는 결에 바라본 하늘.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을을 내가 참 좋아하던 동남아의 어느 해변에서 봤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하늘은 마치 물통에 붉은 물감을 떨어뜨리듯 태양의 색을 풀어낸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하늘은 그때의 그 하늘과 같다.
구름 사이 무지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감상한다. 저 무지개는 언제 생겼을까. 이런 무지개를 얼마 만에 보나. 언제까지 있으려나...
그때 무지개 뒤편에서, 아니, 무지개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거야, 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나는 되게 오랜만에 보는데.
그건 너가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기 때문이야.
그래... 맞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무지개를 볼 수 없지. 나는 앞만 보며 걸었구나. 무지개를 꿈꾸면서도 무지개를 보려 하지 않았구나. 무지개는 늘 그 자리에, 언제나 볼 수 있는 하늘에 있는데 나는 보이지 않는 무지개를 찾아 떠났구나.
"뭐해~ 얼른 와"
저기 앞선 엄마가 나를 부르고, 나는 엄마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에서 일찍 깬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하늘은 여전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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