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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 Dec 28. 2019

2019 연말결산 #2별

나에게 2019년은 이별이다

나름 글쟁이라 자부하는 내가 글로 남기지 않는 것이 있다. 매일을 담는 일기.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꿀잼 일상은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하루하루를 글로 남기기란 여간 부지런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매년 새해 다짐 중 하나가 일기 쓰기지만, 매년 실패다. 그래도 매년 해내는 것 중 하나가 연말 결산. 365일 치의 일기를 몰아 쓰는 거지 뭐. (이것도 게으른 탓) 브런치 올해 첫 글이자 마지막 글로 내 연말 결산을 조심스럽게 남긴다.


#2 이별
만약 누군가가 ‘2019년은 (                        )이다’의 빈칸을 채우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별’이라 답할 것이다. 살면서 많은 것들과 헤어지는 건 당연하다. 순간들은 죄다 흘러가니까. 붙잡고 있는다고 붙잡을 수 없는 게 어디 시간뿐인가. 그래도, 헤어짐은 늘 어렵다. 수차례 해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이별. 이별엔 연습은 없고 실전 뿐이다.

2019년엔 유독 이별을 많이 겪었다. 그것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별들이 내게 몰아쳤다. 하나의 이별에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이별들이 닥쳤다. 어떤 이별엔 상처가 남았고 어떤 이별엔 분노가 치밀었다. 다른 이별에선 미안함이 맴돌았다. 어떠한 감정도 남겨두지 않고, 그저 담담하고 잔잔하게 - 그렇게 흘러간 이별도 있었다.

그때의 감정들을 이제 와서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글을 시간 내어 읽어주는 당신이 그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건 나도 바라지 않는다. 이미 헤어짐이 올 때마다, 내 감정들을 글로 남겨뒀다. 쌓아둔 감정들이 넘친 걸까.

1년 치의 기록이 몽땅 날아갔다. 지난해 12월에 아이패드를 산 뒤로, 나는 오직 Only 오로지 굿노트에만 기록했다. 모든 것을 말이다.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의 수업 자료, 필기, 과제 등은 물론(어차피 다시 복습할 건 아니었음), 언시를 준비하며 적은 글들(이건 docx 파일이 남아 있음), 책과 영화/강연/콘텐츠 등 리뷰(그래 뭐... 앞으로도 읽고 보고 할 텐데 뭐), 스케쥴러(캘린더 앱에 어느 정도는...남아..있잖아...)

약 5GB의 데이터와의 세굿바.....(이건 굿바이도 아니야) 이 글을 지금 만천하에(?!) 공개하는 이유기도 하다. 나 혼자 꽁꽁 숨겼더니 나 스스로에게서도 없어지고 말았으니! 5GB 전부를 되찾고 싶은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감정을 토해낸 글들과 2018년 연말 결산 그리고 필사 더미.

한 해 동안 매일 같이 필사를 했다. 글을 읽고 문장을 쪼개 단어를 곱씹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체화하고자 한 글자씩 따라 쓰는 작업. 생각을 훔칠 수는 없으니 영감이라도 얻고 싶었다. 문장을 훔칠 수는 없으니 문장력이라도 갖고 싶었다. 이러한 탐욕이 잘못인 걸까. 300장도 넘는 분량이 휘발됐다.


그래도 써야 한다. 올해 내 베스트 강연(총 강연 수 9개)은 최애 작가 장강명과의 만남이었다. 최근에 나온 칼럼에서도 그는 그런 말을 했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따라 쓰는 필사를 말한 건 아니다. 책을 쓰라는 거였는데, 기왕 글을 치유의 수단이자 밥벌이 수단으로 택했으니 나는 뭐든 써야 한다. 그러니 오늘도, 앞으로도 글을 쓴다. 브런치 매거진 제목도 뭘로 할까 하다 이렇게 정했다. <조금 늦었더라도 씁니다> 도메인은 lazywriter. 게으른 나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이라면 늦었더라도 써야 한다.

클릭 한 번이었다. iCloud에서 굿노트가 너무 많이 차지하길래, 어차피 다른 클라우드로 백업하면 되니까 하고 버튼을 꺼버렸다. 그 터치 한 번으로 세상 무너지는 실연을 겪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는.. 그런 이별 말이다. 디지털 파일은 참 쉽게 잃는구나. 휴지통도 없는 iCloud는 너무하다. 다음날 노트북 바탕화면에 촌스러운 휴지통 아이콘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2020년엔 단 한 조각의 기록도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기록들을 나누려 한다.


한 번의 클릭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난 이별도 있었다. 내 마음이 쉬웠다는 건 아니고. 연인 관계라는 게 시작할 땐 참 복잡한데, 끝날 땐 너무 간단하다. 짧은 기간 만난 게 아닌데도 그냥 몇 마디면 충분했다. 헤어지는 데에는. 설득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하다못해 평생 같이 산 가족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만 보면 아는 사이, 그런 사이는 세상에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애써 눈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저 우리를 둘러싼 공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헤어질 때가 되니, 서로의 마음이 그렇게나 이해가 잘 되더라. 한창 싸울 땐 죽어도 안 되던 건데.

우리 둘끼리는 이별이 참 쉬웠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오히려 어려웠다. 당사자들은 이별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헤어졌다"는 나의 말이 무슨 폭탄선언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서로뿐만 아니라 서로의 주변에도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각자의 부모님들과도 이별을 해야 했고, 같이 놀던 친구들과는 안녕이란 인사 한 마디 못한 채 헤어졌다.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내 주변이 우리의 이별로 힘들어했다.

나는 힘들어할 겨를도 없었다. 또다시 이별을 겪었으니. 아무리 사랑이 끝났더라도 마음이 정리할 시간은 필요했을 텐데. 그 시기를 놓쳐 버렸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낸 지 한 달도 안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던 제일 친한 친구는 한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으로 갔다. 이제는 영영 마주칠 일도, 소식을 알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연인보다도 곧 다시 만날 친구와의 이별이 내겐 가혹했다. 잠시 떨어지는 건데.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택시에서는 도통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오랜 연인과의 이별에는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오더니.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도 센 척하다 스스로를 속였다. 괜찮다고. 괜찮을 리가 없는 건데, 사람이 참 그렇다. 스스로를 속이는 게 제일 쉽다.

그런데 날 가장 힘들게 한 이별은 연인과의 이별도, 친구와의 이별도 아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대화 한 번 나눠본 적도 없는 설리와의 이별이었다. 엄청난 팬도 아니었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연일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는 이였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아니었던 나는 관련 기사를 오히려 읽지 않던 사람이었다. 왜일까.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저 멍했다. 연인과의 이별에 내 우주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면, 설리와의 이별엔 온 우주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험 준비로 뜻을 달달 외우던 ‘베르테르 효과’ 탓일까. 감정과잉으로 일주일이 넘게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충분히 슬퍼하려던 찰나, 그냥 알던 사이였던 사람 몇몇도 세상을 떠났다. 내가 겪은 이별보다도 다른 이의 이별이 내겐 가장 힘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이 모든 일들이 2019년 하반기에 일어났다. 잦은 헤어짐에 이제는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다못해 스터디원이 준비를 그만둔다 하면 왜 이리도 마음이 찢어지는지, 그 사람의 맥락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어쩌면 희망고문일 수도 있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몇은 벌써 이름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안 친한 사이인데. 사실 나는 ‘내 사람들이나 잘 챙기자’ 주의라, 일적으로 만난 사이에는 정을 안 줬다. 그런데 몰아치는 이별들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들도 쉽사리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쿨병에 걸려야 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언젠가는 사라진다. 매번 이렇게 슬퍼하기엔, 스스로에게 쏟을 감정도 부족하다.

사람이랑만 헤어진 건 아니다. 4년 반 동안 다녔던 학교와도,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던 신촌의 단골 카페와도 헤어졌다. 물론 전부 하반기에(이 글의 대부분은 7월~11월에 일어난 이별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소원은 ‘졸업’이었다. 학교를 지독스럽게 싫어하는 우리 가족은 모든 구성원이 대졸자가 되는 게 목표였다. 나는 입학과 동시에 졸업을 기다렸다. 남들은 다 졸업 유예하는데, 혼자 조기졸업을 하고 싶어 학점을 악착같이 당겨 들었다. 갑자기 복수전공을 하느라 조기졸업은 못했지만, 한 학기도 안 쉬고 내내 달려 졸업했다. 교수님들과 동기들은 “아쉽지 않아?” 묻곤, 나의 표정을 보더니 “시원 섭섭도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졸업생(a.k.a. 취준생)이 됐지만, 전혀 ‘섭섭’하진 않았다.

어찌 보면, 여행도 내내 이별이었다.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 도시와 헤어지는 일이니. 심지어 미국 여행에선 친구와의 이별을 또 겪어야 했다. 사람이든 장소든, 낯선 것과 사랑에 빠지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편이다. 그 때문인지, 여행지와의 이별은 학교나 단골 카페보다 훨씬 수월했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후회나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다.

신기하게도 올해 겪은 수많은 이별들 중 후회가 남는 이별이 없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깊게 빠진 감정이 없었다는 점에선 불행이다. 모 아니면 도라고 나는 뭐든지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 우울이 덮쳤을 때, 난 충분히 우울해해야 그 우울의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애매하게 허우적대다간 오히려 더 오래 우울할 뿐이다. 이별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찬찬히 되짚어 보고 곱씹어, 다른 감정들이 닳고 닳았을 때 비로소 후회란 감정이 진하게 드리운다. 단 하나의 이별도, 내게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허하지 않았다.

며칠 안 남은 2019년이지만, 그동안 미뤄둔 숙제를 하려 한다. 이 글이 그 첫 과제였다. 온전히 내 감정에 솔직한 시간들을 가지는 것. 일부러 연말이어도 약속을 안 잡은 이유다. 여행을 가지도 않으니 더 이상 정이 들 뻔한 곳과의 그런 소소한 이별도 없다.(그렇다고 해 제발..그만..) 365일 중 360일을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지 않은 채로 달렸다. 5일 정도는,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중인데 참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별 을 검색해 들어왔을 건데, 나처럼 감정을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감정에 충실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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