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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 Nov 14. 2020

보름이 되니 초승달이 떴다

7번 신경마비 벨마비 안면마비 구안와사. 이름도 많아요. 아무튼 재발

구안와사가 재발한 지 보름이 지났다. 다행히도 차도가 있다. 게으른 글쟁이라 치료 속도를 못 따라잡을 것 같은데, 반성의 마음보단 기쁜 마음이 더 크다. <아무튼 재발>은 과연 몇 화로 마무리될까. 이전 글은 구안와사 원인과 증상, 초기 치료를 담았다. https://brunch.co.kr/@chal/24 


딱 보름이 되던 날, 어김없이 거울 앞에 선 나는 애써 웃어 봤다. 어라? 왼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더 크게 웃어 봤다. 어어어어라? 입술이 살짝 기울어진 초승달 모양이다. 오후 4시 반 즈음 동쪽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느낌. 해가 들어갔는지 반대편 하늘을 희끗희끗 보는 듯한 그런 초승달.


웃음이 나왔다. 우러나는 웃음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는데..어라 이도 보인다. 마비된 쪽, 왼쪽의 윗니도 세 개나 보인다. 원래 윗니 10개를 드러내며 웃는 나는 왼쪽 이 3개, 오른쪽 이 5개 도합 8개 이가 보이는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왼쪽 뺨에 살짝 패이는 팔자주름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게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재발한 그날처럼.




“선생님, 이 병은 대체 왜 걸리는 걸까요? 그것도 하필이면 제가 왜..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이유를 정확하게 모르니 이 병이 더 답답하죠. 저희 입장에서도 참 답답해요. 그런데..수아씨가 왜 걸렸는지는 알겠어요.”

두 번째 치료에 선생님은 재발의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른다고 하기엔 알고 있었고, 알고 있었다고 하기엔 부정했다. 스트레스 매니징에 실패했다. 재발 전 약 2~3주 동안 내 마음을 달래려 정말 최선을 다했다. 수년간 쌓아온 투쟁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처방된 특효약도 모조리 썼다. 약효가 나타날 즈음이면 더한 스트레스가 덮쳤다. 애써 해결하지 못한 이전의 것들과 뒤엉켜 나를 짓눌렀고, 결국 무너졌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선후관계를 잘못 파악했다. 마비된 얼굴 반쪽이 선, 무너진 내 마음이 후라고 오인한 것이다. 마음이 먼저였다. 항상 그랬듯.


발병 첫 주, 화목 이틀은 한의원에 가 추나를 받고 침을 맞았다. 30분 정도 걸리는 추나치료이기에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첫 주엔 병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첫날엔 내 몸 이곳저곳을 눌러보고 맥을 짚으며 몸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찾았다. 문제 아닌 곳을 찾는 게 더 빨랐을 정도로 몸은 망가져 있었다. 몸 곳곳이 뒤틀려 있었다. 내 마음처럼. 마비된 얼굴은 왼쪽이었지만 몸은 오른쪽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머리와 가까울수록 더 딱딱했다.


추나치료는 몸부터 진행됐다. 움츠러들어 있는 어깨와 골반 사이를 넓혔고 림프선을 따라 가볍게 풀어주었다. 몸의 균형이 맞으면 자연스레 얼굴도 풀렸다. 치료 전과 후, 중간중간에도 1) 입술을 "오" 모양으로 만들기와 2) 양볼에 바람 넣기 를 시키는데 이걸 통해 실시간으로 나의 근육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그 잠깐 사이에 변화가 있겠어?? 싶겠지만, 해보면 안다. 1분 동안의 심호흡만으로도 근육이 조금은 풀린다. 이건 나처럼 마음이 원인인 환자에게만 해당될 수도 있다. 마음이 풀려서, 얼굴도 풀린 거라고..선생님이 그랬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나면 선생님의 손은 머리로 옮겨 갔다. 목 뒤를 가볍게 잡고 한두 손가락으로 특정 지점들을 탁! 콕! 짚으면 발가락까지 찌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아주 작은 구슬이 혈관을 타고 미끄럼을 타는 기분이랄까. 신선하다 못해 신기한 경험은 계속된다. 선생님이 손으로 양 뺨을 잡고 아주 약하게, 슬쩍 얼굴의 축을 맞춘다. 엄청나게 큰 힘도 아니고 정말 스윽 미는 느낌인데.. "오~~"를 하면 왼쪽 볼에 힘이 더 들어간다. 신선. 신기. 신묘. 3신을 경험할 수 있는 추나치료다.


안면마비 환자에게 주어진 병원 선택지는 두 개다. 신경과와 한의원. 신경과는 지난 글에서 말했듯, 극초기(발병 1~4일 차)에 스테로이드 호르몬 약 처방을 통해 마비의 진행과 악화를 막아준다. 마비 3주 차인 지금은 호르몬 약 복용이 끝났다. 약 20일 동안 먹은 건데, 그 이후엔 소량의 소염진통제만 먹는다. 한 줌씩 먹던 초기에 비하면 하루에 먹는 약이 절반으로 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신나긴 한다. 첫 주엔 거의 약을 먹기 위해 눈을 뜨고 밥을 먹는데, 내가 약 먹으려고 사나 싶기 때문이다.


약물적인 것 외에 무언가 치료는 딱히 없다. 이건 시간이 갈수록 더하다. 내원 빈도도 확 줄어든다. 첫 주에는 3번(월화토), 둘째 주에는 한 번(토)만 갔다. 다음 내원 일정은 2주 뒤 토요일이다. 세 번째 내원부터는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 시간도 확 줄어든다. 그리고 메시지는 단 하나다. "기다리면 좋아져요."


내게 필요한 메시지는 "얼마나" 기다리면 좋아지는지다. 물론 케바케고 사바사인 거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다만 얼굴 한쪽이 안 움직여지는 사람에겐 이성보단 감성이 훨씬 더 활성화돼 있다. 원래대로 돌아올 거란, 그것도 "금방" 좋아질 거란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 이 병을 겪는 내겐 더더욱. 나 같은 재발 환자에겐 그러한 한 마디가 더 쉬울 텐데. "그때도 돌아왔잖아요. 걱정 안 하시면 그때보다 더 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거예요."


신경과든 한의원이든 그 한 마디를 해줄 의사를 찾지 못했다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지에 정신과가 추가돼야 한다. 나처럼 원인이 스트레스인 경우엔 더, 나처럼 재발한 경우엔 더더욱. 재발의 경우 잊혔던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뇌나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몸도 기억하곤 그때를 떠올리고 반복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트라우마. 웬만해선 과거에 묶여 있는 걸 싫어하는 나조차도 과거에 아주 꽁꽁 얽매이게 한다.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를 통해 트라우마 치료가 진행되고 나아가 치유가 된다면 얼굴 근육과 마음 근육 모두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감사하게도 나는 그 한 마디를 한의사 선생님에게 받았다. 대화 속에서 선생님은 끊임없이 그 믿음을 쌓아줬다. 얼굴이 안 괜찮아진 것 같은데 계속해서 "좋아졌다", "더 움직인다", "괜찮다" 해주니 적어도 마음은 괜찮아졌다. 플라시보 효과를 생생하게 겪어내는 중 같은데.. 신경과와 한의원, 그리고 경험담에 따르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회복엔 긍정적인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술을 못 마셔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시는 게 낫다고 할 정도. 물론 술도 몸의 회복에 안 좋겠지만, 마음과 몸이 함께 회복하는, 마음의 회복 없이는 몸의 회복이 힘든 병이기에 마음부터 회복시켜야 한다는 거다.


결국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나아질 거란 희망 하나를 붙들고 마음의 근육부터 차근차근 살려내야 한다. 모두가 나와 같진 않겠지만, 안면근육이 마비되기 이전과 이후 전부, 마음 근육이 무너져 마비된다. 그렇기에 오늘도 마음이 나아질 거란 희망부터 새긴다. 나약한 나는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기에, 말로 내뱉고 글로 써 꾸역꾸역 새겨 넣는다. 마음도, 몸도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다른 병을 겪는 환자들에 비하면 그 무게가 너무나도 가벼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민망도 하지만.. 아무리 작은 병일지라도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재발 20일 차 씀.

다음 글은 내 심경의 변화, 즉 마음 근육의 마비와 회복에 대해서 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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