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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충영 Feb 22. 2021

①비오는 날엔 안산자락길을 걷는다

[감성산책러의 걸어서 서울 한 바퀴]

주말에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에서 쉽게 가볼 수 있는 작은 산을 골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운동은 아니지만 건강을 챙기는데도 좋고, 더 좋은 것은 자연의 풍경을 흠뻑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쁜 생활 속에도 주말에 계절과 날씨를 느껴보는 것은 소시민에게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작은 행복입니다. 이번 주에도 오솔길을 만나 '오~ 감성~'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싶군요.


비가 오는 날에는 얕은 경사길도 미끄러워 작은 산이라도 산책을 하기가 어렵다. 평소에는 어렵지 않던 오솔길의 돌멩이와 흙 길이 잠시 소홀하면 미끄러지기 일수다. 산길을 자주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항상 주의하는 점이다. 게다가 대단한 운동신경과 순발력이 없는 평범한 아저씨가 다음 주에도 무사히 출근하려면 항상 무리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주말을 이용해 산책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다 한 번 오는 비로 산책을 쉬게 되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에도 평소와 같이 산책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곳이 있다. 바로 독립문역에서 내려 서대문독립공원 뒤로 오르면 있는 '안산자락길'이다. 이름만으로도 우리나라에 수많은 둘레길, 올레길 속에서도 단연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비 오는 날에는 안산을 산책하는 특별한 이유는 전체 코스에 경사가 없이 평평해 걷기에 미끄러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산책로를 '무장애산책로'라고 부르는데 이것만큼은 참 멋이 없는 표현이다.


오늘도 산책길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입구에 서 있는 안내지도를 보는 것이다. 전체적인 코스와 거리를 살펴보고 대략적인 산책시간을 가늠해 본다. 요즘 서울은 산책로가 잘 관리되고 있어서 별다른 준비 없이 와도 이렇게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코스 전체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빗속에서도 미끄럽지 않게  걸을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니 집에서 나설 때부터 우산을 준비해 간다. 우산은 보통 골프우산이라고 부르는 우리집에서 가장 큰 장우산을 골랐다. 우산을 들고 걷다 보면 어느새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귀에 가득 찬다. 나는 빗소리가 들린다는 것에 잠시 놀란다. 빗소리는 항상 들리는 것이었겠지만 그동안 듣지 못하고 지낸 것은 평소 사회생활이란 것이 그만큼 번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 감성~'

이런 작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산책의 묘미다.


오늘 산책길은 마침 단풍의 계절이다. 비에 젖은 단풍은 더 선명하고 깨끗하다. 아마 옛 사람들은 추운 겨울밤, 환한 달빛 아래 눈을 이고 있는 매화꽃을 보며 이런 감탄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책길에 단풍의 절정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행운이다. 여기에 더해 비에 젖어 검은 빛을 띄는 소나무 줄기가 주위의 풍경을 흑백사진으로 바꿔놓는 듯하다. 고독의 감성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오~ 감성~'

오늘은 감탄사를 연속하게 된다.


나는 외국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어 그 동네의 뒷산을 산책해 본다. 그 나라의 색다른 자연이 주는 감성을 느껴보는 것은 그 여행을 더 진하게 추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안산에서도 그런 외국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소가 있다. 안산자락길에는 '메타세콰이어숲'이라는 구간을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키가 크고 곧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심어 이국적인 숲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예전에 걸어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국립공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잠시 동안 나는 추억 속의 길을 걷는다.

메타세콰이어숲 구간(왼쪽),                         안산자락길의 숲속무대(오른쪽)

안산은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 연결이 좋다. 꼭 한 바퀴를 다 돌지 않고 적당히 산책길을 걷다 산 반대편의 신촌 쪽으로 내려오면 연세대 교정 안으로 내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신촌거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젊은이들의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오기도 한다. 또 코스 중간에 있는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면 안산에서 인왕산 중턱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어 산책방향을 즉석으로 바꾸기도 한다. 혹시 그날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면 안산 정상 쪽으로 올라 봉화대를 구경하기도 한다. 한 바퀴를 다 돌고 처음 출발한 독립문 방향으로 내려온다면, 서대문의 전통시장인 '연서시장'에 들어가 50년 전통의 순댓국을 맛보기도 한다.

능안정을 지나 내려오는 길(왼쪽)

천천히 걸어 2시간 정도 산책을 하니 한 바퀴를 돌아 출발한 곳에 도착했다. 딱 적당한 거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비로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한 밥 생각이 간절하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저녁을 지어 먹어야겠다. 오늘은 가을비를 맞고 생기가 도는 마당 화단의 적상추와 로메인을 뜯어 상추쌈을 먹어볼까 한다.


오늘도 비를 맞으며 일주일치 감성을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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