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에서 쉽게 가볼 수 있는 작은 산을 골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운동은 아니지만 건강을 챙기는데도 좋고, 더 좋은 것은 자연의 풍경을 흠뻑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쁜 생활 속에도 주말에 계절과 날씨를 느껴보는 것은 소시민에게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작은 행복입니다. 이번 주에도 오솔길을 만나 '오~ 감성~'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싶군요.
봉화산은 중화역, 먹골역, 화랑대역, 봉화산역에서 내려서 걸어갈 만한 신내동과 묵동 사이에 있는 작은 산이다. 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이름을 봉화산이라고 한다. 봉수대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의 봉수대는 신내동이 개발되면서 근린공원도 만들고, 둘레길도 만들면서 깔끔하게 새로 지은 것이다. 새 화강암의 흰색이 아직도 바래지 않은 채 그대로다.
이름이 봉화산이라서 사람들의 관심이 봉수대에만 있고 그 흔적이 다 없어졌다는 것에 실망하지만, 봉화산 유적은 그보다 몇 배는 오래된 것이다. 내가 국민학생 때 놀러 올라가면 정상에 커다란 안테나와 오래된 집이 있었고 철조망으로 둘러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해 두었었다. 건물보다는 안테나를 관리하려고 한 듯했다. 그 안테나는 지금도 그대로 있고, 오래된 집은 도당이라고 다시 번듯하게 재정비해서 세워져 있다. 도당은 굿이나 산신제를 하던 곳인데, 지금도 봉화산 도당제로 되살려서 매년 지역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이 도당제는 지난 수십 년간 주변 동네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며 명맥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내가 국민학생이던 당시 십 년을 매일 산을 드나들며 놀았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 명맥을 유지했다는 게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는 아니었던 듯하다.
정상에는 주위로 바닥에 넓게 네모난 돌이 나란히 쌓인 축대가 2,3단 정도 보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냥 정상을 평평하게 하려고 만든 것인데 관리가 안돼서 좀 무너져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고구려 사람이 쌓은 것이라는 게 밝혀졌단다. 내가 국민학생일 때도 그 위에서 별생각 없이 뛰어놀았고 봉화도 없는데 봉화산이라고 하는 게 엉터리라고 생각했는데 1500년 전 고구려 유적에서 놀았다니...
봉화산은 유명하지도 않고 크거나 높지도 않다. 아마 서울에 오래 산 사람이라도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디에 있는 산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산이다. 그래서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다. 신내동, 중화동, 묵동 등 산에 인접한 동네에서는 가까우면서 적당한 거리를 산책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다.
신내동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등산로나 시설이라고 할만한 게 없는 수준이었다. 둘레길도 없고, 산 정상으로 오르는 몇 갈래 길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신내동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고 개발 이익이 커지면서, 봉화산에도 시설이 갖춰지게 되었다. 특히 중랑구청 뒤쪽의 봉수대공원은 가장 좋은 시설이다. 그 후에 서울시에서 대대적으로 둘레길을 갖추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나는 주말에 시내의 작은 산을 산책하고 나면 주로 산책로에 대한 감상을 쓰곤 하는데, 오늘은 이렇게 봉화산의 옛날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게 된 것은 내가 어렸을 때 이 동네에 살면서 봉화산에 자주 올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봉화산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이 동네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평소처럼 산책길에서 만난 봉화산 오솔길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봉화산은 아직 나무가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사람들은 산에 굵고 키 큰 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야 그 크기와 자태에 감탄을 하게 된다. 숲이 우거지고 오래되어야 숲의 깊이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화산에는 큰 나무들이 많지 않고 아직은 가느다란 잡목 같은 나무들이 얽혀있다. 산이 오래되지 않았을 리는 없고, 아마도 나무를 함부로 베어 쓰다가 정부에서 나무 심기를 하면서 숲이 조성되기 시작한 듯싶다. 그렇게 보면 봉화산에 나무를 심은 지도 3,40년은 지났을텐데 아직도 작은 잡목숲이라고 할 정도이니, 다른 산들의 숲이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오늘은 일부러 중화역에 내려서 법만사 뒷길로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가는 길에 내가 초중고를 다닐 때 살던 집 앞을 지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집은 당시에는 단독주택이었는데 우리가 이사 간 후 헐려서 작은 빌라가 되어버려 예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꼭 이 동네만이 아니라 서울 대부분의 동네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집 바로 앞에 있던 법만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것은 당시에는 시멘트로 된 커다란 입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번쩍번쩍한 금칠을 하고 있어 더 그럴듯한 절이 되어 있었다. 골목 안의 집집이 모두 친구네 집이었는데, 그들도 모두 떠나고 집들도 다 새로 지어져 있었다. 그래도 두어 집이 예전 그대로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어릴 때의 추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가 보다. 이 동네는 30년 전 그때와 비교해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옆 동네 신내동은 대부분이 산비탈이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것과 너무나 대비가 되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동네 모습이라 오래 머물 것도 없이 곧바로 봉화산으로 향했다. 봉화산 정상은 높지도 않지만 초등학교 때는 하루에 2,30번이나 오르며 신나게 놀던 곳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는 가보니 못한 둘레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둘레길 한 바퀴는 5km 정도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반이면 넉넉할 정도다. 운동으로는 딱 좋은 거리다. 나는 쉬엄쉬엄 구경하며 걸었다. 일부 구간은 어릴 때도 다니던 길이라 눈에 익었다.
둘레길을 따라가는 봉화산의 산길은 걷기 편안했다. 둘레길은 오르내림이 적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이 함께 올 수 있는 점이 좋다. 주민들에게 맞춘 참 좋은 시설이다.
둘레길 중간에는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길도 많아 걷다가 운동량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방향을 바꿔 정상을 향할 수 있는 점도 좋다. 길을 이렇게 구성하면 걷는 거리와 시간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 각자 여유 시간에 맞춰 산책할 수 있다. 나는 평소 지인들에게 둘레길이 서울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눈에 띄게 기억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용바위'가 하나 있는 정도. 하지만 숲 속에는 구석구석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불구불한 좁은 오솔길이 숨어 있다.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도 아담하니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만한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겨울이라 화려함이 부족했지만, 다시 봄이 오고 가을이 되면 봉화산에도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산을 내려와 내가 졸업한 중학교와 국민학교의 담장을 따라 걸어서 지하철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