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누군가 갑자기 사망을 하면 그 상실감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차치하고 나서도 걱정이 꽝하고 부닥친다. 어떻게 장례준비를 하나? 결혼식을 앞두고 1년 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하는데 장례식은 그런 준비기간없이 모든 것이 갑자기 발등에 떨어진다. 조문객들에게 연락하고 대접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면 상조회 등에서 교우들이 도움을 주지만, 그래도 인사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여전하다.
추석명절이면,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해도,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이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서 여러 일손들이 주부들을 잡아당긴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한 달에 한 번씩 밥 당번을 한다. 돌아가면서 예배후 신도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를 한다. 이를 위해서 미리 만나서 상의하고, 분업을 하고 장을 보고, 당일날 일찍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요리 준비하고 점심식사 후 설거지까지 바쁘다. 캐나다 산지 25년이 넘어서 요즘 한국교회나 성당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캐나다 교민들은 어느 교회나 성당이든지 예배후 점심식사를 다 같이 한다. 순번이 돌아오면 귀찮아하지만, 그래도 책임감 때문에 감당한다. 교회를 떠나지 않는 한 의무를 다한다. 만일 이런 점심식사 준비라는 의무가 없어진다면, 많은 신도들이 홀가분해할지 모르겠다.
동문회라든지, 동호회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친교모임을 만드는 일이 종종 있다. 이민 와서도 한국 교민들과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모임은 회칙이 있고, 회비가 있다. 임원 선발기준과 회비 모금과 사용내역에 대한 결산보고가 있다. 심지어는 회보를 만들어서 발송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야외모임, 골프모임, 겨울에는 송년회 등을 기획한다. 이를 위해서 임원들이 별도로 만나서 준비한다.
나는 이런 사회적인 행사를 '번거로움'이라고 부른다. 이런 번거로움이 없이 만날 수 없을까?
과거 내가 일하던 직장에 중년 개발자가 있었다. 이 너그러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목사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개발자로 일하면서 목사를 할 수 있냐고 하니, 자신은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 목사 직무는 일요일만 한다고 했다. 그는 공공시설을 임대해서 일요일 오전 예배를 주관했다. 초대를 받아서 그 예배에 참여했다. 그 친구는 진짜 목사였다. 작은 세미나 공간을 빌려서 예배를 보았다. 예배를 마친 후, 간단한 다과 , 커피와 도넛이 제공되었고, 신도들은 삼삼오오 다과를 하면서 인사했다. 그렇게 반시간을 보낸 후, 모두 귀가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므로 일요일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다. 청년부를 다닐 적에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에 교회에서 만나서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아침 찬송 봉사를 하고 나서, 교회로 8시 반까지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하고, 10시에 성가 연습에 들어가고 11시에 대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 12시 반에 교회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1시 반에 간단한 성경공부를 하고, 마치면 오후 3시, 그냥 가기 아쉬워서 다시 또래 교우들과 커피샾에 갔다. 이것은 일요일 하루 일정이었고, 목요일 성가 연습, 토요일 청년부 모임 등이 별도로 있었다. 이 캐나다 친구는 목사지만, 교회일은 일요일 오전으로 끝이 났다. 평일에는 개발자로 회사 다니면서 자기 생활을 했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교회 신도들이 별도로 봉사모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 영화에서 보면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뿔뿔이 살던 형제 남매들이 고향집에 와서 보내는 장면들을 종종 본다. 종교 기간이나 혹은 장례 전문회사에서 시신을 조문객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해 주고, 접견시간이 끝나면 3일 뒤 장례식 전까지 형제들은 별도로 하는 일이 없다. 집에서 쉬고, 저녁때 동네 술집에 가서 옛날 친구 만나고 이렇게 저렇게 쉬다가 입관하는 날, 묘지에서 목사님의 지도로 절차를 마치고, 각자 형제들에게 인사하고 다시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절차나 준비로 가족들이 번거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명절이라고 해서 시댁에 가서 미리 음식 준비를 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부모 집에 갈 때, 파이나, 케이크, 별도로 만든 음식 하나 정도를 준비해서 찾아갈 뿐이다. 같이 저녁을 먹고, 귀가하든가, 거리가 멀면, 며칠 쉬다가 돌아간다.
왜 한국의 사회적 모임은 복잡할까?
서양문화의 간편함은 인간관계에도 확장된다.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를 하든 아니면 혼자 하든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일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알 바가 아니다. 오늘 이 친구랑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섭섭하다고 할지도 모르는 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지내다가 보니, 앞에서 걸어오는 미인 직원이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면서 인사해도 내가 쓸데없는 오해를 하지 않는다. 그 미소가 내가 좋아서 하는 표현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니 인사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정에 잘 드러낸다. 얼굴을 보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짐작이 된다.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터득하게 된 처세는 그렇게 친하지 않아도 가벼운 대화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선술집에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대화가 절친과 하는 대화랑 그렇게 격이 다르지 않다. 쉽게 대화하고, 상대의 내적인 것을 건들지 않으면서 표정을 약간 크게 반응해주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인상을 주면서 모든 형식적인 것들을 간소화시킨다. 이런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날 때 별도로 옷깃을 여미는 행동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사회적 모임에도 연장이 된다. 집에 친척이 와도, 지인이 방문해도 특별히 긴장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스호스텔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각자 먹을 것은 알아서 챙겨 먹고, 공동시설을 사용 후 원래대로 정리해놓는다. 서로의 취침과 사생활에 방해가 안되도록 배려하면서 조용히 행동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고, 상대방의 개인 공간을 인정해주면서, 각자 심정적으로, 덜 의존하면서 지내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캐나다 사람들의 태도이다.
추석명절에 떠오른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