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줄여서 동백)으로 부터의 단상들을 시리즈로 정리해본다.
흥식은 옹산에서 5명을 살해했다.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살해 동기를 보여준다. 남이 자신을 낮추어 볼 때, 그것이 경멸이건 동정이건 살해로 이어졌다. 주인공 동백은 일하러 온 흥식을 밥을 먹여서 보내고 땅콩 안주도 서비스로 주는 등 각별하게 챙겨주었으나 흥식은 그것이 동백에 대한 살인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동정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며 동정받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으로 상대가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감정이 동경이다. 상대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애석하게 바라보는 감정이다. 옆집 네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더니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고 그리고 28세가 되던 해에 괜찮은 집안의 여식과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그 아들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 비해 자신의 아들은 삼수를 해서 지방의 전문대에 들어가고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6개월 뒤 퇴사하고 기술을 배운다면서 학원 다니고 중간에 군대도 다녀오고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직장이 없다면서 동네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내고 있다면 옆집 아들은 엄친아가 되고 솔직한 마음에 그 집 아들 결혼식장에 참석하는 마음이 편치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SNS 댓글에 힘내요라는 글은 쉽게 달려도 이뻐요. 훌륭해요. 부러워요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출발선이 자신과 비슷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나오기 힘든 말이다.
동정은 쉬워도 동경은 어렵다.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잘 되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동정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마음이자 말하는 사람에게 속으로 안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이다. 어머나 옆집에 도둑이 들어서 귀금속이 없어졌데... 그러나 우리 집은 도둑이 안 들어 다행이야. 귀금속은 보관하지 말아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애고 이를 어째 하면서 반응을 드러낸다.
이웃의 잘 안 풀리는 일들을 미장원에서 하는 마음은 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안정적인 사업을 격려하는 데 있다. 동정의 뒤끝은 자기 위안이다. 정말 이웃의 불행이 애처롭다면 같이 괴로워해야 한다. 말로 크림칠 한번 해주고 "자자 잊어버리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런 뜻에서 건배.." 듣고 있는 불행한 사람은 이런 태도에 화가 날 수 있다. 흥식은 편부 슬하에서 건설 막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친구도 없이 성장한 그는 나이 서른이 되었어도 철물점을 관리하면서 연애한번 못해보고 공사장에서 부상 입은 부친을 돌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흥식을 핸디맨 수준으로 여기고 쉽게 동정하고 낮추어본다. 동정은 그 자체가 상처가 될 수 있다. 편부 밑에서 산다고 옆집 아줌마가 소풍날 김밥을 챙겨주면 그 행위가 선행이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편부 슬하면 어떻고 동네 평균보다 가난하게 살면 어떠냐. 왜 유독 일부모 가정을 결손으로 보고 배려해주어야 하나. 양부모이건 동성 부모이건 편모이건 고아원이건 가족의 구성을 놓고 편견을 가지고 차이를 두는 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왼손잡이냐 오른 손잡이냐 처럼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지 유독 강조해서 편가를 일은 아니다.
동정이 일방적일 때 그것은 폭력이 되고 상대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게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은 디테일해야 한다. 너무 그 사적 공간과 배경에 침범해 들어가지 말고 덤덤하게 대하고 상대가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하면 그때 그 사람의 고충을 듣고 그랫구나.... 하면서 호응하는 것이다.
흥식은 동네 사람들의 동정과 간혹 가다 더러운 물건 대하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고 그의 민감한 감수성이 연쇄살인이라는 폭력으로 증폭돼서 돌아왔다. 6년 동안 6차례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동네 사람들이 한 청년에 대해 아니 꼬마에 대해, 아니 그 가난한 부친에 대해 던진 시선과 말들의 오랜 저축이다.
흥식은 자신을 동정하는 시선에 민감했다. 그래서 선의로 자신을 감싸주던 동백도 자신을 낮추어 보는 사함이라고 확대 해석하고 살해 대상에 올렸다. 악은 차이를 무시하고 싸잡아 비판하는 시각에서 싹이 튼다. 지나친 계급서열 사회는 별 시시한 것들을 가지고도 우열을 창조한다. 부모의 직업, 가족 구성, 출신 배경, 학업성적, 외모, 경제력, 인맥 등으로 서열을 매기고 선배는 후배에게 쓴소리 할 수 있는 정당성을 마련한다. 친할수록 상처를 주어야 하고 우정은 때리고 과롭히는데서 자라는 것이라는 가학 주의 문화공동체가 된다. 일단 신입 인턴들은 옥상에 집합시켜 줄빠따로 신고식을 치른다. 가학 경험을 토대로 집단의식이 조성되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선배는 후배를 보호해준다. 이에 감동받은 후배는 더 진한 충성으로 보답한다. 요새 말로 인사이더가 된다.
남에 대하여 비아냥 거리고 동정을 남발하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가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구든지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남을 섬겨라."
이것은 말재간 즉 수사학이 아니다. 정확하게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내가 월요일 회사 가서 옆 직원에게 블만을 드러내면 그 불만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부메랑이 된다. 아내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그날로 가족 모두를 대접해주면 그대로 아내와 가족 모두의 대접으로 돌아온다. 남에 대하여 안 좋은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은 한 다리 건너서 옆 방에서 곤히 잠드는 다른 직원의 마음을 나에 대한 적군으로 만드는 저축 행위다.
버림받은 아이로 성장했지만 주인공 동백은 동네 사람들을 종국적으로 자기편이 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향미는 돈을 벌기 위해 돈 믾은 사람들에게 트집을 잡는 일을 하다가 주변에 적들을 늘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