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어떤 유튜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얻은 한국인들이 대부분 지나간 3,4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캐나다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라는 류의 에피소드를 올린 것을 보았다. 캐나다 이민을 염두에 두는 독자들이나,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혹은 오래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캐나다 이민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런 내용을 종종 열어본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 남성이 토론토로 와서 요리학과를 졸업하고, 식당에 취업해서 돈을 모으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대리운전 일까지 하면서 지낸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캐나다에서 돈을 벌기는 힘들다, 저축은 아득하고, 투잡을 뛰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에 천불 저축도 힘들고, 렌트 값도 비싸서 어느 세월에 자신도 결혼해서 중산층으로 안착할지 모르겠다. 시급이 14불인데 이런 정도로는 삶이 팍팍하다'라고 말한다. 남자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방송 내내 절망과 답답함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묻어 나왔다.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공정하고 유복한 사회가 캐나다가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 반대라서 캐나다 이민의 장점이 있는지 회의가 생긴다는 입장이 전달되었다. 남성은 나이로 보아 29세 정도에 캐나다로 유학을 왔고, 취업 걱정이 덜할 것 같은 전공으로 요리학을 택했다. (그것은 한국방송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다. 먹방, 요리 프로그램, 요리사나 식당이 항상 등장하는 방송을 많이 보다 보면, 요리사가 해외취업에는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수입의 반이 집세로 나가고 나머지로 식비와 교통비등을 충당하고 남는 돈이 거의 없다. 10년을 지내도 특별하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캐나다로 오는 한국인들은 힘든 장기간의 육체노동을 각오하고 와야 하고, 중산층으로 진입해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지낼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지 말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진실을 담고 있지만, 완전하게 진실도 아니다.
23세 때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직업학교 Vocational school 요리학과 6개월 단기과정으로 유학 온 남성이 있었다. 7년 전 퀘벡주의 주정부 이민은 6개월 이상의 고등교육(고등학교 졸업자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교육과정)을 주내에서 수료하고 불어 공인 능력시험에서 기초적인 레벨을 넘기면, 주정부 노미니를 얻는 제도가 있었다. 그는 불어 공인시험을 치르고 바로 퀘벡주 노미니를 거쳐서 캐나다 영주권을 곧바로 얻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대학 1학년 경영학과에 지원하여 입학했다. 영어 과정이라 불어 능력시험이 불필요했다. 5년의 과정을 우수 학사학위 (Honour degree)로 올해 여름에 졸업했다. 경영학 중에서 회계를 세부 전공한 그는 기업회계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 Deloitte에 취업됐다. 고객사에 나가서 회계 감사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신입사원이라 향 후 2년 내로 회계사 시험도 통과해야 승진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신참자들은 대부분 중상류층의 자제들이어서 대부분 부모의 지원을 받아서 자신의 콘도를 다운타운에 소유했다. 초봉이 6만 5불에서 시작하고 회계사 자격증을 얻은 후에 2만 불이 더 오른다. 이 한국 남성은 몬트리올에 살면서 불어 실력이 늘어서 면접도 불어로 볼 정도였다. 5년간의 맥길대학생활을 하면서 현지 친구들과 술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깝게 지냈고, 그런 경험이 불어 실력을 얻게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영어와 불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취업 시에 유리하다. 앞서 요리사로 일하는 한국 남성이 유튜브에 나와서 말한 것과 맥길대를 나온 이 청년이 말하는 캐나다는 다르다. 청년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2년 뒤면 8만 불 연봉을 얻는 위치에 오르기 쉽고, 대기업에서 만난 인맥들을 통해서 금융업계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게 될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열심히 노력해도 저축하기 힘든 팍팍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민자라도 중상류층으로 오를 수 있는 것인가? 청년이 다니는 딜로이트사는 업무가 힘들다,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연말 회계결산 시즌이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널널한 생활은 나머지 기간 중에도 없다. 두 한국인은 캐나다 생활중에 '열심히, 노력하면서 '지낸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두 청년이 바라보는 미래는 전혀 다르다.
영주권을 얻은 한국인들이 위의 두 가지 진로 중에 하나로 발을 들여놓는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서 식당에 나가서 일하던 40대 이민자가 그다음은 공장으로, 편의점으로 일을 바꾸어가면서 가족을 부양한다. 한국서 재산을 정리하고 캐나다에서 작은 가계, 주유소 등을 인수해서 장사를 한다. 캐나다에서 방영된 '김 씨 편의점 Kim's convenience'가 전형적인 한인 이민자 가정의 직업적 선택이다. 그래도 가게를 인수할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이민을 온다면 출발선이 다를 수 있다. 재산이 별로 없는 상태라면 단순 노동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양태를 보면서 캐나다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이민 고민자들에게 조언할 수 있을까?
직업의 차별은 없지만, 직업에 따른 경제적, 복지적 차이는 크다. 경제적 조건이 인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결론은 별로 틀리지 않는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나의 사회경제적인 조건의 구속을 받는다. 내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 수익과 지출 등에 따라서 사회는 칙칙하게 보일 수 있고, 무지개로 보일 수 있다. 캐나다는 이러이러하다고 단순하게 정의하는 내용을 읽거나 들을 때, 간과하는 것이 그가 서있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다. 국가에서 직업과 월급을 통제하는 기계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다음에, 사회라는 것은 그 사람의 계급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캐나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건 공통적인 문제다.
딸기밭에 100명의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서서 하루 종일 일해서 수확한 딸기에 따라서 일당을 준다면, 가장 많이 수확한 사람이 가장 많은 돈을 받을 것이다. 노력한 만큼 거의 정비례로 수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회라는 틀 안에서 보면, 출발선, 바탕에 따라서 노동의 대가가 천차만별이다.
전자의 한국 남성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10년을 일해도 시급 20불을 받기 쉽지 않다. 자신이 식당을 차리기 전까지 요식업소의 특성상 종업원으로 머물러서 큰 저축은 하기 힘들다. 후자의 남성은 2년 뒤에 한 달에 세금을 제하고 들어오는 금액이 5천 불이다. 1500불 렌트비와 각종 식비, 유릴리티로 1000불을 사용해도 2000불을 저축할 수 있고, 일 년이면 24000불이 된다. 이렇게 4년을 모아서 10만 불을 다운페이 비용으로 만들어서 다운타운을 30분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역에 50만 불짜리 콘도를 은행 모기지를 얻어서 구매할 수 있다. 이 남성은 회사에서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있다. 짝은 대체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지척 지간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다. 신데렐라가 무도회를 자주 가다 보면 왕자나 귀족 자제를 만나지만, 부엌에만 머물면, 배달 오는 사람들이나 옆 집 청년을 만나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결혼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과정이지만, 잘 어우리는 짝을 직장이나 동종업계에서 만난다면, 저축은 두배로 빨리 할 수 있다.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저축하고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발판이 어디냐에 따라서 성장 가능성은 불평등하다. 노는 물에 따라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오를 수 있는 한계점이 다르다. 한국에서 서울대를 들어갔다는 것, 그것도 법대에 다닌다는 것, 그래서 사법시험을 통과했다는 것, 그래서 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한다는 것, 국회의원의 반수가 법률가 출신이라는 것은 그 서울대 법대라는 발판에 올라선 것이 가져오는 성장의 최고치가 일반대학 졸업생의 졸업 후 진로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기회가 불평등하다.
사고방식을 바꾸고, 시간관리를 잘하고, 처세술을 익히는 등등 일반적인 성장 조언들이 일견 맞으면서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장은 개근상을 타고, 수업에 충실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서 연말에 표창장을 받는 성실함에 본질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발판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있다. 영어로 말하자면 Growth is not based on daily practice, but bottom ground change, 성장은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발판을 바꾸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 유튜브를 하던 그 청년이 서있는 발판에서 성공은 한정되어 있다. 물론 식당을 차리고 성장시킬 수 있다면, 맥도널드 같은 재벌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극히 예외적이다. 맥길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청년은 캐나다 올 때의 기준으로 보면 전자의 청년과 지적능력과 성실성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2년제 유학을 온 전자보다, 6개월 단기 직업학교 유학비가 더 적었다. 이 청년은 캐나다로 발판을 변경하는 첫 번째 변경, 영주권을 얻은 후,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는 두 번째 변경, 그리고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하는 세 번째 변경을 통해서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질이 다른 트랙에 올라서게 되었다. 물론 이 청년이 퇴사를 하여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맥도널드에 취업한다고 해도, 그가 얻은 경험과 지식은 다시 첫 직장과 유사한 레벨의 사회적인 공간에 들어갈 것이다. 대학에 가는 것은 고등학교 4학년, 5학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발판이 바뀌는 것이다. 대학 내에서도 전공에 따라서 전혀 다른 진로의 트랙이 열린다. 사회적 공간은 불평등하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 한계치가 높은 발판에 발을 걸쳐야 한다. 동굴에서 도를 닦는 것은 고대 인도에서나 가능했다.
성인이 되어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어려운 과제가 당장 일자리를 찾는 것보다 다른 사회적 계급에 오를 수 있는 진로의 변경이다. 영어와 기술을 익히고 난 뒤에 직장을 구하라고 하면 용기가 나지 않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닥치는 대로 일을 구하다 보니, 단순 노동직에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10년이 지나도 그 '영어와 기술'에 발목이 잡혀서 단순노동집약적인 수입원에 구속된다. 계급의 변화를 위해서는 발판을 바꾸는 진로를 가야 한다. 무조건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레드카펫이 깔리는 것도 아니다. 20년 전에 이민 온 여성분은 남편이 전산직으로 취업해서 다닐 때 컬리지에 진학해서 도서관학과 Librarian 2 년제를 수료했다. 졸업 후 도서관 일자를 얻는데 실패했다. 수요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샌드위치 샾에 헬퍼로 들어갔고, 전업주부를 하다가 다시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공부해서 중계인이 되었지만, 1년 정도 하다가 관두었다. 대학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지만, 그 자체가 ground change를 보장하지 않는다. 요새 유행하는 한국말로 '가성비' (아마도 투자 대비 회수율을 말하는 듯)가 높은 전공을 택해야 하고, 자신의 적성이 어느 정도는 맞아주어야 한다. 즉, 진로란 전략적이어야 한다. 탑승하나만으로 알아서 성공의 엘리베이터를 상향시키지 않는다.
일상의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진로의 선택이다. 따라서 일당, 월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 사업이 가져다 줄 사회적, 경제적 장래성이 중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