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발목에 잡혀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승진도 못한다고 체념하는 교민 남자들이 많다. (교민 여자분들 중에서는 간혹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잘 나가는 사람도 본 적이 있어서 섣불리 여성들로 까지 확대하고 싶지는 않다) 교민으로 살아간 지가 25년이 넘은 내가 나보다 더 먼저 이민 온 사람으로부터 '영어 발목'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이 한국인들 공통의 문제인가 의심이 들었다.
최소한 한국서 대학을 마치고 캐나다 온 교민들은 '영어 발목'을 누구나 한탄한다. 영어는 정말 늘지 않는 것일까? 늘어난다고 해도 저들 주류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에는 까마득하게 먼 수준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인도 출신들은 인도에서 대학을 나오고 캐나다 와서 석사과정을 마쳐도 회사에서 '사바사바'하면서 잘 섞이고 처세를 잘한다.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과도 잘 교제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래, 인도 사람들은 영국 식민지로 있는 동안 영어문화가 확산돼서 잘한다고 치자. 중국사람들만 하더라도 중견 관리자 급으로 잘 나간다. 캐나다로 이민 온 지 10년밖에 안되었는데도 중국 중년 직원은 매니저가 되거나 팀장이 돼서 각종 회의에 참석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살살 녹아난다.
한국서 대학을 마치고 캐나다 와서 다시 컬리지 2년 과정을 마치고 결혼도 하여 어언 27년을 살아온 장년이 영어 한탄을 했다. 그는 의사소통시간에 농담을 못 알아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한탄한다. 아, 아직도 나는 영어 농담을 못 알아듣는구나. 원래 조용하고 묵묵한 전형적인 이 분은 자신이 한 일을 남들 앞에서 설명하는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않다. 항상 자신은 인사고과에서 자신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이유로 저평가받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사실, 캐나다 회사 생활하는 거의 모든 기간 동안, 영어의 한계를 절감하고 답답하게 살아온 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고백이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이 존재한다. 조만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교민 생활 25년이 넘은 시점에서 아직도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회사생활에서 엉거주춤 지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현지인(백인뿐만 아니라 캐나다 사는 모든 외국인을 포함)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답답함이 사라졌다고 자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너무도 단순하게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 Mentalist'에 등장하는 패트릭 제인 역을 보고 나서이다. https://youtu.be/AuXulT6 NFtw 그는 마술을 하는 사람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상대에 따라서 유연하게 접근하고 그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의 유들 거리는 영어를 듣고, 부러운 마음이 발동했고, 나도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사람을 읽어내는 연습은 그가 어떤 인종의 사람이건 상관이 없이 할 수 있다. 언어는 표현에 불과하고 그 밑에 깔린 감정은 보편적인 인간들이 가지는 것들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어 있다. 문법이나 단어는 피상적이다. 아이가 아무리 어버버 말을 해도 엄마는 알아듣는 식이다. 영어로 말이 나오기 전에 마음이 먼저 가게 되어 있다. 웃으면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패트릭 제인을 벤치마킹하다 보니, 영어 하는 사람에 대한 기피 감도 사라지게 되고, 사람 그 자체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회의 시간에 나오는 모든 농담까지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놓쳤다고 해서 자책하지는 않는다. 창문에 붙은 파리 바라보듯이 대한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에게는 영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1. 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다.
2. 10년이 흘러도 나의 영어는 아주 조금만 늘어날 뿐, 저들과 섞이는 정도로 유창해지지 않을 것이다.
3. 틀린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창피하다. 따라서 가급적 영어 대화에서는 말을 아끼고, 같은 직무라도 영어를 덜 사용하는 편으로 선택한다.
이 관념은 매우 단단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늘지 않을 영어, 공부해서 뭐하나, 이대로 대충 살자는 마음을 가진 교민들을 많이 보았다. 예를 들어 골프를 할 때, 공을 엉뚱한 곳에 보내게 되면, 속상해서 치는 연습을 하고, 유튜브로 공부해서 다음 시합 때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골프를 못하지만, 나도 열심히 연습하면 중간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영어의 문제에 마주쳤을 때는 아무리 영어로 실수해도 집에 와서 더 나은 표현, 발음 등을 복기하고 공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언어의 문제뿐이 아니다. 캐나다식의 제스처, 인간관계, 사회적 관행,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연습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민 와서 영어학교를 다니면 한국인들이 영어시험은 제일 잘 본다. 문법과 어휘력이 타국가 출신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 없이 마구 말하는 부분은 약하다. 말을 하고 나면 상대 외국인과 친밀도가 올라간다. 말을 자제할수록 상대는 영원한 외국인으로 친구 범위에서 제외된다.
고정관념은 성장을 막는다. 영어를 골프처럼 생각하면, 얼마든지 유창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