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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Dec 09. 2019

혼자 장보러 나온 김씨

노년에 혼자서 살아가는 연습

김 씨가 혼자서 코스코에 장 보러 온 것을 본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장 보러 온 것은 아니고 그냥 바람 쐬러 나왔다고 했다. 일요일 오후, 바람을 쐬기 위해서 붐비는 코스코 매장까지 차로 한 시간 걸려서 아내도 없이 혼자 온 것이다. 딱히 무얼 사지도 않았다. 그의 두 자녀는 일찌감치 독립해서 각자 타 지역에서 살고 있고, 그의 아내는 일요일인 고로 교회 행사에 참석했다. 


혼자 다닐 때, 왠지 나 자신이 초라한 느낌을 가진다. 옆에 아내라도 있으면 나는 볼 일을 보러 나온 여러 사람들 중에 하나이지만, 혼자서 바깥을 돌아다니면, 사람이 아니라 영혼 같다. 맥도널드에 가면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한두 살 많을 것 같은 홍콩인 부부가 보인다. 그들이 오후 시간에 맥도널드를 갈 때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일상적으로 매일 찾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곳에 혼자서 일요일 오후를 보낸다면, 외로워 보인다. 마치 혼자인 것은 결손에 가깝고 동행이 있는 것은 완벽에 가까운 느낌이다. 


내가 코스코에 혼자 나온 김 씨, 그러니까 60이 조금 상회한 그를 보고 속으로 가졌던 생각이 그 '결손'의 느낌이었다. 안돼 보이고, 적적해 보이는 것, 하필 사람 많은 코스코에 바람 쐬러 나올까? 그의 아내와 교회를 동행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가기가 정말로 싫어한다면 각자의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니면 각 방 쓰는 부부가 연장이 돼서 주말 외출도 각자로 굳어진지도 모른다. 불현듯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어떤 사연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 주말에 누구랑 같이 장을 보러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짝이라는 것은 옆에 있을 때가 좋은 것이다. 정상이라기보다는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도 홀로 세상에 나왔고, 돌아갈 때도 홀로 가는데, 혼자가 된다는 것을 비정상, 결손으로 보면 욕심이다. 물이 흘러 흘러 합치기도 하고 다시 갈라서기도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흘러가다가 연이 되어서 같이 살다가 이제 수명을 다해서 해어진다면, 만남은 축복이지만 헤어짐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과정이다. 


나는 홀로 지내는 것을 초라한 시선으로 보기를 멈추었다. 

절에 사는 스님들은 가족이 없이 혼자 살아간다. 구도의 길을 가는 동반들은 있지만, 그것은 마치 직장동료 같다. 쇼핑몰에서 같이 떡볶이를 먹는 가족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 혼자서 주문해서 먹던가, 행여나 같이 장 보러 나온 동료 스님들이 있다면, 점잖게 시뻘건 떡볶이를 입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거나 연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내 몸이 있고, 먹어서 즐거울 것이 있으면 먹고 그 느낌을 즐기면 된다. 그것에 굳이 사람 울타리를 붙여서 정상, 비정상을 가를 필요는 없다. 


혼자서도 잘 지내요. 


오는 사람을 기피할 필요는 없지만, 혼자서 잘 자라는 소나무처럼, 살다가 가면 될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옆에 있었던 사람이나, 자식들은 각자의 물줄기를 따라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여정으로 흘러가겠지.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


김 씨는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서 한 시간 걸려서 코스코 매장에 왔을 뿐이다. 나라면 하지 않을 선택이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김 씨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북적거리는 장소에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마침 그가 이사한 곳이 도심지에서 떨어져서 여기 아니면 붐비는 곳을 근처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심한 Bucket List는 가볍게 주말을 보내는 방법을 도와준다. 겨울이라 야외에 오래 지낼 수 없고, 아직도 건강할 때 창문이 커다란 펍에 가서 맥주 한 컵과 칼라마리 안주를 주문해 놓고, 컴퓨터를 켜고 끄적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소망이다. 이런 습관이 노년이 되어서도 반복될 것이며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 들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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