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도 있던 그때
"전화선으로 인터넷 연결 하시겠어요?"
어린 날의 기억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전화선을 통해서 인터넷 연결을 선택할 거냐는 물음에 부모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No."를 선택하셨다. 시골 중에서도 시골. 마을에 있는 길 하나를 따라 걸어가면 그 길이 끝나는 집이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첫 컴퓨터가 생겼다. 그 컴퓨터는 인터넷은 되지 않은 철저히 앞으로 컴퓨터를 쓰게 될 우리의 연습을 위한 컴퓨터였다.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는 뭘 할 수 있냐 물어볼만했지만, 그때 당시 나에게 자전거와 리모컨을 사수해야 하는 TV 말고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터였다. 한컴타자연습으로 게임의 세계를 맛본 나는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게임을 섭렵하곤 했다. 왜,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에는 스타크래프트가 깔려있었는 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지만 컴퓨터와 플레이 가능한 그 게임에서 뭔 말인지도 모를 치트키를 영어 하나하나 독수리타자로 입력하며 플레이했던 기억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치트키를 써가며 익숙해진 게임도 접고 그다음으로 섭렵하려 했던 프로그램이 아래아 한글이다. 지금이야 '표'하면 바로 '엑셀!'이라고 외치지만 어린 초등학생에게 나는 엑셀이란 영어도 못하는 데 영어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스타크래프트보다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으레 그렇듯 여동생과는 하루는 싸우고 하루는 둘도 없을 자매처럼 지내왔는 데, 그때 하는 놀이가 책상과 이불, 의자를 이용해 천막을 만들고 서로 각자 집을 지었다. 그리고 각자 설정을 만들고 이웃인양 역할극을 하며 놀곤 했는 데, 그 집 꾸미기가 아래아 한글까지 퍼졌다.
그 뚱뚱한 모니터의 컴퓨터는 이불과 책상, 의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소꿉놀이를 제공했다. 노란색 체크무늬의 그림을 벽지 삼아 현실에 없는 노란색의 방을 만들었다. 거기에 동생이나 나나 각자의 취향에 맞춰서 가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나를 대체할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를 세워뒀다. 나에게 아래아 한글은 구겨지지 않는 종이인형놀이 도구나 다름없었다.
지금 확인해 보니 최신의 한글프로그램에선 내가 봤던 어린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그리기 마당을 제공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돌풍이 불어 닥친다. 컴도사의 등장.
시골 중에 시골. 아파트라곤 악의 총 본산 같은 오래된 아파트 하나가 전부인 동네에 이미 다른 지역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찾아왔다. 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 2000년대 초반 시골구석의 초등학생들이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게 만들었으니 컴도사라고 불릴 만도 했다.
선생님의 수업은 다양했다. 4학년 무렵 학교를 찾은 도사는 초반에는 컴퓨터 수업을 맡다가 방과후 학교 개념으로 자격증반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수험생활의 시작이다. 나는 그때 워드프로세서 2급, ITQ한글, 컴활 2급 필기 합격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격증반만 빛을 봤는가? 아니, 나에게 종이인형 놀이였던 한글은 이 선생님을 만나 표를 가지고 노는 수준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었다. 가족신문 만들기는 방학숙제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때의 가족신문의 메인은 알맹이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았는가. 잘 꾸미는 게 중요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 중요한 점은 '손'으로 얼마나 예쁘게 꾸몄냐는 거였다.
하지만 컴도사 선생님의 수업은 달랐다. 알맹이가 아니라 형식을 배운 수업이었다. 그때 다단의 개념을 이해했고 무려 손으로 그린 리본이 아니라 그림마당에 있는 리본이 아니라 표로 리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야 포토샵으로 선 몇 개 긋거나 무료 이미지 검색을 이용해 더 근사한 표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무렵 내가 포토샵이나 엑뷰를 다루기 전까지 뭔가 있어 보이는 문서를 만들 때 이 리본은 항상 등장했다. 그 나이의 내가 보기에 제법 멋있어 보였다.
지금이라면 저 리본을 하나 만들어 두고 복사-붙여 넣기를 하는 효율의 끝을 달리겠지만, 그때의 나는 필요하면 필요할 때마다 리본 모양을 상상하며 이리저리 대각선 모양의 선을 표에 추가하며 만들었다. 그때의 표를 조금 더 예뻐 보이기 위해 좌우의 비율을 조정해 가며 아래아 한글의 표와 손에 익혀 갔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아래아한글보다 워드를 자주 쓰게 되었지만, 프로그램의 제약이 없다면 나는 아래아 한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워드로는 이런 표를 만들어 내는 건 복잡하다.
요즈음에도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프랑스자수가 그렇고 픽셀아트가 그렇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고얀 버릇하나 가 생겼다. 첫술부터 배부르려고 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요령이 생기고 1인분의 인간이 되었다고 제법 쉽게 적응해 갔다. 그게 그 기저에 다른 것들이 기반이 되었으니까 가능했다는 걸 다 까먹고 말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묻겠지만 한글 프로그램은 그냥 내 손이나 다른 없다.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데 모든 단축키를 알 수는 없지만 그 프로그램을 다룸에 어려움이 없다. 그건 다 어린 시절 이리저리 만들어서 하나하나 경험치를 축적한 까닭일 테다.
오늘도 실이 꼬여버리고 어딘가 어그러진 픽셀아트를 만드는 손을 가지고 이미 숙련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만을 바라본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복사-붙여 넣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하나 표를 깎아내 리본 타이틀을 만들어 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하나하나 차근차근해나가면 가능할 텐데 왜 자꾸 서두르냐며 호통치는 작은 아이를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