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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TC

가정주부와 직업에 대한 생각

by Simon de Cyrene

어쩌다 보니 사범대 수업을 많이 한다. 처음엔 한 교수님 안식년에 잠시 와서 해줄 수 있냐고 하셔서 시작된 것인데, 다음 학기까지 하면 이젠 출강하지 않는 대학까지 총 3개 대학 사범대에서 강사로 가르치게 된다.


사범대에서 잠시 과목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을 할 때가 있는데, 그중에 내가 한 학기에 한 번은 반드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이 교사가 되고 나면, 별의별 학생은 물론이고 이상한 부모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난 학생이나 유별난 부모를 보지 말고, 여러분이 영향을 주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고 그 자리를 지키라고 한다. 한 반에 한 명에게만 긍정적인 영향을 줘도, 그 학생의 입장에선 선생님 덕분에 세상이 바뀌는 거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그런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만 항상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매우 잘하셨고, 대학교에서도 여장부 같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셨다. 대학원도 가셨지만 친할머니께서 좋아하지 않으셨고, 나와 동생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에 어떻게든지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셨지만 지속가능한 일은 찾지 못하셨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는 지금도 한 번씩 '내가 돈을 번 적이 없어서...'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신 뒤에 '그래도 네 아빠가 돈을 벌어온 거잖아'라고 하시길래 내가 화를 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께서 집안일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정도로 다 챙겼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그렇게 일하실 수 있었던 거라고, 그리고 어머니께서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최소한 그 모든 일을 돈 주고 할 사람을 구할 때 드는 비용 이상이 된다고. 당연히 그 이상일 수밖에 없는 건, 그렇게 구한 사람이 어머니만큼 아버지를 잘 지원사격을 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그 사람도 최소한 몇 년, 보통은 몇 달에 한 번씩은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에너지가 상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돌아보면, 나와 내 동생은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정도의 삶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셨고, 아들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려고 했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유로운 영혼인 내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어머니께서 창출해 내신 경제적 가치는 어머니께서 하신 집안일에 아들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분량까지 합해야 한다.


이처럼 누군가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매우,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물리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정주부의 가치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때때로 배우자나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고 자신은 없어지는 것 같아서 가정주부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은 과연 본질적으로 다를까? 회사 안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일하는 회사원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잘해서 일도 안 하는 상사 좋은 일 하는 회사원이 얼마나 많은가?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면서 본인이 무엇인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아침에도 내쫓길 수 있는 게 회사원의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회사는 사람들이 그 안에 머무는 동안 마치 자신이 엄청난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야생에 나와서 자신의 일을 해보기 위해 시도한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닫게 된다. 사실은 자신이 본인을 위해 일한 것은 거의 없고, 회사와 상사 좋은 일을 훨씬 많이 했다는 것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원하고, 바라는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 있고, 바라볼만한 것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의 코드에 잘 맞아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매우, 극히, 드물고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고민하면서 그들에게 맞춰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다 노년기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뭘 위해서 그렇게 산 걸까?'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기 볼 수 있다.


그러한 삶이 의미가 없다거나, 그러한 삶을 폄하하거나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사냐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서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고, 누구도 그런 삶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특히나 자신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버텨내며 살아가는 삶은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든 회사원을 존경한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이유로 역설적으로 더 근본적이고 인간에게 필요하면서 중요한 '가정'과 '가족'을 지탱해 주는 축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는 '가정주부'의 가치를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원시시대에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거나 농사를 짓는 것만 의미가 있는 일이었나? 아니다. 집에서 밥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삶의 터전을 관리하는 일도 필요하고, 의미 있으며, 가치 있는 일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남자가 더 강하다 보니 남자가 물리적으로 더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하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했을 뿐이지 더 가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없었다. 과거에 남자를 더 귀하게 여기고 많은 사회에서 일부다처제가 유지된 것은 높은 확률로 남자들이 주로 밖에 나가서 전쟁, 사냥이나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여자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다 보니 희소성이 있는 남자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 결과적으로 남존여비와 같은 폭력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도 물리적으로 생물학적 강함이 더 필요한 직역들이 여전히 있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는 머리로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남녀 간의 성역할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남자들 중에 집안일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을 하면서 서포트 하는 것의 가치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가정이란 공동체에서 서로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기능과 역할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밖에 나가서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집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겐 전부인 하나의 세상을 잘 만들어 주는 일이 어떻게, 왜 폄하될 수 있는 지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오늘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엄청난 성취를 만들어낸다고 착각하며 남 좋은 일을 하면서 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서포트 하는 파트너들을 낮춰보며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인데, 그런 현실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해졌으면, 정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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