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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TC

'프리랜서'로 산단 것에 대하여

by Simon de Cyrene

의도치 않게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2019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부터이니 내년 2월이면 만으로만 7년째. 정말 다양한 일을 해왔다. B2B를 목표로 돌리는 유튜브 채널의 기획, 대기업 유튜브 채널 한 프로그램의 진행자, 드라마 보조작가, 대학교 시간강사에 마케팅용 글을 쓰는 일까지. 다행하게도 빚을 지지 않고 내 생계는 유지하고, 큰 부족함은 느끼지 않으며 큰 의미는 없는 금액이 모이는 정도로 잔고는 늘어가는 정도로 벌이가 유지되어 왔다. 초반 3년은 근근이 먹고살았다면, 지난 3년간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는 벌었다.


지쳤음을 느낀다. 올해 상반기부터 느꼈다. 혹자는 나이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런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몸도 지치지만, 마음이 그보다 더 지쳤음을 느낀다. 회사생활이 정말, 진심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내게는 맞지 않는 옷임을 알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그때는 하다못해 같이 누군가를 욕할 수 있는 동기나 선후배라도 있었다. 프리랜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처럼 기본적으로 혼자 방구석에서 글이나 영상을 만지는 일들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와 공감하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게 처음에는 편하고 좋았는데, 7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누적된 피로감에 짓눌려 지쳐있음을 올해 상반기에 깨달았다.


물론, 프리랜서라고 다 같은 프리랜서는 아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배우들도 기본적으로는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배우들이라고 해서 또 다 같은 프리랜서는 아니다. 소속사에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의 입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의 경우 본인이 힘든 것, 짜증 나는 것들을 주위 사람들이 자신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다 들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나마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붙어있는 사람들은 또 결국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그 배우의 재산에 손을 대거나 배우가 인기가 떨어지면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을 많이 벌고 주위에 사람은 많지만 어쩌면 그들도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주거나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단역이나 조연으로 자리잡지 못한 배우들은 더하다. 그들은 소속사가 있는 경우에도 스스로 오디션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들에게 공감해 주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들과 비슷하게, 비슷한 이유로 힘든 배우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의 상황에 차이는 있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삶이 버거울 때는 그러한 작은 차이가 그들 안에서는 큰 차이로 느껴지게 되어 완전히 공감하거나 같은 편이 되어주기가 힘든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프리랜서는 결국 직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만의 능력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줘야만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데 또 프리랜서에게 맡기는 일들은 많은 경우 누가 하는지에 따른 편차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결국 프리랜서들이 하는 일은 기본적인 능력치가 되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고, 이는 많은 경우 사람을 통해서 일이 들어오게 된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관계가 틀어지거나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지점이 생기면 일이 끊어질 수 있다 보니 많은 프리랜서들은 관계에서 을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리랜서는 대부분 혼자 일을 하니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질수록 고립될 수밖에 없다.


회사원이라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임원과 부장님들이 오죽 외로우면 직원들과 회식을 그렇게나 하려고 하고, 직원들이 밥을 같이 먹어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겠는가. 회사원들도 어느 정도 직위에 올라가면 극도로 외로워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반직원들은 안 그럴까? 그들 역시 회사 안에서 어떤 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신뢰하는 사람들 외의 관계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신중하게 하게 된다. 그러다 신뢰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기라도 하면 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현실은 전혀 외롭지 않은 완벽한 일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단 것을 보여준다. 다만 그 안에서 프리랜서로서에게 있는 특징적인 외로움은, 누군가와 온전히 공감하는 대화를 한 번도 나누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임원과 부장님들은 직원들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걸 느끼며 그걸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거나 그 불편함을 소재로라로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고, 일반직원들은 회사 안에서 불만을 공감하며 나눌 수 있는 영역이라도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프리랜서들은 그 영역이 훨씬 좁거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들의 고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청나게 잘 나가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은 매년 다음 해 일감을 걱정해야 하고, 일을 주는 사람들에게 거의 항상 을로 일하며 맞춰줘야 한다. 그런데 같은 프리랜서들도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이나 시장상황이 다르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고, 모두 어느 정도의 불안정성을 안고 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일에 완전히 공감해 주며 들어줄 여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모든 걸 상쇄할 정도로 나는 프리랜서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자율성이 좋았다. 완벽한 돈벌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단 걸 알기에 큰 불만도 없었고 이대로만 유지가 된다면 평생 프리랜서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작년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긴장감과 고립감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누적되고 있었는지, 올해는 이 삶이 버겁단 생각이 들더라.


이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무엇인가에 대하여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야 하는데, 그게 개인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님을 여실히 느낀다. 똑같은 자리에 가도, 내가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 있음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도 내게 붙는 타이틀이 결국 문을 열고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음을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지금까지 내가 프리랜서로 일해 올 수 있었던 것도 100% 내 실력 덕분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이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나는 안다.


결국 여기에서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서는, 남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더 파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력이 더 붙어야 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내 이력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기에, 이젠 프리랜서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조직에 들어가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을 이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는 절대로 완전히, 100% 자유롭지 않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하고 분명하게 느낀다. 올해에 글을 거의 쓰지 못했던 많은 이유 중 한 가지는, 이러한 고민과 넘쳐나는 일 속에서 그럴 여력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월이 거의 다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는 있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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