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한 달 살기 -3
여행이 벌써 3주째에 접어든다. 와이프와 여태까지 쓴 돈에 대해 정산하였다.
아낀다고 아꼈는데 생각보다는 많은 금액을 지출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한 달간 쓰는 생활비와 크게 다른 거 같지도 않았다. 한국이 워낙 생활비가 비쌌고 일에 치였던 우리는 많은 부분을 외식으로 해결했다.
솔직히 말하면 부부의사여서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많이 없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뭔가 변명(?)을 하자면 서른 후반이 넘는 나이까지 열심히 공부했고, 그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 일까. 우리 부부보다 훨씬 부자이신 분들도 많고 또 힘드신 분들도 많기에 경제적인 부분에 이야기하는 게 많이 조심스럽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부부는 생각보다는 많은 돈이 있지는 않다.
나는 작년까지 주식 투자를 꽤 열심히 했다. 주로 미국주식에 투자했는데 그때는 내가 정말로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3배 레버리지에 손을 대었고, 결과는 처참했다. 왜 레버리지 투자를 하지 말라고 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도박사의 기운이 있던 것이었다. 꽤 많은 돈을 손해 보았다.
허탈했다.
둘이 열심히 돈을 벌면 무조건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작년에는 돈을 벌수록 더 조급해지는 느낌이었다. 전문의 월급만 받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
항상 어머니가 해오시던 말씀이었다. 아버지는 당시에 꽤 사업이 잘 되셔서 많은 돈을 버셨을 때도 있었는데, 여기저기 사기를 당하시고 집에 생활비를 못 가지고 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귀에 딱지가 얹도록 이야기하셨던 말을 아들도 그대로 어기고 말았다. 부전자전이다. 아무래도 남보다 ‘더 빨리’, ‘더 큰’ 돈을 벌고 싶었던 거 같다. 참 부끄럽다.
한국을 떠나오니 뭔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 싶었을까?
일본이 환율이다 디플이레이션이다 뭐다 해서 물가가 많이 저렴하지만, 그래도 일본은 일본이다. 비싼 건 비싸다.
근데 뭐랄까? 비싼 걸 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할인가라고 나오는 명품들을 결혼식 핑계, 동창회 핑계로 한 두 개씩 사모았다.
문제는 정말 한두 개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겠다.
고백하건대 불필요한 쇼핑도 참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냥 주말을 바쁘게 보내기 위해 백화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할인받자고 했던 핸드폰 약정들, 몇 번 보지도 않는 구독들. 자동이체, 계약, 읽지도 않을 거면서 사들인 책들, 게임들... 등등
어느 때부턴가 주객이 전도되어 살았던 거 같다. 나중에는 이것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사실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한 물건들과 계약인데도 말이다.
여기서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생활한다. 편의점이 좀 멀어서 수돗물을 끓여 마시기 시작했는데 꽤 마실만하다.
그냥 대충 산다.
와이프와 3주간 돈을 예상보다 많이 썼으니, 오늘은 대충 먹다 남은 반찬으로 때우기로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나는 대충 살 수 있을까?
대충이라기보다는 뭔가 남에 눈치를 좀 더 덜 보고 사는 것이겠다.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저번 주말에는 와이프와 오비히로라는 곳을 방문했다. 홋카이도에서는 유명한 과자점인 롯카테이의 총본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롯카테이가 만든 예쁜 정원을 가는 중간에 ‘행복역’라는 곳이 있다.
뭔가 상술에 놀아나는 느낌이지만, 행복역이라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블로그를 정리해 보니, 우리 둘 다 참 좋아 보였다.
다른 곳에서 나의 삶을 관찰하는 일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참 소중한 하루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