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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튼 Jun 03. 2023

후지산 폭발 임박(?)설과 삿포로의 여름

삿포로 한 달 살기 -4 

처음부터 삿포로를 여행지로 골랐던 것은 아니다. 평생에 걸친 대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나는 도쿄 외곽의 도시를 주장했다. 처음에는 와이프도 동의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안 되겠다고 하였다. 


후지산이 폭발할 수도 있데..


당시 터키의 지진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다가 같이 뉴스를 보고 처참한 사진들을 보니 덜컥 무서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그때는 합리적인 생각처럼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후지산 폭발을 검색하니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수히 많은 폭발의 증거들을 알고리즘은 쏟아내었다. 


“후지산 폭발 임박“

”오늘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 


와이프는 삿포로는 지진대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라는 점을 강력히 어필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삿포로로 바꾼 건 아주 잘한 것이었다. 1달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후지산은 폭발하지 않았지만, 여름의 삿포로는 그것만의 매력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호스트 '요코상'이 삿포로 사람들은 여름을 사랑한다고 하여서 굉장히 놀랐다. 나에게 여름은 끔찍하기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여름은 지옥 그 자체 아닌가. 한낮의 더위는 말할 수 없고, 저녁에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모기는 또 어떻고, 몇 걸음만 걸어도 한증막을 걷는 것 같은 찝찝함은 또 어떤가. 


‘삿포로의 여름’ 은 나만 알고 싶은 무엇이 되었다. 


사실 삿포로 하면 눈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물론 6월부터 라벤더 축제로 홋카이도 자체가 성수기이지만 삿포로는 역시 눈이겠다. 

삿포로도 더운 날에는 30도 근처에 갈 때도 있지만, 일반 적으로 20도 언저리에서 머문다. 더운 날에도 그늘에만 가면 선선하고 바람도 곱다. 


무엇보다도 미세먼지가 없다. 


물론 일교차가 굉장히 커서 항상 경량 패딩을 가방에 넣고 다녀야 된다. 해가 지면 춥다. 한여름에도. 하지만 삿포로를 한 달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이것을 꼽을 거 같다. 


“깨끗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요” 

삿포로의 하늘


나도 요코상처럼 삿포로의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삿포로 사람들은 1년에 절반을 눈과 함께 생활하니 여름을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사랑하게 되었다. 

좀 슬프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하늘을 항상 파란색으로 색칠했는데, 정작 서울의 하늘은 파란색일 때가 별로 없지 않나.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 희뿌옇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충격을 받았던 게 떠오른다. 


대도시에서의 생활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5일 정도 이것저것 정비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식도 전하고 다시 캐나다 밴쿠버로 떠날 예정이다. 앞으로 삶이 고될 때마다 삿포로에서 보낸 소중한 여름을 떠올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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